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렬한 우상숭배에 평화와 안녕이 무슨 상관인가?
열왕기하 9.14-26
시 작 기 도
주님의 은혜를 부어 주시어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의 뜻과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알고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하며 늘 동행하지 않으면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나의 생명이신 주님 주님께 말씀으로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 앞으로.
본 문 요 약
엘리사의 수련생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는 이스라엘왕 요람을 칠 모의를 은밀히 하고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달려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요람왕과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길르앗-라못에서 시리아 왕 하사엘과 대적하다가 잠시 요람왕의 부상과 그에 따른 아하시야의 문병으로 이스르엘로 피신해있었습니다.
이스르엘의 망대에서 파수병이 예후의 군대처럼 보이는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하자, 예후는 평화의 소식인지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두 번이나 보냈으나. 예후는 그 전령들에게 평화든 일이 잘되든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며 자기의 뒤를 따르라고 하여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가까이 오자 말을 몰고 오는 모습이 예후같음을 알고, 이제 이스라엘왕 요람과 유다와 아하시야가 병거를 타고 직접 에후를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러 간 장소는 바로, 이스르엘의 나봇의 땅이었습니다.
요람이 예후에게 평화의 소식인가? 모든 것이 잘되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후는,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이 저지른 음행과 마술이 극에 달했는 데 무슨 평화요, 잘되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요람왕은 아하시야 왕에게 반역이라고 소리치고 도망하였습니다. 예후는 활을 쏘아 요람의 가슴을 꿰뚫어 그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요람 왕의 시종무관에게 “이 주검을 가지고가서 이스르엘의 나봇의 밭에 던지시오. 주님이 아합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합이 나봇과 그 아들들을 피를 흘린 것을 보았고 그것을 갚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 문 의 뜻
예후는 바알숭배를 척결하기 위해 요람왕을 죽이기로 모의를 하고 감행합니다. 이것은 요람 왕의 입장에서는 예상하기 힘들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후는 정확하게 표현하여 주님의 뜻을 알립니다. 22절에 요람왕의 모친인 이세벨의 음행과 마술의 행위가 이 땅에 극렬한 상황에 평화와 안녕이 무슨 말이냐는 취지로 말을 하고 그를 처단합니다.
나훔3.4에서는 본문과 마찬가지로 음행과 마술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음행과 풍요의 종교가 연결되어 있음을 규탄하는 호세아의 예언과도 맞닿아있습니다. 풍요를 바라고 주님을 떠나 다른 것을 찾아 다니는 것이 우상숭배이며 바알숭배가 바로 풍요를 위해 음행의 마술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알 숭배가 음행고 연결된 마술로 풍요를 빌어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찾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창녀가 되어서 그 마술로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세벨이 적극 도입하고 그의 남편 아합 왕이 본격화하게 만든 바알 숭배를 지금 척결하고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타락에는 반드시 전체사회의 타락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아합은 주님이 나봇 가문에게 주신 약속의 땅의 기업을 함부로 빼앗으려고 사악한 방식으로 가문을 몰살시킨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그 죄악을 지금 갚으시고 계십니다. (왕상21장). 그리고 아합왕이 화살에 맞아 죽었듯이 그 아들 요람왕도 화살에 맞아 죽고. 그 시신을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서 그 것을 갚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대상을 찾아가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 신에게 찾아가 그 앞에서 음행을 행함으로 바알신을 움직여서 농사의 풍요를 얻어내려했던 타락한 당시의 종교를 보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숭배는 나봇의 포도원이 파괴되어 그 기없이 끊어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기업과 유업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주님이 급한 성격의 예후를 급하게 말을 몰아 그 일을 감행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단호하고 신속하고 철저하게 마음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보수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뜻의 기초는, 우상을 버리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입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 마음에 가득한 여러 가지 우상이 있었고, 한 두 가지의 주된 우상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그것을 좇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으려 했습니다. 우상숭배자였습니다. 내가 원하던 사랑, 인정, 안정, 안락, 즐거움, 보호, 만족, 의미 등등을 주님 밖에서 얻으려 했습니다. 그것들을 얻으려고 우상에게 가서 마술을 부리듯, 아부와 정성을 들였습니다. 결과는 파괴와 허무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상속으로 주신 하나님 나라를 알지도 못하고 거룩하게 그 유업을 잇지도 못하였습니다.
(구원)그러나, 우상숭배자, 죄악으로 물든 타락한 자를, 죄없으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함께 못박아 죽음으로 심판하시고 장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나에게도 새생명을 주시고 주님 안에서 사는 새피조물로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더 이상 우상숭배자, 타락한 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나라 유업을 함께 이을 자입니다.
(아버지품)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아버지께로 달려갑니다. 십자가 구속과 부활의 생명을 받아 누립니다. 나는 죄씻음받도 용서받아 용납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공동상속자로 서 있습니다.
기 도
삶에서 거룩함을 회복하소서. 마음 속의 모든 우상을 보이시고 신속하고 단호하고 철저히 무너뜨리도록 은혜를 부우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우상을 버리라는 주님의 뜻에 따라 속히 우상척결의 반열에 들어서서 일어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모든 종교의 마술 같은 영향력에서 벗어나 인격체이신 주님의 언약안으로 들어오게 하소서.
생 명 일 기 (9월 18일 수)
평범한 하루였지만 밤에 마음 속에 느껴지는 불안과 좌절감이 듭니다. 나에게는, 주님께 소원하고 기도하는 것들을 행할 능력과 힘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 틈을 타서 주님을 향한 믿음이 옅어지고 크고 작은 죄악에 넘어지게 됩니다. 나를 보고 주변 상황을 보면 주님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길을 가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실천이 밀려 나가고 있습니다. 기도를 먼저 세워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