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따라서 한참을 걷고 있다.그녀는 무슨 용무로 밤에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도 없이 어디론가가 가고 있다.이런,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네.
순간 조성되는 분위기가 너무 어색했기 때문에 무슨 말이든 하려 생각
을 해 봤지만 정말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같은 걸 물으면
분명 날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이 여자가 어떤 직책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 왔네요."
그녀가 갑자기 말을 꺼내, 화들작 놀랬지만 기색을 할 수 없었으므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이므로 주위가 어두워서 잘은 볼 수 없었지만 눈
이 익숙해 진 후 둘러보니 이 곳에는 어떤 분수 같은 것이 있었다. (물론
실외였다.)아마 정원의 한 편인 것 같았다.분수 주위로는 대여섯개의 의
자와 그 둘레로 여러 풀과 꽃들이 있었다.그런데 신기한 점은 실외에
밤이었는데도 전혀 춥지가 않았다.
나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 옆에 거리를
조금 두며 앉았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나를 이 곳까지 데려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별 생각 없이 앉았다.
나는 슬프지 않아요.
나는 울지도 않아요.
비록 당신이 내 곁에 없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요.
저기 밤하늘의 별이
말해주고 있나요.
내가 그댈 보고 있는지.
그댄 저기 있어도
잡을수가 없어요.
함께한 시간만큼
이별도 아프겠죠.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내 마음을 녹여주는 듯 했다. 그 어떤 목소리가
이보다 감미로우랴!
그녀가 부르는 의도를 모르는 채로 나는 그 노래만을 듣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무의식 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감싸주었다.
* * *
푸른 계곡 사이에 맑은 폭포수가 흐르는 곳.결코 고통이란 없는 영생의 곳.
이곳에는 푸르른 초원속에 누가봐도 감탄할 만한 미모의 천사들 그리고..
그녀들의 우호를 받고 있는 불량 신이있다.
그는 운명을 좌우하는 신이고 이름은 없다.호칭으로 부르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역시 그 덕에 이름이란 모르고 살
았다. 하지만 그가 가끔씩 인간계로 내려가는데, 그때면 제르미안이라
고들 부른다.
제르미안은 지금 호사스러운 차림을 하고 풀밭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제르미안은 여느 신들과는 달리 불량끼가 다분히 보이는 신이다. 허나,
온화함은 그 어떤신들 버금갔다.제르미안이 하는 일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새로운 탄생을 맡기도 하며, 인연의 끈을 연결하기도
한다.
벌떡일어난 제르미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지만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신성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덜렁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자세히 말해봐"
"예.인간계의 한국이란 나라의 서울에 사는 현재명이라는 인간과 이계
에서 피올렌자르왕국의 왕자인 데이미스의 운명이 뒤틀렸습니다."
"...으.."
제르미안은 곤란한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평화로
울 때 귀찮은 일이 생겼기 때문인것 같았다.
"어떻게 뒤틀렸는데?"
"그건 조금 더 조사를 해야겠습니다.죄송합니다."
"그럼 빨리 알아와"
"예"
라고 대답하고는 청년은 다시 뒤돌아 뛰어갔다.
사실 인간계의 시간의 천계의 시간은 차이가 있었다.인간계의 시간보다
천계의 시간이 조금 더 느리고, 이계의 시간은 인간계의 시간과 같았다.
허나, 이계도 제1차 이계인 헤인데스, 2차 이계인 셰르하인드, 3차 이계
인 가르온티아..이 세 곳의 시간은 조금씩 달랐다.그리고 지금 운명이
뒤틀린 곳.즉, 데이미스가 살던 곳이며 현재영의 영혼이 있는 제 2차
이계인 셰르하인드는 이 세곳 중 인간계와 비교해서 시간이 같은곳이다.
1년을 365일로 나누고, 1일을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단 1초
의 차이도 없이 시간이 같았다.그래서 현재영의 영혼이 별 탈이 없는 것
일지도..!
"...다."
"예?"
갑자기 음침한 목소리를 내뱉는 제르미안의 옆에 있던 한 여인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죽인다."
* * *
"그러니까 주위의 마나를 느끼시라는 겁니다."
"...으윽."
지금 현재영.아니, 데이미스는 마법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코치(?)는 케미스이다.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면 의심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곧 성을
나가려면 여러가지 몬스터들과도 만날텐데 무턱대고 도망만 친다면 금방
죽을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레인이 급히 제안했다.
다행히도 원래 데이미스의 육체가 가진 마법실력이 뛰어났으므로 터득하
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마나를 느낀다는 것이 영 수월하지
않았다.
"헉헉..뭐이리 어려워!"
"마나만 느낀다면 그 다음은 쉽게 발전할 수 있을겁니다."
"쳇"
케미스의 냉정한 말에 데이미스는 입을 내밀 수 밖에 없었다.뾰루퉁한 데
이미스의 모습에 케미스는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당신은..데이미스님과 많이 닮으셨습니다."
"응?뭐라고 하지 않았어, 케미스?"
"아, 아닙니다."
데이미스가 케미스에게 존대를 한다면 주위 사람들이 분명 의심할 것이
뻔했으므로 데이미스는 케미스에게 반말을 했다.처음에는 그래도 낯선
사람인데..하며 꺼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는 막무가내이다.
"어려워.마나가 뭔데?"
"마나란 것은 말입니다.우리 주변에 있는 기(氣)와 비슷한 것입니다.그
언떤것에나 있는 기운.물론 무생물을 제외하고 말입니다.이것을 느끼는
것은 처음에는 조금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쉽게 터득할 수 있습니
다.마음을 비우고 느끼고자 한다면 느껴지는 것입니다.마법을 실행하시
려면 이 마나를 능숙히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마법사들이 실력
차이가 나는 것은 단순히 사용할 수 있는 시동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마나를 얼마나 능숙히 조정하냐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케미스의 긴 설명이 끝나자 데이미스는 뭔가가 감탄스런 표정을 내 보였
다.케미스에 대해 잘 아는 점은 없겠지만 이렇게나 지식이 많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물론, 이 것은 마법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겠지만 말이다.
순간 케미스는 투지에 불타는(?) 데이미스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