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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라 (시 111:1~10)
주일오전설교
2009/11/06 13:38 http://blog.naver.com/immanuel9597/10073453501 |
<10절> “~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라”고 한다. 우리 성도들이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길 축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으로 살길 바란다.
<1절> “~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우리 성도들이 평생토록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길 바란다. 성경에 ‘감사하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좀 더 강하게 ‘감사’를 강조한다.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한다. 왜?
<2절> 우리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행하실 크신 일’로 인하여 감사한다. 우리 인생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원인을 모르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든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인생 중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인사> 당장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감사합시다.
절대 쉽지 않다. ‘전심으로 감사하라’는 말을 무조건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일이 서운한 일도 일일수도 있고, 답답한 일일수도 있고, 화나는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내 입장에서만 그 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다각적으로 그 일을 본다면 큰 사고를 막기 위해서 예방 차원으로 일어난 작은 사고일수도 있고, 장래를 예비키 위한 하나님이 사전작업일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길을 막으신 이유는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준비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양을 잘 키우지 않아서 양을 모는 법은 잘 모르지만 소는 몰아본 경험이 있다. 옆으로 자꾸 비껴 나가면 막대기로 툭툭 쳐 주면 바른 길로 간다. 그러다 또 비껴나가면 또 막대기로 툭툭치면 바른 길로 간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이 우리가 어긋난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린 막대기로 우리를 톡톡 친다. 그럴때에 바른 길로 얼른 돌아가면 우리의 삶이 형통한 것이다. 감사한건 우리가 어긋난 길로 갈때마다 하나님이 톡톡 쳐 주셔서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길 바란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가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살길 바란다.
<4절> 하나님이 누구신가? 를 가르쳐주고 있다.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 우리 성도들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만나는 신령한 경험이 있길 축원한다. 우리가 행한대로 다 갚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자비로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길 바란다.
<5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신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인생은 밥 걱정하지 않는 인생 살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잘 믿으면 먹고 사는것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5절 후반절> “~ 여호와께서는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가 약속을 하고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항상 메모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메모해둔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약속할 때는 절대 그 약속을 잊지 않을 것처럼 하지만 막상 무슨일을 하다보면 까마득하게 잊을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영원히 기억하신다.
사람이 무언가를 해 준다고 했는데 안해주면 가서 달래기도 그렇게 한데, 하나님이 우리와 하신 약속을 근거로 우리가 요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약속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잊어버리지도 않으시고 변경시키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시다.
혹 하나님의 응답이 아직 손에 잡히지는 않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은 분이 있다면 곧 이어 눈에 보이는 응답, 손에 잡히는 응답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어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년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건강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네 자녀를 복되게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틀림없이 부흥케 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현재 내 삶이 그와 정반대일 때에 하나님이 잊으셨나, 까먹으셨나.., 의심이 생긴다면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분임을 믿길 바란다.
하나님은 나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이다. 이 확실한 믿음 붙들고 살길 바란다. 성경에 반은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이 기록되어 있고, 성경에 반은 하나님이 이루신 약속을 기록한 책이다. 성경의 반은 예언이고, 반은 성취를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믿음으로 붙들고 기도할 때에, 그리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의 말씀을 내 삶 속에서 이루실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와 어려운 일들을 참 많이 만난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기 때문이다.
혹 고난 중인가? 어려움 가운데 있나? 당신이 일어날 수 있는 지팡이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팡이를 붙들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끈을 붙들면 넘어졌다가도 또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 내가 동서사방에서 너를 돕는 자들을 보내 주리라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하리라. 내가 물 가운데를 지날 때에도 불 가운데를 지날 때에도 너와 함께하리라”는 귀한 약속들을 되새기며 회복할 때에 또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6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뭘 주시나? [열방/여러나라]을 주신다고 한다. 왠만한걸 준다고 해야 ‘아멘’도 할텐데 ‘여러나라’를 준다니 감이 안와서 아멘도 안한다. 땅 천평 준다고 해도 감이 안올텐데 하나도 아니고 여러나라를 준다고 하니 도대체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여러나라를 주사.” 이 축복의 말씀이 믿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주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받는 은혜있길 바란다.
<6절 후반절> “~ 행사의 능을 보이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많은 사람에게 보이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주님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살길 바란다.
<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걸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것이 지혜로운 인생의 시작이고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지혜롭게 사는 법은 간단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여호와를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존경하는 어른 앞에서 갖는 떨리는 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또 하나는 무서워서 공포에 떠는 두려움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무서워 떠는것이 아니라 존경스러워 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경외’란 무서움이 아니라 존경스러워 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갖고 살길 바란다.
하나님을 우리는 ‘아바(=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에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하나님을 어렵게 생각하고 근엄하게 생각하는것은 옳은 신앙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경계선을 구분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꼭 부모와 자식 사이 같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너무 근엄하게 하면 애가 주눅드는것 같고, 반대로 다 받아주면 자식들이 아버지 머리꼭대기에 올라간다. 이 경계선을 구분하는 것이 참 힘들다.
아버지 입장에서 자녀들이 ‘아빠’하고 달려오도록은 해 줘야 한다. 하지만 너무 함부로, 버릇없이 아빠에게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아빠를 친구처럼 여기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어떤 집은 아이들이 아빠를 친구동생처럼, 혹은 종처럼 대한다.
너무 풀어줬다 싶어서 엄하게 하다보면 아빠들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집에 군대도 아니고 내가 애 너무 기 죽이는거 아냐? 라는 마음에 갈등이 있다. 풀어주면 기어올르고, 엄하게 하면 기가 죽는거 같아 참 균형을 잡는것이 힘들다.
하나님이 우리 ‘아빠’다. 그래서 우리가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즉 존경스럽기에 조심할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너무 편안하게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본다. 때로는 아빠한테 혼날까봐 조심하는 아이처럼, 우리가 하나님한테 혼날까봐 한번더 생각해 보고, 조심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당신은 아버지 노릇 어떻게 하나? 정말 균형을 잡는것이 힘들다. 그래서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는것 같다. 당신은 자녀들에게 편한 아버지인가? 엄한 아버지인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편안한 마음과 어려운 마음을 동시에 갖길 바란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가까이 지내다보면 편안해진다. 사람간에 편안한 관계를 갖는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간의 관계가 편안한 것만 있다보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약간은 어려운 것도 서로 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구인가? 편한 사람일 것이다. 왜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줬을까?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편안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조심스러움이 항상 함께 있길 바란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 주눅들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하게 하지 못하고 편하게 해 준다. 그런데 너무 편하게 해 주다보니 버릇이 없어지고 함부로 한다. 또 그런걸 보면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근엄하게 한다. 그러면 애들이 이제는 눈치를 본다. 그런 또 ‘이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우왕좌왕하게 된다. <질문>당신 집은 어떻게 하나요?
교수님이 학생들을 편안하게 대하면 report도 제출하지 않고 애교로 때우려는 학생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혼내고 ‘F’ 주면 또 삐져서 다음 학기에는 수강신청도 하지 않는다. 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말 어렵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편안하지만 어려워할줄 아는 은혜있길 바란다. 믿음의 성도는 부모 자식 관계도 편안하지만 어려워할줄 알아야 하고, 목사와 성도간에도, 성도와 성도간에도 편안하지만 어려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직장에서 사장님과 직원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편안한 것만이 다는 아니다. 편안하지만 어려운 관계가 사장님과 직원들간에 필요하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도 편안하지만 어려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끔 무게 잡고 있으면 아내가 나를 대하는게 다르다. 좀 있다가 옆구리 찌르며 밥 먹자고 사정해야 하지만..,
사람관계에서 균형잡는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을 생각했다. 우리 하나님 얼마나 힘드실까? 하나님 참 고민 많으시겠다. 성경을 보면 ‘아빠’ 하나님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떨때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을때에 정말 편안하지만, 동시에 어려워할줄도 아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해서 그 자유를 방종으로 만들면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례하게 대하면 안된다. 때론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출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무 때나 ‘hello 하나님! hi 하나님!’하면 안된다. 정말 이런 사람들은 대책이 안선다.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사람 가운데도 좀 어려운 사람이 있는건 참 좋은 것이다. 주변에 편한 사람만 두려고 하지마라. 내가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내 주변에 편한 사람만 있으면 안되고 어려운 사람도 더러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조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심을 하면 실수를 할 확률이 적어진다. 집안에도 어려운 어른이 있어야 하는 것은 그래야만 조심하게 되고, 결국 실수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갖는 약점은 하나님을 너무 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편하기 때문에 무시한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신앙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편한 하나님인 동시에 정말 어려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 경외하는 삶이다.
<10절 후반절>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좋은 분별력과 깊은 이해심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때에 맞는 말과 때에 맞는 행동을 할줄 안다. 이걸 성경은 ‘적당한 말’이라고 표현한다. 적당한 말을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고 어려운 것이 없다. 똑같은 말을 적당한 때에 한마디 하면 분위기에 확 살아나지만 똑같은 말을 이상한 때에 하면 분위기 ‘쏴’해진다.
‘좋은 지각’이란 때에 맞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때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같은 말이라도 때에 맞게 하면 은쟁반에 금사과처럼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때에 맞는 말을 하고, 때에 맞는 행동을 함으로 존귀한 인생 살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은혜가 있다. 그러고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면 여러면에서 너무 좋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많은 부분에 약속하셨다. 예배를 마치고 가정으로, 직장으로 돌아갈텐데 우리 성도들이 가는곳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러 나아가길 바란다.
[출처] 여호와를 경외하라 (시 111:1~10)|작성자 immanuel9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