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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9일(목)
* 시작 기도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 말씀은 다윗이 쓴 시로 그가 왕으로서 선민 공동체인 이스라엘을 이방의 세력으로부터 지키려는 열심과 그런 열심을 인하여 그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요한복음 2:17절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그 말씀을 그제야 이해한 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성전 안에서 소나 양과 같은 제사의 제물을 파는 것을 보시고 분을 내시며 다 쫓아내시며 하신 말씀이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셨을 때, 제자들이 그 말씀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런 거룩한 분노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비방을 받게 하고 또한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그런 열심을 내신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과 십자가 채찍을 든 자가 바로 나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주의 강하심으로 나를 이끄소서.
수술 후 회복 중에 있는 주의 종 서형섭목사를 눈동자 같이 지키사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9:32-38
제목 :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습니다(주의 심판은 옳습니다).
32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33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34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35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37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38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 나의 묵상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과 성벽을 완공한 후에 나팔절과 초막절을 지켰다.
나팔절은 유대력으로 이스라엘의 새해로써 설날이며 특히 대속죄일(7월10일)과 초막절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이들은 나팔절(7월 1일)에 모여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서를 들으면서 그들의 죄에 대하여 통회자복한다.
그러나 이 날은 성일이요 또한 기쁨의 축제이기 때문에 울거나 근심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면서 축제를 즐기도록 한다.
또한 이들은 초막절(7월15일)에 각종 나뭇가지를 가지고 초막을 지어 크게 기뻐하며 일주일간 절기를 지키고 8일째 되는 날은 큰 날이므로 성회를 열었다.
초막절 기간 동안 에스라는 일주일 내내 율법을 낭독하고 무리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절기를 지켰다.
8일째 성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터전인 집에서부터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면서 죄를 회개하였다.
물론 이것은 초막절에 율법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은 것에 대한 연속선상에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 가운데 초막절이 끝나고 하루가 지난 24일에 그들은 다시 모였다.
집에서부터 금식하며 통회자복하던 그들은 함께 모인 집회의 자리에서 자신과 조상들의 죄 그리고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였던 모든 죄를 통회자복하면서 그 죄들을 끊어내었다.
이들은 오전 6시부터 3시간은 율법을 듣고, 또 3시간은 통회자복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리고 레위 사람 몇이서 강단에 올라서서 함께 부르짖으며 회개를 촉구하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하였다.
특히 이들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악을 행했던 자신들을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이끌어 오신 역사를 회고하였다.
그렇게 자신들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고발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존귀하심은 찬양하였다.
오늘 본문은 그 레위 사람들이 하는 회고의 마지막 부분으로써 다시 한 번 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
자신들이 비록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살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왕들과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으로부터 당한 모든 환난을 작은 것으로 보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한다(32절).
그들이 고백하기를 자신들이 그처럼 당한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기에 자기들이 환난 당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한다.
즉 ‘주의 심판은 옳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33절).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복, 즉 넓고 기름진 가나안 땅에서 누리며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조상들이 주의 율법과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로 인하여 지금 자기들도 이방의 종이 되었는데 그것은 조상들의 죄를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신들 역시 여전히 죄를 먹고 마신 결과 지금 이런 환난과 곤고를 당하고 있음을 자백한다(34-37절).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통회자복한다.
이렇게 선민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하고 언약을 견고하게 세워 기록한 말씀을 관리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인봉하였다(38절).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죄와 함께 먹고 마시며 살아왔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들은 그들 스스로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죄를 씻는 여러 가지 종교를 만들어 내고, 그 종교를 통하여 죄를 씻으며 나름대로 영생관을 가지고 살아왔다.
불교에서는 살아 있는 물고기나 자라를 방생하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상쇄시킨다.
힌두교에서는 인도 갠지스강에 자신의 몸을 씻으면 자신의 죄가 깨끗해지고 영혼이 정결해 진다고 믿는다.
이슬람은 자기들이 믿는 알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 죄가 씻어지고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저런 별별 노력을 다 기울여 봐도 모두 허사다.
왜냐하면 이 모든 종교는 결국 이 땅에서 사람들의 필요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땅의 종교는 결국 자신의 유익과 필요를 궁극적으로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종교의 창시자는 사람이다.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땅에 속할 뿐 아니라 땅의 것을 말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신 이는 만물 위에 계시기 때문에 땅에 속하지 않는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결국 아담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 죄를 대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당신에게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아들을 태어나게 하셨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사람을 만들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약속하셨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을 믿어 영생을 누려야 할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므로 범죄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자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아담의 모든 자손들은 죄와 함께 태어나고 죄를 먹고 마시며 살게 된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그들이 살 수 없기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육신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그를 믿어 영생을 얻어야 할 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신 것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요 12:32-33)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날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제 땅에서 만들어진 생명(made of God)에서 하늘로부터 태어난 생명(born of God)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의 사건 안에 내가 연합되는 것이며, 나 역시 주님과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피로 세우신 새 언약 백성으로써 3번 생명(사람 곧 아담의 생명)이 아닌 1번 생명(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새 언약 백성으로 1번 생명을 살아가지만 아직 구속되지 못한 육신의 한계로 인하여 또한 넘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넘어져 죄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작업을 걸어오신다.
그것은 그를 죽이기 위한 손길이 아니라 그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다.
그래서 그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아프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환난과 곤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것은 죄의 결과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다.
따라서 이런 환난과 곤고에서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죄를 끊으면 된다.
징계를 통하여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완전히 무너지고, 든든한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새롭게 집을 지을 때 환난과 곤고에서 떠날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다.
사람은 불의하나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의롭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심판을 통하여 우리가 이런 고백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여전히 죄악된 삶을 끊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던 그들을 이방 민족으로 심판하시고 환난과 곤고가 끊이지 않게 하시므로 그들을 하나님 백성 삼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그들은 비록 옛 언약이지만, 그들의 언약을 갱신하고 세워 그것이 헛되지 않도록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관리들의 이름으로 인봉한다.
이것은 이제 선민 공동체인 이스라엘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결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단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였다.
또 다시 넘어지고 자빠지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들의 삶이 곧 나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나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분리된 자로서 땅에서 만들어진 생명(made of God)이었다.
물론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 환난과 곤고를 통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셨다.
그런 환난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으나, 나의 삶은 여전히 땅의 것에 천착하고 매여 있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만물 위, 창세전의 세계를 알 수도 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세계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죽으면 가는 나라쯤으로 치부하였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환난과 곤고는 끊이지 않는 사망의 증상으로 항상 따라 다녔다.
그로 인하여 삶이 곤고해지고 피폐해지자 나는 목회를 내려놓을 생각을 하고 준비 중에 있을 때 복음이 찾아 왔다.
신실하신 주님은 그런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고통 가운데 복음을 듣게 하셨다.
나는 생수를 만나게 되었다.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음만이 나를 살게 하였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말씀 묵상을 통하여 날마다 주님과 생명의 교제와 사귐을 놓치지 않았다.
나 비록 연약한 존재이나 이제는 세상의 정욕과 탐욕에 눈이 멀지 않고 오직 주님과 함께하는 자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순간순간 넘어지는 나는 또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창세전의 세계와 영생을 다시 회복하여 주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환난과 곤고가 끊이지 않는 이 세상입니다.
영생을 맛보고 누리며 산다고 자부하였지만, 이내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이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어 살려 주옵소서.
주님이 아니면 살 수 없사오니 주의 긍휼과 자비로 나를 붙드소서.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의 공의의 심판으로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무너지게 하시고, 반석 위에 견고한 집을 지어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나는 새 언약 백성이오니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게 하시고 내가 당하는 환난과 곤고를 결코 작게 보지 마소서.
주의 심판은 의롭고 옳습니다.
나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신실함의 빛을 내게 비춰주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