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친정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뒤늦게 발견한 아버지가 119를 불러 병원에 갔지만 속수무책...
강원도 원주에 사는 여동생 부부가 먼저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속수무책...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에 사는 큰딸이 와야지 뭔가 진행을 할텐데...
내가 소식을 듣고 전주 대학병원에 도착해 보니 엄마는 응급실에 계셨다
눈은 꼭 감고 입도 꼭 다물고 그야말로 임종 상태다
" 수슐 해야 되는데 우리 병원에서는 손을 댈 수 없으니 서울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내려온 막내이모와 큰 이모가 펑펑 우셨다
남동생과 여동생도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확신과 평안을 주셨다 '생명은 주께 있으니 기도를 요청하자'
섬기는 교회에 기도 부탁을 하고 부모님 교회도 알렸다
그리고 ' 하나님 두달 입니다" 모
든 상황은 주님 뜻대로 2개월 안에 종료 시켜 달라는 것이다
병원측에 알렸다 그냥 이곳에 있겠노라고
싸인을 했다
중환자실로 옮기고 2개월을 선포하고 영적 전쟁은 시작되었다
기억을 잃었고 음식을 씹을 능력도 없고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한다
링겔을 꽃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살을 꼬집어 보는게 나의 할 일이다
감각이 없으니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디 사는지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삼일이 흐른 뒤 병원에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첫번째 하나님의 역사임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수술실 앞에서 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간절히 기도해 드렸다
3시간30분 후 수술을 마치고도 일반 병실로 못가고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수술 후 말은 잘 하시는데 인지는 되지 않는다 꼬집어도 아픔을 모른다
아~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드라자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악보 없이 4절 까지 불러 드렸는데 다 따라 부르신다
혼자 불러 보세요 했더니 아주 잘 부르신다
찬송 부르는거 외에는 달라진게 아무 것도 없다 24시간 병상을 지켜야 하기에 여동생과 나는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교대로 엄마를 보살폈다 그때 여동생의 아이들이 고1.고2 였다
" 엄마는 2개월 안에 하나님이 회복 시키실거야" 동생을 안심 시키고 원주로 돌려 보냈다
24시간 나 홀로 병상을 지키게 되었다
하나님이 하실거라는 2개월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면서 20일 만에 일반 병실로 옮겼다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다녀 올 수 있게 되었고 두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낮이면 휠체어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면서 반복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 엄마가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20일 동안 있다가 하나님은 은혜로 휠체어까지 타게 되었어요.중환자실에 며칠 동안 있었다고"? "몰라" 하신다
그만큼 기억이나 상황 파악이 안되는 것이다
이제는 재활 치료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즈음에 퇴원을 하라신다
김말녀님은 워낙 긍정적이라서 익숙한 삶의 터전에서 재활을 하면 빠르다고..
노년학을 공부 했던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퇴원 후 피나는 가정 재활이 시작되었다
밭에는 김장 무우.배추가 잘 자라고 있고 콩도 영글어 껍질이 터지고 있다
혼자 일어설 수 없기에 양손을 붙잡고 걸음마를 시작했다
한순간 방심하면 넘어져 다치기가 쉽다
운동 하자고 하면 한번도 싷다 소리 안하시고 신기하게도 따라나선다
오늘은 계단 오르기. 더 멀리 손 잡지 않고 걷기 그렇게 훈련 해서 불안전 하지만 혼자 일어나서걷게 되었다
손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콩 껍질 까기 마늘 까기를 했다
마늘 찧기까지 했는데 다 찧은 다음 물을 흥건히 부어 버린다
뒷 밭에 나가 자연 가운데서 손 운동을 많이 했다
그런 가운데 훈련되어 혼자서도 숟가락질을 하게 되었다
머리 회전을 위해 아버지와 셋이서 동양화 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짝도 못 맞췄는데 며칠 지나니 짝도 맞추고 점수를 세었다 누가 이기고 진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감사 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문재는 정신적.영적이 문제였다
신체적으로는 날마다 회복 되고 있는데 정신 세계가 여간 혼미한게 아니다
눈만 감으면 벌거벗은 수많은 어린 동자들이 엄마를 오라고 손짓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가 우리집 하고 똑 같은데 우리 집은 아니니 우리 집에 데려다 달랜다
집에 손님이 오면 알아보지 못하고 번번히 누구냐고 물으니 모두가 안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신다
매일 기도 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어둠의 세력들을 예수이름으로 쫒아 냈다
엄마도 찬송하고 기도 하자면 즐거워 하신다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져 일상을 탈피하고 싶어졌다 엄마랑 기차를 타고 싶었다
지금 까지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엄마에게 물어 봤던 말 "엄마! 엄마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20일 동안 있었는데 하나님 은혜로 " 혼자 걷게 되었어요" "큰 딸이랑 기차타고 여행울 하게 되었어요" .........." 중환자실에 며칠 동안 있었다고"? 아직 까지 항상 "몰라"가 답이다
아버지 혼자 남겨두고 우리는 수원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종 사촌 언니네로 처 방문지로 잡았다 언니는 이모를 위해 온갖 음식을 만들고 기억이 되돌아 오기 위해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랑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사이 엄마가 현관 문을 열고 사라지셨다
놀란 우리는 30여 분 만에 동네 수퍼에서 엄마를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음은 등촌동에 사시는 막내 이모집이다
금호동 이모도 막내이모 집으로 오셨다 어째 엄마 행동이 온전치 못함을 보고 눈뮬 짓는다
" 엄마는 두달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예요"
그렇게 확신 있게 얘기 하고 하룻밤을 묵은 뒤원주 여동생네로 향했다 작은 딸네 왔어도 어딘지를 모르신다
하룻 밤 지내고 수원으로 올라와 정읍행 기차를 탓다
오늘도 여전히 엄마에게 묻는다
" 엄마! 엄마가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20일 동안 있었는데 하나님 은혜로 일어나서 큰딸 명희와 기차 여행을 하고 있어요. 중환자실에 며칠동안 있었다고"? " 기억은 안나지만 네가 20일 동안 있었다면서야" 그 순간 기차 안에 어둠이 밀려 가고 빛이 둘어 옴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감감적으로 느끼는 하나님의 역사^^
엄마와의 정상 적인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혹시나 해서 또 물었다 " 중환자실에 며칠 동안 있어다고"? "20일"
" 엄마! 뭐 드시고 싶은거 있어요"? "오뎅" 시장에 들러 오뎅을 사서 집으로 왔다
오자 마자 엄마가 사라지셨네
".엄마! 엄마! 엄마!" " 나 여기 있다"
평상시 총명하고 부지런한 엄마는 오뎅국을 끊이기 위해 밭에서 무우를 뽑고 계셨다
깜빡 잊고 있었던 2개월 . 병원 입원하시고 퇴원해서 정신이 돌아오기까지 오늘이 딱 2개월. 눈물이 핑 돌았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아버지와 엄마와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날 저녁 기차로 나는 수원으로 올라왔다
그해 가을 엄마는 건강해져서 원주 동생과 150 포기의 김장도 거뜬히 하셨다
고향에 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큰딸 명희가 엄마를 살렸다고, 고맙다고 하시지만 어찌 내가 생명을 살릴 능력이 있나요?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했던 엄마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지요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서울 광운대역에서 가까운 어느 아파트다
10년전 엄마 병원 계실때 내가 일방적으로 주님깨 드렸던 약속 때문이다
" 주님! 내 이웃 가운데 뇌출혈로 쓰러져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일주일 중 하루만이라도 가족의 짐을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의 그 마음을 주님께서 받아주셨다
나는 시간을 잘 조율 해서 일주일중 하루 24 시간 이곳에 온다
오늘로써 세 번째 방문이다
은퇴 하신 원로 목사님 (86세) 현재 종일 누워 계시며 약간의 손 움직임이 전부다
떠 먹여 드린 식사 (죽) 는 오랫 동안 입안에 물고 계시다 겨우 넘기신다
그래서 1시간 가량 식사 사간이 소비된다
내가 할 일은 고운 죽 세끼를 끓여 챙겨 드리고 간식으로 과일 쥬스 갈아 마시게 하는것이다
그 외의 시간은 대화. 찬송 .쉼이다
점심 챙겨 드리고 극동 방송을 듣는데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웬지 고마움에 지난 날이 떠오르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까지 인도 하신 신실 하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오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멘!!할렐루야!!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모님의 눈물기도에 어머님의 건강 이 회복되셨음도 믿습니다.
섬기시는 은퇴목사님의 건강을 위해중보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더욱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감동입니다 사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