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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는 숙근성 초본 다년생 작물로 한번 심으면 10년 정도 수확 할 수 있다. 재식 밀도는 토양조건에 따라 다르며, 재식한 첫해의 생육상태 즉, 모시풀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최후까지 수확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재배시의 시비관리 등이 중요하다. 서천군에서 재배하는 저마는 재래종과 백피종이 있는데 백피종이 주로 재배된다. 재래종은 가늘게 쪼개지고 윤이나며 질기나 길이가 1.24m이하로 짧고 수량이 적게 나오며, 백피종은 보통1.55m로 길이가 길고 수량이 많이 나온다. 이는 모시째기시 양팔을 벌린 간격이 1.5m로 더 길거나 짧으면 비능률적이기 때문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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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수확은 심은 당년에는 2회 2년째 부터는 3회 수확을 할 수 있으며 가장 적당한 수확기는 대략 6월 하순에서 7월 초순, 8월 하순에 이수, 10월 상 하순에 삼수로 연간 세차례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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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모시 만들기는 종근을 심어 저마를 재배하고 다 자란 모시풀을 베어 모시풀 바깥층을 벗겨내고 속껍질로 태모시를 만든다. 모시풀의 속껍질을 햇볏에 말리고 물에 적시기를 네다섯번 번갈아 하면 모시의 최초 섬유질을 추출하는 과정인 태모시가 생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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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굿은 생산과 직접 연결되는 과정으로 모시굿을 만드는 사람은 대개 모시굿 만들기에만 종사하며, 모시굿을 모시필 생산자에게 판매하고 다시 태모시를 사다가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굿은 모시째기와 삼기과정을 거쳐 생산되며 보통 한사람당 5~10일에 걸쳐 3~5개의 모시굿을 생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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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모시를 이로 쪼개서 모시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과정으로 상저, 중저, 막저로 구분되는 모시의 품질이 나온다. 태모시의 품질과 모시째기의 숙련 정도에 따라 모시의 품질이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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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째기를 끝마친 다음 모시섬유 한뭉치를 “쩐지”라는 버팀목에 걸어놓고 한올씩 빼어 양쪽 끝을 무릅에 맞이어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시켜 광주리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침으로서 모시굿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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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모시굿에서 “젖을대”의 구멍으로 실끝을 통과시켜 한묶음으로 한 후 날틀에 걸어 한필의 길이에 맞추어서 날실의 길이로 날고 새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수를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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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는 대나무의 껍질로 만드는데, 3·4년이 지난 대나무라야 껍질이 단단하고 두터워 재료로서 적합하다. 제작과정을 보면 바디살 만드는 과정, 기둥살(일명 날대) 만드는 과정, 마구리를 끼우는 과정, 그리고 갓 붙이는 과정 등으로 구분된다. 바디의 종류는 모시베, 명주베, 무명베, 삼베 등 짜는 옷감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같은 모시베를 짜는 바디라 할지라도 베의 바탕 올이 가늘고 굵기에 따라 9새에서부터 18새까지 모두 다르다. 모시의 새수는 바디끼기에 의해 결정된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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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끼우기는 날실이 일정한 새와 폭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며 이 작업과 병행하는 것이 꾸리감기이다. 꾸리감기는 씨줄을 만드는 과정으로 모시짜기를 할 때 씨실 꾸리를 북에 담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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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매기의 “매다”는 “다했다”는 완성의 의미가 있다. 이 과정만 거치면 모시짜기를 위한 준비과정을 모두 마치게 되는데, 무더운 여름에 불앞에서 작업해야 하는 고역을 견디는 힘든 작업이기도 하다. 모시매기는 바디에 끼워진 모시를 한쪽은 도투마리에 매고 다른 끝은 “끌게(도투마리를 감으면 끌려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 매달아 고정시킨 후 콩가루와 소금을 물에 풀어 만든 풋닛가루를 뱃솔에 묻혀 날실에 골고루 먹인다. 그리고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고 왕겻불로 말리면서 도투마리에 감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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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새수 정하기, 모시날기, 바디끼우기 등을 거쳐 베틀에 올린 후 모시짜기가 시작되는데, 실내가 건조하면 실이 말라 바스러지는 등 많은 습기를 요하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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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대부분 반지하의 움막에서 모시를 짜는 원시적인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채광이 불량하고 온도 조절이 어려워 여름철에는 대부분이 고통스럽게 작업을 하며, 베틀에 않아 전신을 움직이며 하는 힘이 많이 드는 노동으로 지금까지 개선 된 것이 가습기를 틀어 놓고 작업하는 형태이다. 또 이 작업은 상당히 속련된 기술이 필요하며 숙련도에 따라 모시짜는 기간이 달라진다. 보통의 경우 3일에 1필정도를 짜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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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된 모시는 서천군내 5일장인 한산장의 1일과 6일, 판교장의 5일과 10일에 유통되며, 거래량의 70% 이상과 질 좋은 세모시는 주로 한산장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모시하면 한산장을 일컽게 되는데 4~9월에 성시를 이룬다. 한산장에는 필모시와 모시굿장, 태모시장 등으로 나누어 거래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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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재배에서 여러 가지 고된 가공과정을 거쳐 베틀로 일정 규격에 맞게 짠 것을 필모시라 하는데 한산모시장 주된 거래상품은 필모시이다. 필모시는 상저, 중저, 막저의 3등급으로 나뉘어지며 올의 굵기와 짜임새에 따라 구분되어 등급이 정해진다. 한산모시장은 새벽에 열린다. 모시장이 새벽에 열리는 이유는 모시의 특성 때문인데, 모시는 습기를 흡수하고 발산하는 속도가 빠른 특성을 갖고 있어 새벽안개의 습기를 머금은 모시를 백열등 아래서 비춰보고 만져봐야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의 모시감별법에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산모시장은 생산자가 팔려고 하는 모시가 한산모시인지를 우선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며 이 검사를 마치지 않으면 유통을 할 수 없도록되어 있다. 한산모시의 신뢰성을 높이고 질좋은 모시가 유통되도록 하기위해 장내에 마련된 모시검사소는 확인도장을 받아야 비로소 유통 될 수 있다.
한산모시장은 필모시 외에 모시의 원료인 태모시와 모시굿을 사고 파는 장터기도 하다. 태모시는 모시굿 생산자에게, 모시굿 생산자는 필모시생산자에게 각자의 상품을 거래하는 곳이다. 태모시는 종근을 심어 저마를 재배하고 다 자란 모시풀을 베어 모시풀 껍질에서 섬유질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하게 되며, 모시굿은 생산과 직접 연결되는 과정으로 생산자가 이(齒牙)로 직접 실처럼 가늘게 쪼개는 모시째기를 거쳐 만들어진 실토막들을 무릅 맨살에 올려놓고 잇는 모시삼기과정을 한번 더 거쳐 생산되며 보통 한사람당 5~10일에 걸쳐 3~5개의 모시굿을 생산하게 된다.
직사각형의 긴 탁자와 의자, 그리고 삿갓을 씌운 백열등이 설치되어 있는 필모시장의 새벽 5시. 백열등 불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모시 생산자와 거간꾼벌이는 진풍경은 어두운 곳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곱디 고운 세모시를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중간상인과 더운날씨에 비지땀을 흘리며 한올 한올 정성을 기울였을법한 최상품의 필모시를 자식처럼 곱게 간추리며 제값을 받으려는 모시생산자간의 입씨름은 언성은 높지 않으면서 두런 두런 옛이야기 하듯 정겨운 풍경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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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는 서천군 한산면을 중심으로하여 화양면, 기산면, 시초면, 문산면, 판교면 등 서천군 한산면 인근 마을에 생산농가의 폭이 넓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필모시 1,500호, 모시굿 생산농가가 약 5,000호로 서천군 전체농가의 46%에 이르렀던 적이 있으며 소량 생산농가를 합치면 이러한 통계수치를 훨씬 넘는 것으로 파악 되었다.
한산모시는 1950년대만 해도 모시의 수요와 생산량이 계속 늘어 연간 20,000여필에 달하였으나 나일론 계통의 화학섬유가 들어오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그 수요감소하여 1985년경에는 연간 5,000필 정도에 머물게 되어 한산모시의 명맥이 사라져갈 위기까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1980년대 후반부터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우리의 고유 민속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옛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며, 1985년경부터 정부지원의 도움으로 한산지방의 저마재배면적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생산량도 늘어 1980년 이후 1991년까지 9배의 생산량 증가를 가져와 한산모시가 여름철 의류로 활기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모시직물의 역사가 유구하고 한때는 그 유통이 왕성했음에도 모시제품은 상품으로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로는 100% 수공품이어서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점에도 기인하지만, 전통의상 재료라는 고정관념도 한몪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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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은 한산모시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우선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량생산체제의 생산기술 및 시설 개발과 대중이 즐겨 입을 수 있는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변화시키고, 모시가 가지고 있는 식 재료로서의 기능성을 활용하여 모시음식을 개발하여 한산모시의 생산 쳬계와 제품개발의 혁신을 이룬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서천군은 이러한 계획에 따라 모시섬유의 대량생산을 위한 방적기술 개발하여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으며 모시를 이용한 사계절상품개발, 모시제품 대량생산체제 구축에 따른 수요를 맞추고자 저마 종근사업 확장을 위한 농가 지원사업, 현대적 모시제품 생산 및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특화사업인 모시제품 직영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타 섬유에 비하여 통풍성이 월등하기로 유명하며, 습기를 흡수하고 발산하는 속도가 빠르고, 모시의 깔깔한 질감과 흡수성으로 인하여 무더운 여름에는 오히려 옷을 입지 않은 것 보다 모시옷을 입는 것이 더 개운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 천연섬유 한산모시의 대량 생산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국민 모두가 즐겨 입는 한산모시의 재탄생이자 우리 민족의 지혜가 담긴 의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이 즐겨 입는 한국 최고의 천연섬유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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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서천군 한산면은 모시길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며 한산모시는 옛부터 나라에 진상함은 물론 외국에도 수출도 하였던 모시중의 모시였다. 나라에서는 생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길쌈의 경연대회가 있었다는 문헌(삼국사기)을 통하여 볼 때 일찍부터 모시길쌈과 관련된 민속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 문헌에 근거하여 서천군 한산면에서 저산팔읍길쌈놀이가 발굴되기에 이른다.
현재 서천군 한산면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모시의 명맥을 잇고 있으면서 매 5일마다 모시시장이 형성되어 전국 각처에 모시를 공급하고 있다. 한산 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보급함은 물론 민속놀이를 보존·계승코자 모시길쌈놀이를 체계적인 고증과 구성 연출을 통하여 「저산팔읍(苧産八邑)길쌈놀이」를 발굴하여 1922년 제23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그후 '86년에도 도대표로 출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바 있다. 매년 모시문화제 행사시 시연을 통해 국내외에 홍보하고 있다.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모시짜기로 유명한 한산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베짜기에 관한 민속놀이로 주로 부녀자들의 가내수공업이었다. 신라 유리왕(재위 24∼57)이 두 왕녀로 하여금 부내의 여자들을 나누어 길쌈을 하게하고, 추석날에 결과를 심사하여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는 『삼국사기』기록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모시길쌈이 있었으며, 나라에서도 이를 장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쌈놀이는 모시를 베어다 모시베끼기, 모시삼기, 모시꾸리감기, 모시날기, 모시매기,모시짜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노래와 행위로 표현하고 있다.노래는 민요풍으로 여인네의 애환과 체념,그리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또 저산팔읍을 예찬하는 노래에 맞추어 흥겹게 춤추면서 농사의 고달품을 잊고,이웃과 화합을 꾀하며 협동을 다진다.발표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장원을 한 마을을 축하해준다.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의 전통은 근래까지 전승되어 농촌 부녀자들이 7월에서 8월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으며, ‘두레길쌈’이라고 하여 서로 겨루기보다는 함께 돕는 품앗이 같은 두레의 성격이 짙다.
서천군은 지역의 우수한 문화유산인 저산팔읍길쌈놀이를 보존하고자 저산팔읍길쌈놀이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산면민을 중심으로 이 놀이를 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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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모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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