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 보구 십 년 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군자는 복수를 하는데 10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는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복수! 달콤함이 느껴지는 사랑의 묘약 같은 말이다.
난 무엇을 하든지 머리가 나빠서 잘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꾸준히 할 자신은 있다. 복수의 최고 핵심은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다디단 승리의 열매를 가져다준다. 꾸준함은 어떤 사악함도 이겨낸다. 지난 2년 푸르디푸른 칼날을 갈고 또 갈았다. 그들의 사과를 기다리면서! 9대 1의 멋진 싸움이었다. 내 머리통은 다 깨졌고 피딱지는 아직도 고약처럼 찐득찐득 남아있다. 밤마다 피가 흘러내린다.
<사과의 종류>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유혹의 상징인 붉디붉은 사과, 뱀이 휘감고 혀를 날름 거릴 것 같은 치명적 사과이다. 천재의 머리에 떨어져서 과학계를 뒤흔든 뉴튼의 사과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무수히 많은 이들의 머리에 떨어졌을 사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을까?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있던 스위스를 배경으로, 독일 작가 실러의 사과는 복수를 일으킨 피의 사과이다. 스위스의 사냥꾼 빌헬름 텔이 잔인한 영주인 헤르만 게슬러의 음모를 이겨내게 이끈 화살 꽂힌 사과이다. 트로이 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황금사과, 가난하고 평범한 시골 농부 폴 세잔을 위대한 화가로 만든 사과,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사과, 스피노자의 꿈과 희망의 사과, 영천을 고향으로 19년째 모티브의 원천인 윤병락 화가의 사과. 앨런 튜링의 청산가리 사과, 권력욕 명예욕의 상징인 헤라 클래스의 황금 사과! 역사상 사과가 엄청난 사건들을 일으켰다.
내가 원하는 사과는 위에 있는 그 어떤 사과도 아니다. 사과(APPLE)가 아닌 사과(APOLOGY)이다. 어느 날 그들의 삶의 여정에서 "그래 우리 때문에 힘들었겠네!"라는 공감을 불러오는 것! 수십 년이 지나도 그때 죄송합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못 갚은 짜장면 값을 지금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기꺼이 무릎 꿇고 참회하는 진정성 있는 사과(apology) 말이다.
사과는 분명해야 한다. 기억기 안 난다는 말은 최악의 사과이다. 전달의 메시지가 명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정직한 것 이어야만 한다. 정직하면 한 번만 말하면 된다. 권력이나 이익과 별도로 마음에서 솟아나야 하는 것이다. 나보다 약하고 낮은 자에게도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알몸의 것이어야 한다. 압력에 의한 것이나 위선의 것 이미지 세탁을 위한 말 돌리기가 아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사과는 예술도 과학도 상상력도 유혹의 물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억지로 끌어낸 사과는 과연 , 의미가 있는 것일까? 멋진 사과는 태초의 오염되지 않은 물에서 우려낸듯한 슈퍼기닌 샤프란 차 같은 것 이어야 한다. 두통과 디톡스 효과가 있어야 한다. 마시고 났을 때 머리가 청명해지고 몸에 좋아야 한다. 억지로 사과받고 나니 몸에 병만 남았다. 자괴감과 허탈감만 밀려온다. 천재 뉴튼이 아니라 바보 같은 내 머리 위에도 진정성과 통찰의 사과 하나쯤 떨어졌음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복수를 미루는 첫 번째 이유, 남을 파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 얻을 것 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복수를 꿈꾸는 첫 번째 이유, 책임회피나 집단적 악의성의 행동이 세상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악의 화신은 개인이 만들어낸 것보다 집단 통일성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의 공포감이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합리화시켰던 시간이었다. 악의 평범성은 세상을 지배했고 그들은 이제 애매하게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세상은 충분히 우매한 집단 지성의 괴물을 창조해 낼 만큼 모든 게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제발 좀 현명한 결별을 택하길 기대해 본다.
갚을 돈 잘 주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내가 복수를 꿈꾸는 두 번째 이유는 이제 받을 돈 잘 받는 사람이고 싶다.
어찌해야 난 자유로워지고 해탈에 이를 수 있는지? 고민해야겠다. 좋은 인생, 나쁜 인생은 없다. 상당히 주관적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은 분명 존재한다.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 이기 때문이다. 비통한 삶의 깊이에 방점을 찍고 싶다. 용서해야 할 자와 아닌 자를 구별하고 싶다.
사과가 몸속 독소 배출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사과는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
초겨울 새벽, 나의 "윤"을 생각하며 오늘도 난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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