도봉산 입구에 있는 김근태 기념 도서관 상주작가가 점심을 혼자 먹고 돌아온 날 옥상에서 눈 감고 쓴 시
이소연
산꼭대기 위로 날아가는 헬기를 봤다
도봉산 입구에 있었던 것은 두부집이고
도봉산 입구에 없었던 것은 김근태 기념 도서관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들이 자리를 바꾸거나
전통을 바꾸거나
산을 바꾸거나
도봉산 입구에 붐비는 모자와 등산화들
누가 동선과 소비심리에 대해 말한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고
통유리 반짝이는 등산복 매장
어쩌다 여기 와있는지 손님 하나 들지 않는데
등산 좋아하는 친구가 말했던 등산복이 이거구나
산을 오르려면 돈이 좀 있어야겠지만
안전을 보장하는 것들은 비싸고
나는 아침잠을 털어내기 힘들다
한바탕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다
숨이 차는 길마다 산이 놓아둔 숨이 있겠지
함께 가고픈 마음을 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한정 없이 죽죽 내려오는 그림자와
한정 없이 죽죽 올라가는 그림자들
도봉산 입구에 세워진 이매창과 유희경의 시비
누가 저 시비 앞에서 다 지난 사랑을 떠올리나
그리운 마음은 조금도 낡지가 않네
벤치에 그려져 있는 장기판 옆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과 서서 지켜보는 사람들
훈수 없이 안경 속을 구르는 새옹지마
대뜸 생각나는 한자성어 두 개를 말했을 때
온고지신
새옹지마
김은지 시인이 웃으며
앞에 것은 인생
뒤에 것은 연애라고 했다
재미로 점을 치는 날엔
미래가 이런 거라면
끝까지 가보고 싶다
봄빛이 가고 초여름이 오니까
사람 냄새, 번데기 냄새, 막걸리 냄새
맡아보지 않는 냄새들이 몸에 달라붙는다
먹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빗소리로 땅을 내딛는 도봉산, 한쪽 어깨가 젖었다
고작 몇 발자국 떼면 가닿을 것 같은데
얼굴 한 번 보려면 뒤꿈치가 까지고
별다른 것이 없는 돌과 풀벌레의 곁
나무는 자꾸 피를 떨어트린다
그 피, 자세히 보면 푸른 쐐기
나는 그 목숨을 왜 피라고 불렀을까
도봉산 골목골목, 푸른 낯빛 가진 것들 지워진다
다시 돋는다
아무도 도봉산의 얼굴을 모른다
----애지 가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