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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과 예언의 성취
왕하 7:8-20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11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12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13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14 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15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
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18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20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왕하 7:8-20 / 그 문둥병 환자들은 맨 먼저 눈에 띈 천막에 들어가 우선 실컷 먹고 마셨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 천막 안에 있는 은과 금과 옷가지들을 모두 가지고 나와 진지 밖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천막으로 들어가 귀중품을 모조리 챙겨서 진지 밖에 숨겨 놓았다. 9)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야 되겠느냐! 오늘은 아주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날이다. 만일 우리가 내일 아침까지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자, 우리가 당장 왕궁으로 달려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 10) 문둥병 환자들은 성문으로 달려가서 문지기들에게 큰소리로 그 소식을 알렸다. `우리가 아람군의 진지에 들어가 봤는데, 군인도 없고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과 나귀들만 부대 안에 매여 있을 뿐 막사는 텅 빈 그대로 모두 남아 있었습니다.' 11) 문지기들이 그 소식을 도성 안으로 전하자 신하들이 그대로 왕에게 보고하였다. 12) 왕은 한밤중에 그 소식을 듣고 일어나 신하들과 의논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람 군대가 꾸민 작전을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얼마나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지를 떠나 들녘에 매복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이 도성에서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모두 생포하고 이 도성 안으로 진입할 것이다.!' 13) 그러나 한 신하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직도 성중에 말들이 남아 있으니 다섯 마리만 골라 타고 정탐하게 하십시오. 이미 사람과 짐승이 모두 죽어 가는 판인데 그들이 여기 그대로 있어도 죽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14) 그러자 왕은 말 두 마리에 정찰병을 각각 태워서 보내며 아람 군대가 어디로 갔는가를 알아 오게 하였다. 15) 두 정탐꾼이 아람 군대의 뒤를 쫓아 요단강까지 달려갔다. 길바닥에는 아람 군인들이 급히 도망하기 위하여 내버린 옷 나부랑이와 무기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예언대로 밟혀 죽은 경호대장] 두 정탐꾼이 궁중으로 돌아와서 그대로 왕에게 보고하자 16) 성중의 온 백성이 물밀듯이 몰려 나가서 아람 진지를 약탈하였다. 이리하여 엘리사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제 성중에 있는 장터에서는 밀가루 한 말이나 보리 두 말 값이 겨우 한 세겔밖에 되지 않았다. 17) 이때 또 엘리사가 경호대장에게 예언하였던 말도 그대로 이루어졌다. 왕이 마침 자기를 늘 수행하던 그 경호대장을 성문으로 보내 질서를 바로 잡게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밀어닥치는 군중들에게 밟혀 죽고 말았다. 18) 엘리사는 전에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온 왕에게 `내일 이맘때에는 사마리아 성중에 있는 장터에서 밀가루 한 말이나 보리 두 말 값이 겨우 은 한세겔밖에 하지 않을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19) 그런데 바로 그때에 경호대장이 엘리사에게 반박하기를 `여호와께서 지금 당장 소나기를 내려쏟으신다고 해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소' 하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에게 `당신이 직접 눈으로 그런 일을 보기는 하겠지만 그 곡식을 먹지는 못할 것이오' 하고 예고해 주었는데 20) 그날에 그가 바로 성문께에서 온 백성에게 밟혀 죽음으로써 엘리사의 말대로 되었다.
나병환자들이 좋은 소식을 성 안에 전함으로 성의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에 대한 책임감(8-9) 네 명의 나병환자들은 오랜 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겨를 없이 허겁지겁 먹고 마셨으며 귀중품과 의복을 가져다가 숨겼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장막에 들어갔다 나온 후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성의 모든 주민들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람 진영 안에는 성의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양식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들의 무거운 책임감은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일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이 즐길 만큼 풍성합니다.
소식을 전함(10-15) 나병환자들은 성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밤중에 성 문지기에게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 소식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또 다른 문지기들을 통해 왕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왕은 이 좋은 소식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요람 왕은 이번 소식을 아람 군대의 유인작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하였는데도 왕은 의심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막을뻔하였습니다. 하지만 한 신하의 간언이 성을 살립니다. 신하는 성 안에 남은 말 다섯 필이 있으니 그 말들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정탐꾼들은 말을 타고 요단까지 정탐한 결과 그 좋은 소식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복음이라도 믿는 자에게만 구원이 됩니다.
예언의 성취(16-20)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백성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람 진영을 노략합니다. 노략한 곡식이 즉시 성문 앞 시장에서 거래되었는데, 놀랍게도 선지자 엘리사가 예언한 바로 그 가격이 정확하게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한지 볼 수 있습니다(마 5:18). 또한 성문을 지키던 장관이 백성에게 밟혀 죽었으니 엘리사의 예언이 한 번 더 성취되었습니다. 장관은 아람 군대에게 포위당한 어려운 상황을 하나님이라도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혈통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만이 진정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에는 오직 믿는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적용: 우리가 세상에 알려야 할 소식은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지금 알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가운데 있다 해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련 가운데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문제보다 크십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하나님입니다. 내 눈앞에는 바위와 사막뿐이라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에 머릿속엔 죽음만이 떠오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른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분이시며, 진중에 메추라기가 쌓이게 하시는 분이시고, 마른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난 뒤에는 언제 내게 그런 어려움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께만 소망이 있습니다.
< 설 교 >
이제 누림에서 전함으로
왕하 7:3-20
우리는 앞 주에 왜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의해서 포위되었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왜 이런 고난이 왔을까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구약 역사를 보면 가장 능력있고 위대했던 선지자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둘 다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타락한 시기인 아합 왕조 때에 활동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하던 때에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이름있는 선지자들은 요엘이나 스가랴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덜 범죄했던 남유다보다 극심한 죄로 붕괴직전에 있었던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관심이 더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더한 것에 하나님의 은혜도 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역사적으로 가장 우상숭배가 심했던 아합 왕조 때에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울컥 거리는 마음이 생깁니다. 교훈하고 때려도 말 안 듣고 배역하고 거부하면 ‘그래~ 니 맘대로 하세요’라고 버려두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망해가는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그들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여호람 왕은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던 아람군대에 의해서 모든 식량공급이 차단되어서 이제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점에 서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성을 구해줄 것을 바라보면서 왕복 안에 베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굶주림에 지쳐서 자기 자식까지 잡아먹고 다음 날에는 이웃집 자식을 잡아먹자고 약속했는데 그 지키지 않았다고 고소 고발하는 백성들의 항의하는 소리에 하나님을 기대하는 신앙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호람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왕복 안에 베옷을 입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이 상황에 대한 회개를 하려고 했다면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거나 금식하고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떼를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람 왕은 하나님을 절실히 찾지도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에게 나아가 백성을 구원할 방법을 간절히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배고파서 인육까지 먹었다는 말을 들은 여호람 왕은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고 맹세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된 믿음은 고난의 의미를 묻습니다. “하나님 이 고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고난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내 안에는 하나님과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죄는 없는지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사합니다. 그리고 끊을 것은 끊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돌이킬 것은 돌이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남에게 이 고난의 상황을 돌리지 않습니다. 내 탓입니다. 내가 잘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람 왕은 이 모든 문제가 엘리사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엘리사를 죽이고자 결단했습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해결 방법입니까? 이 얼마나 영적으로 비둔한 모습입니까? 사실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면 북이스라엘은 희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을 지키는 병거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라 엘리사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에게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비둔해 지면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자신은 회개하지 않고 상황만 해결되기를 빌고 또 빕니다. 영적으로 비둔해 지면 현재의 고난의 의미를 해석 해 내지를 못합니다. 심지어 자존심만 쎄서 영적인 지도자 엘리사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해결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자문을 구하지 않습니다.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오늘 까지 죽이고자 결단하고 사자를 앞서 보내고 자신이 급히 뒤따라 갔을 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마침내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7장 1절을 보겠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내린 징계로 마침내 사마리아 성을 에워 싸서 인육을 먹을 정도의 극한 상황에 도달했을 때,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이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을 때에 무엇보다 주의 종 엘리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고 엘리사를 죽이고자 달려드는 여호람 왕을 보았을 때 이 막장드라마를 끝내고자 결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에 매매되고 부리 두 스아도 한 세겔에 매매되는 구원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버티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은혜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지독히도 말 길을 알아 듣지 못한 여호람 왕과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자신의 백성들이 인육까지 먹는 상황까지 가도록 징계의 채찍을 드신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는데 끝내는 엘리사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몰아붙이고 엘리사를 죽이고 달려드는 이 백성들의 왜곡된 마음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통탄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마침내 그래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할께! 하시면서 징계의 채찍을 거두시고 하늘에 창을 여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여호람을 따라왔던 한 장관이 엘리사를 통해 선포된 엄청난 은혜의 예언을 비아냥 거리면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불신앙으로 반응했습니다. 이 때 엘리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볼 것이지만 너는 그 열매는 먹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심판의 선언을 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에워 싸서 오늘날 이토록 극한 고난이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하나님이 배열하신 고난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온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고 고난이 이제 풀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이 왔을 때 우연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고난을 해석해 내야 합니다. 고난이 해석되고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엄청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드는 사람은 위대한 새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해도 해도 못 알아 들으닌까 막장에서 하나님이 은혜로 고난을 풀어 주면 그 사람의 인생은 또 다시 더 큰 고난을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숨통이 조금 트였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고난의 숨통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풀어 주었습니다. 이것을 누가 누립니까? 3~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거두고 은혜의 하늘 창문을 여는 날 누가 이 구원의 기쁜 현장에 다다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닌까 4명의 나병환자가 그 축복의 현장에 최초로 이르게 됩니다. 4명의 나병환자는 성문 곁에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정한 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성안의 백성들처럼 굶주림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있어 식량 구하러 멀리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성 안에 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서로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우리가 성에 들어갈지라도 어차피 양식을 구하지 못하니까 차리리 아람 군대에 가서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 것이고 죽이면 죽자” 이렇게 결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적진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적진으로 들어갔으나 적군이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적군이 버리고 간 식량과 군수 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굶주린 나병환자들은 한참을 베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과 의복을 발견하고는 자신들만이 아는 곳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이 여신 은혜의 선물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판사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가 많습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닌까 한 번 하나님의 말씀대로나 살아보고 죽자!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결단하고 믿음의 발자욱을 떼면 그 때부터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예수님께 주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앞길이 막히고 뒷길도 막히고 좌우가 막혔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위는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신앙을 가지고 나아가면 인간으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새 역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룻기를 읽다보면 가장 감동적인 룻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1:16~17)
룻은 과부였지만 아직도 너무 젊기 때문에 충분히 재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시어머니께서 너를 위해서 새로운 삶을 살라는 축복의 말도 있어서 부담이 없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룻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길을 선택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다 땅으로 가고자 결단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무시한 모압 여인입니다. 친구도 친척도 한 명 명 없는 이 방의 땅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따라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압의 신을 거절하고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세상질서를 따라 살지 않고 이제는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자기부인 자기결단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룻의 인생을 축복해 주시고 후에 보아스를 만나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메시야 가문의 믿음의 어미가 되게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판사판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있는 신앙말입니다. 그러면 죽을 것 같은 고난의 상황에서 벗어나 은혜의 현장에 도달하여 남들이 누리지 못한 복을 마음껏 누리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배열하셨기에 하나님이 한 번 훅 불면 하루 아침에 사라집니다. 보십시오. 북이스라엘이 군대의 힘으로는 도저히 아람 군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질 무렵에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심으로 아람 사람들이 겁에 질려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고 소리치면서 날 살려라 하고 36계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급히 떠났던지 그들의 장막에는 말과 나귀까지도 버리고 혼비백산하여 출행랑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내 삶의 현장에 일어난 고난이 선더미처럼 크게 버티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한 방에 해결 할 수 있습니다. 20~30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것도 하루아침에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고난상황을 해결하려는 기도보다 고난을 통해서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이 손대시면 해결되지 않는 고난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4명의 나병 환자가 하늘 창고가 열린 현장에서 마음껏 복을 누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이 은혜를 자신들만 누리면 화가 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마리아 성에 있는 내 형제자매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서 알리면 하나님의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누렸던 이 엄청난 은혜의 소식을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설레임과 들뜬 마음으로 달립니다. 그리고 성문에 이르러 큰 소리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람 군사들이 다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군수물자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들이 거주했던 장막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고 의복과 은금이 있습니다. 빨리 가서 확인 해 보십시오. 우리는 살았습니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외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으로 여겨진, 비천한, 버림받은 문둥병자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행했습니다. 자기들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굶주려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전도자에게 4명의 나병환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고백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도자의 심정이 되어야 하고 열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내가 누린 이 혜택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겠다는 마음을 회복합시다. 빚진자의 마음 말입니다.
저는 저주받은 하찮하고 한없이 부족하고 냄세나는 4명의 나병환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게 하신 것에는 큰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 영적으로 문등병자들이 아닙니까? 죄에 의해서 영혼이 썩어져 문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고림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천하고 부족한 영적 문등병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 것은 이제 내가 받은 혜택을 주변 사람들에게 흘러 보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흐러가야 합니다. 내 안에 만 있으면 복음은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복음을 흘러 보내는 인생에 더 큰 은혜가 있고 복음을 흘러 보낸 현장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복음의 혜택을 내 가족과 이웃과 땅끝까지 흘려보내는 복음의 통로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