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입들 몇몇 때문에 골머리를 좀 앓아보고 느낀점 몇가지.
자 예를 들어봅시다.
신입A,B,C는 똑같은 날에 들어왔고, 똑같이 배웠고, 업무파악도 똑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직속상관이라고 합시다.
제가 신입에게 모르는 일을 시킵니다. "과테말라오징어튀김 좀 가져와봐" 그리곤 전 뭔가 바쁘다는듯 모니터에 코를 처박습니다.
당연히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이 뭔지, 어디에 있는지 신입들은 모릅니다. 신입A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도대체 뭘알겠다는건지는 모를 대답을 남기고 가선, 주위 좀 만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창고를 뒤져보기도 합니다.
반면에 신입B는 "그게 어디있는지 몰라염" 합니다.
자 여기서, 일처리상 더 빠른쪽, 사실상 맞는 쪽은 B입니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이야기해야하고,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이 뭔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시키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모른다고 묻는게 당연한거고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내 인생살이 그렇게 씸플하지가 않습니다. 상사들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상사이기 때문이죠. 제가 할짓이 없어서 콧털 뽑기에 열중하다 못해, 뽑은놈들중에 제일 긴놈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있더라고,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이 경향은 어중간한 중간관리직일수록 더 심합니다. 왜냐하면 중간관리직들은 맡은 일은 많고, 48만가지 이상하고 귀찮은 일들로 자기를 귀찮게 하는 더 높은 상사들에게 늘 괴롭힘 당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적어도 아래에선 저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입들에게 뭘 시키는 사람은 중간관리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근무평가를 매긴다면, 결과적으로 일은 약간 더딜지라도 제 시간을 앗아가지 않은 A에게 더 높은 평가를 줄 확률이 높습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저는 그다지 멍청하지 않은 상사라서, 분명히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이 어디에 있는지 A와 B에게 보여준적이 있다는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입사 2일째 누군가가 저에게 쓰리랑카고추튀김을 내놓으라고 했고, 가는김에 A와B를 창고에 데려가서 창고 두번째 선반 세번째 서랍에서 쓰리랑카고추튀김을 꺼내면서 아래서랍에는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이 있다는걸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 기억하고 있을꺼라고 믿고, 시킨겁니다.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순간 신입들의 얼굴표정을 보아하니, 모두 그때의 기억을 까맣게 잊었다는걸 알수 있었지만, 상사의 시간은 소중하고 전 이미 한번 가르쳐준적이 있기 때문에 싸그리 무시하고 바쁜척하면서 몰래 nba final을 시청합니다.
신입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잡일이 "뭐 좀 가져와라" 이고, 가장 당혹스러워 하는게 "뭐 좀 가져와라" 입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시키는 사람의 99%는 당연히 이게 어디에있는지 알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시키고, 반문을 용납하지 않을 표정으로 휑하니 사라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신입들은 자기 지갑은 어디에 뒀는지 모를지라도, 과장님 책상 왼쪽 서랍 두번째 칸에 쓰다남은 지우개 반쪽이 처박혀 있다는건 알아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선 하루 24시간 날이 서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하는 이야기들, 어디서 언듯 스쳐본 물건들, 모두 기억해야합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물건과 이야기까지도 기억해 놓으면 언젠가는 쓰입니다.
왜냐고요. 스쳐지나가며 보여줬던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의 위치를 기억하는 신입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전 그 사람을 일을 잘하는 사람까지는 모르더라도, 적응이 빠르거나 최소한 기억력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겁니다.
더 나아가, 제 상사가 저한테 "야 이디오피아감자튀김은 어딨지?" 라고 물었는데 제가 "어.. 그건 어딨더라.." 라며 버벅댈때 창고를 유심히 봐뒀던 신입C는 제가 쓰리랑카고추튀김을 꺼내면서 언듯 보여준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은 물론이요 창고 오른쪽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이다못해 습기를 먹어 곰팡이 끼기 시작한 이디오피아 감자튀김까지 봐놨었기에 쪼르르 달려가선 이디오피아감자튀김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백점 만점에 백십점쯤 되는거겠죠. 그럼 저나 제 상사는 앞으로 뭘 찾는 일은 계속 C에게 시킬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군대이건 직장이건 어떤 새로운곳에서 적응을 해야할땐 모든 물건들의 위치를 최대한 많이 기억하려 했습니다. 그게 첫걸음이고, 첫걸음은 무척 중요하거든요.
며칠전에 비스게에 대구맛집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진흥반점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그걸 언듯 보고 넘어갔었었는데 어느날 문득 그게 생각납니다. "어, 대구 진흥반점 맛있다던데, 그게 어디지?"
안타깝게도 강릉에서 태어나서 강릉에서 자란 A나 광주토박이B나 대구에는 태어나서 단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C는 진흥반점이 뭔지도 모릅니다. A는 B에게 물어봅니다. "진흥반점? 넌 알어?" B는 저한테 말합니다 "그게 뭔데요. 전 들어본적이 없는데요" 그때C는 이미 네이버 키고 진흥반점 치고 있습니다.
A나 B의 행동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업무랑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고, 뜬금없이 한 이야기인데다가, 딴지역 사람들은 알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네이버느님은 전혀 전능하시진 않지만 전지에는 상당히 가까우셔서, 세상 모든 궁금증을 다 해결해버릴 기세로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하고 계십니다. 네이버에 "대구 진흥반점"만 치면 관련 정보가 3일은 밤을 새야할정도로 쏟아집니다.
어쩌면, 이건 적극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과테말라오징어튀김을 찾을때도 A는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려 했고, B는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상사에게!) 답을 구했고, C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쪽이 실질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명확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상사가 바라는 신입사원은 B보단 A, A 보단 C 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이버 키고 "진흥반점" 치는건 여기 까페에 들어와서 비스게 글을 읽는 정도의 인터넷 친숙도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살고 있는 2~30대 중에 그정도 못할 사람은 20% 이내일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생활을 해보면 그런 생각을 해내는 사람-특히 신입-은 의외로 적습니다.
신입들은 당연히 모르는게 많습니다. 모르는게 잘못된것도 아니고 당연한겁니다. 하지만 모른다고 말하기 이전에 딱 3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지금은 모르지만 자신이 해결할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는 일인 경우가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모두 모르는 똑같은 상황에서 스스로 해결 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C, 스스로 하려고 노력은 하는 A, 평범한 B. B가 나쁜게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의 신입이 B라고 봐도 무방하고, B의 행동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뭐 시킬일이 있으면 C-A-B순으로 시킬겁니다. 왜냐하면 혼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혼자 해결할 능력이 있고 저의 시간을 가장 덜 빼앗아 가는게 순서거든요.
잡다한 물품 찾아오는일 부터 시작되지만, 그 일이 잦아지면 부닥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이 지내면서 일을 잘 해결해낸다면 작게나마 신뢰가 쌓입니다. 그러면 제대로된 일거리를 누구에게 줄때도 당연히 같은 순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참 어이없는 이야기죠. 창고에 과테말라오징어튀김 위치를 기억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차이가 훗날 몇개월, 혹은 몇년이 지난뒤에보면 A와 C는 프로젝트를 맡고 자기 몫을 하는 직원인데 B는 아직도 복사만 하고 있게 됩니다. B가 딱히 뭘 잘못한것도 없고 지극히 상식적으로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인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몇년 먼저 해봤다고 몇자 적습니다.
머리아픈 사회초년병들의 첫걸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빕니다.
ps : 혼자 해결하려다가 사고 치는 경우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눈치껏 하라는 말 밖엔...
ps 2 : 과테말라오징어튀김, 쓰리랑카고추튀김, 이디오피아감자튀김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왜 생각난건지도 모를 단어니 제게 묻지 마세요.
첫댓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 참 중요하죠. 저 같은 경우는 팀 내 상사의 모든 접대를 따라다녔고 일년 간 빠른 퇴근이 열시, 늦음 두세시가 기본이었습니다. 주말에도 상사의 집에 놀러가고... 행사 시에는 엠씨보고.. 여러모로 피곤했지만.. 나름 인정받았습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됐는데 그저 와이프에게 미안할 뿐이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인 저에게 취업 후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잘 알려주는 글 같네요.ㅎ 잘 읽었습니다.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글을 군대가기전에 봤어야 하는데 ㅠ.ㅠ
대구 맛집 올린사람인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근데 저는 조금 다르네요. 모르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물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사의 갈굼이나 업무의 빡빡함이 지나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에 "무조건적으로 물어보느냐 아니면 나름 고민 혹은 노력을 해보고 물어보는것이냐" 에 따라서 상사에게 보여지는 모습도 다르겠지요.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는 중간관리직이 빠지게 되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본문에도 나와있듯이 B가 대부분이고 B가 나쁜게 아니기 때문에 중간관리직은 바로 그 B를 어떻게 쓸만하게 만들어내냐가 자기의 평가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중간 관리직은 방치해도 알아서 잘하는 C가 자신에게 알맞고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을 중간관리직의 취향에 맞춘 소유물(?)로 뽑아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신입사원에게 업무를 가르치고 관리해서 쓸만하게 만들길 기대하지 방치하게 놔두길 바라지 않습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 C는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고 B는 여전히 복사만 하고 있게 되면 윗선에서는 C에 대한 평가는
좋아지지만 B에 대한 안좋은 평가는 B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관리직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같은 중간관리직 가와 나가 있다고 치고 가는 밑에 사원들에게 세세하게 업무를 가르쳐추고 B는 알아서 잘하라고 방치하게 된다면 나중에 가서는 가는 회사에 나와서 하는 일을 별로 없어보이게 되고 나는 아직도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고 눈코뜰세 없이 바쁘게 지내게 됩니다. 이런 경우 나의 입장에서는 가는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고 자기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윗선의 평가는 전혀 다르죠. 가에게서는 관리직의 역량이 있다고 보게 되는 반면 나는 말단 사원일때는 업무처리 능력이 있다고 평가되었는데 관리직으로는
영 아니다라는 평가가 떨어집니다. 알아서 잘하는 C를 더 빨리 잘하게 만들고 알아서 잘하지 못하는 B는 챙겨서 잘하게 만드는 것이 중간관리직에게 중요한 일이죠. 사실 중간관리직 밑에 알아서 잘하는 C에게 일이 집중되고 알아서 못하는 B는 들어온 때나 나중이나 똑같이 발전이 없게 된다는 것은 중간관리직이 스스로 윗선에게는 나는 무능합니다라고 광고하는 모양세가 되어 버립니다. 회사 입장에서 중간관리직은 중간관리직일 뿐이니까요.
항상 theo 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하지만 직장생활 갓 1년 넘긴 초년병의 시각에서 보고 느낀 점은 C 같이 행동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본문에 언급하신대로 상사는 앞으로 일을 C-A-B순으로 시키거든요. 사회라는게 참 불합리해서 일을 잘 하고 많이 하는 만큼 정당한 평가(고과?)를 내리는게 아니라 이 경우 C는 과부하에만 걸려있고 헛질하는 꼴을 많이 봤습니다. 상사들 입장에선 일을 하나씩만 던져주지만 C는 깔대기 끝에서 모든 업무를 하나씩 받아내거든요.. C가 그 모든것을 척척 해내는 슈퍼맨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업무의 나선에서 빙빙 돌고만 있더군요.
입사 전까지만 해도 모든일을 다 씹어먹어버릴 기세였는데 일년만에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 이젠 거북이처럼 꾸준히 기어가려고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모르면 모른다라고 말하는 게 좋더라고요. 대신에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알아본 후에 혹은 신속하게 모른다고 말해야지, 시간을 아끼죠.
조직이라는 것도 상하관계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료라는 관점에서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상사보다는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말이죠.
근데 문제는 중간관리자에게 인정받는거랑 회사에서의 '공식적인' 평가가 상관이 없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거죠. 결국은 신입도 지시간 아끼고 지갈길 스스로 찾아야 된다는 거고. 중간관리자 일에 목매달면 안된다는 거.
가장 난감한건.. 신입때 상사가 전화해서 "난데"라고 했을때... 실제 목소리랑 전화기 목소리랑 많이 다른데.. 도대체 난데 하면 어쩌라고~~`
재미있는글 잘 읽었습니다. 위의 글에서 언급하신 중간관리자의 모습은 여러 유형의 중간관리자 유형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중간관리자의 모습일것 같네요
사회초년생인 제가 보기에 좋은내용이라서 메일로 스크랩해서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은 가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네요.
상황따라 사람따라 다르다는..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물어보는 걸 또 좋아사니는 분들도 계시고 일단 몰라도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을 좋아 하시는 분도 계시고...중요한건 신입사원이면 업무환경 상황파악이랑 상사 성향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