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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2일 토요일 맑음.
오락실을 보며 동전교환.
금일은 7시 40분 일어나 8시 20분 아침이 끝나고 아우내외랑 기성이 함께 대구 동생 신혼방을 돌아보러 가는데 김치와 고춧가루랑 참기름 3승 짜가지고 모두 가지고 2박 3일 예정으로 11시 20분차로 집과 오락실을 내게 맡기고 갔다.
아버지께서는 콩 타작을 해놓은 것 부치고 하여 오늘 저녁때 고추 말린거랑 모두 싣고 오신다 하고 가신 후 나는 집 앞에 나가서 차가 가는 것을 보고 들어왔다.
집을 잘 보라고 당부하는데 스스로 도적이나 나쁜 애들이 오지 않아야지 열 눈이 도둑 한명 못 잡는다고 나 혼자 있다고 훔치고 저지레 하려고 하면 어쩔 수가 없지요.
잘 보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오락실을 지키며 돈을 바꿔 주어 돌아와서 별일 없어야 잘 본 것이 되니깐 자신 없어 그러나 애들이 학교를 파하고 가는 길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모두 모여 오늘은 날이 포근하여 실내 직접 나가 앉아 바꾸어 주었다.
중식은 선례랑 찾아 먹고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다.
아침의 대밭골 도계댁께서 바깥어른 회갑 청첩장을 외숙께 보내려고 주소를 좀 적어 달라고 오셨다.
계원이어서 그렇다며 적어드리고 권씨 족보가 와서 읽고 책도 좀 보았다.
저녁때 오환이 경운기에 모두 싣고 아버지 타고 넘어와서 환타가 있어 따가지고 선례, 아버지, 나 함께 한잔씩 한 후 이만원 주어서 보내고 설거지하여 저녁을 차려 먹었다.
애들이 오지 않아 내방의 선례랑 나와서 TV보다니 애들이 와서 오락게임 조금 하다갔다.
어제 그제 써둔 편지을 아버지 아침 들에 가시는 길에 갖다 넣으셨다.
최재근, 윤자, 미자. 안태원 5통이었다.
아직도 고마운 분들께 다하자면 10통 이상은 써야 한다.
금년이 다가기 전에 무엇이라도 더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내야 할 텐데...
부처님 도와주옵소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중생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반야경과 법성계를 필기하고 오늘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기록하며 동생이 갔다 올 때 랑승만 시집을 한권 사오라고 부탁했다. 관세음보살.
필리핀 아키노를 밀어내려고 반란이 일어났다가 미국이 도와서 반란을 진압했다는 뉴스,
노태우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하고 있으며 내년도 예산 법정일이 오늘까지나 국회통과.
오락실을 지키면서 하루가 지났다.
1989년12월3일 맑음.
동생내외 대구 가고..
금일은 겨울날씨가 어제부터 포근하여 오늘도 포근한데 아부지가 찌개를 데워서 조반을 먹은 후 방안을 치우고 애들이 와서 돈을 바꿔주면서 아버지께 옷걸이와 문틈을 막는 테이프를 사오라 하여 붙이고 박고 제수씨가 사온 커튼 걸이도 박아놓고 청소차가 와서 아버지 얹어주고 옆집 앞의 경운기를 세운 것 치워주면 하여서 동장님과 동장댁 아버지 함께 밀어 올려 집 앞으로 치워드리고 골목을 쓸고 청소하고 화장실 앞으로 연탄 부스러기 씻어내려 깨끗이 치우고 중식을 먹고 재종형님께서 안동에 가셨다 오시는 길에 들려 집터 고추 온상하게 좀 주면 하시는데 아마 명년의 고추를 심어야 할 것 같다니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가신다.
아버지 고추 손질하시고 나는 돈 바꿔주며 불경을 읽다가 잠깐 앉아서 졸았다.
선례랑 김실이한테 전화를 하였다.
저녁때 제수씨 전화가 왔다.
별일 없냐고 내일 온다하여 재미있게 놀다 오라하고 저녁은 칼국수 사오시어 삶아먹고 있다니 은진 엄마 전화오고 매부도 전화가 왔다.
흑태가격을 알아보니 최고 23000원 간다하고 하품은 17000 ~ 18000원 간다하여 더 이상 내릴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단다.
오후 성심상희 신문 왔는가. 문하니 왔다고 하신다.
안호사형이 거기 와서 놀다 전화를 바꿔 얘기를 하고 신도회 기금을 알아서 하라고 한다.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한번 모여야 할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지 더 연구 해본 뒤에 결정하기로 한다.
금년 89년이 저물기 전에 명년을 위하여 계획한 일은 계획대로 하고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진다.
내가 연구하고 생각해봐야 모두 헛고생 아무 쓸모없는 생각이 되기 쉬우니 골아파 신경 쓰기 싫다.
오늘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불경을 쓴 후 TV보다가 권씨 종보를 읽었다.
인천 할아버님이 고문으로 인천종친회 총회가 있었음을 알았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엄마 아빠 없이 선례가 이틀째 나와 함께 잔다.
허전하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저녁때 잤다가 일어나 국수를 먹고 다시잔다.
어제 오백원 오늘 오백원 사먹었다.
1989년 12월 4일.
오늘 장날. 대구 갔던 동생내외 돌아왔다.
기침도 하기 전 백원짜리 동전 바꿔 달라고 경안사 아지메 와서 일어나 바꿔주고 방을 치우고 국수를 삶아 먹었다.
아버지께서 먹고 있다니 신실이가 와서 선례 옷을 챙겨 입혀 학교 보내고 방을 치우고 박에 나갔다.
전화료와 인천 족조님께 드린 편지가 주소불명이라고 돌아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무리 대조하여 봐도 주소가 잘못 기제 되지는 않았는데...
집배원이 배달 주소를 찾지 못하는 바보였는지 아니면 한문 주소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인지 이상한 일이다.
백부께서 장에 다녀오셨다. 바로 가시고 삼촌숙모, 미나무 할배 할매 미산 아지메, 박무진 어른들이 오셔서 막걸리 두병을 사가지고 접대하여 보내시고 삼촌 가스렌지 사고 장판 벽지 사가지고 리어카에 싣고 점심 사 잡수고 동전을 5천원 바꿔 달라하여 바꿔드렸는데 경안사 아지메는 그대로 있던 것 헤아려보고 그대로 가지고 갔다.
삼촌은 똑같이 넣어 놨다 주니 2백원이 더 왔다며 내주고 가신다.
그래서 양심 있는 사람의 마음을 또 알 수 있게 되었다.
중식은 오늘 먹지 않고 아부지 상인 아줌마 데려와서 백태와 흑태, 유태 모두 구경시키니 값이 엄청나게 내려 못 팔았다.
제수씨 1시 40분차로 와서 3시 도착하여 오전의 결혼사진 찾아와서 보여주고 동생한테 부탁한 랑승만 시인 시집은 이름만 가지고 찾기 어려워 못 사고 그냥 왔다고 했다.
돈을 모두 계산하여 주고 나와서 경을 쓰고 라디오를 듣다가 석식을 한 후 일어나 명상을 한 후 TV를 보며 이우동이 한테 엽서 한 장을 쓰고 오늘은 이런 가운데 하루가 지나갔다.
선례가 잘 놀아주었으며 별일 없이 아우내외 갔다 올 동안 집에도 별일 없이 잘 보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989년 12월 5일 화요일 맑음.
예안면 거주 권씨 화수회 금일은 예안면 종친이 한곳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이달 15일 날 조합장 선거를 하는데 현제 권정대 조합장을 다시 선출해 달라고 하는 뜻의 회의을 향원옥에서 가졌다.
집 앞의 상수도 관 묻은 곳에 세멘을 하여 구경하고 놀다가 들어와서 방청소하다니 지도자께서 점심 먹으러 가까운데 오지 왜 하며 들렸다 가신다.
말씀만 들어도 고맙다하고 중식은 내실에서 하고 복지 신문이 와있어 가지고 나와서 읽고 라디오 청취하며 휴식을 취하다니 제수씨 김치가 너무 짜가 와서 15포기 정도 다시 한다고 한다.
짜가우면 짠데로 먹지요 하니 다시 한다고 하신다.
소금 한 포를 사가지고 한말정도 남겨놓고 다 썼으니 섞을때 소금을 넣지 않아도 짭짤할 수밖에 없다.
짜운 것보다 매워서 더 먹기 어렵다.
석식을 하고 편지 한통을 쓰고 오늘 일과는 이렇게 보냈다.
아부지 모임에 가서 놀다 오셨다.
저녁때 누가 배추를 실어다 놓고 갔다.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정성보지 마시고 언제나 가피력 주소서.
염원하는 모든 분들 소망성취 하시도록 하소서.
89년 12월 6일 수 맑음.
한약 재료정리와 장롱 옷을 정리했다.
금일 기침을 하고 있다니 종숙께서 첫 버스로 잔치에 가시는 길에 들렸다.
8시 50분차로 가시고 부께서는 콩깍지 깨조저리 과원에 실어 노로 갖다 오시고 오전에는 편지가 일년 동안 온 것을 모두 정리하고 중식을 한 후 제수씨 고추 다듬는데 거들고 오전에는 한약 재료를 꺼내서 검사 해 본 후 넣어놓고 산조인 벌레가 일어서 씻어 넣어 놓고 두충도 찌그래기는 버리고 저녁때는 부 들어오시어 옷장을 함께 정리하였다.
헌옷가지를 모두 추려 내고 입을 옷만 각각 정리해 넣었다.
언제까지 옷을 갈아 입지 않고 그냥 있을 수도 없고 입은 쓰봉이 양 무릎이 뚫어지고 이젠 더 입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벗어버리고 속옷도 갈아입었다.
추운 날씨에 빨래하는데 수고스럽게 자꾸만 벗어내려니 미안하여 이번에는 1개월이 다 되도록 갈아입지 않았다.
이렇게 부담스럽게 평생을 어찌 함께 살아 갈수 있을까?
생각하면 기가 막혀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석식을 한 후 TV를 보는데 눈이 침침하여 언제부터인지 흐릿하기도 하고 눈물도 나오고 시력이 원래 좋지 않아서 눈이 충혈 되고 피곤을 느끼곤 하였다.
친우 기숙씨한테 오랜만에 편지를 한통 쓸까 하고 초안을 하다가 잠이 와서 그만두고 오후 백부께서 구룡 갔다 오신다며 들려다 가신 후 제수씨 대구 갔던 얘기도 해주신다.
새 사형께서 안부하시며 대구 오시면 꼭 연락하여 들렸다 가시라 하더란다.
말씀만 들어도 너무 감사하였다.
관세음보살.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1989년 12월 7일 목요일 흐림 비.
안동 KBS 방송국의 희망곡을 전화로 신청했다.
금일은 기침을 하고보니 날씨가 흐려 비나 눈이 곳 내릴 것 같다.
조식이 끝나고 불광을 읽다 부께서는 경주식당에 가서 놀다 오후에 오시고 짜파게티를 삶아서 중식을 한 후 용개 아지매가 왔다.
안동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한 시간 정도 놀다 간 후 4시 5분부터 KBS 안동 방송국 송화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당신의 희망가요 프로를 즐겨듣다가 오늘은 나도 참석해 보고 싶어 노래 곡목을 주현미 짝사랑을 적어 놓고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버튼을 눌렀다.
마침 연결이 되어 P D께서 노래곡목을 묻고 나이와 성명, 살고 있는 곳 등과 직업을 물어서 가르쳐 주고 아나운서와 대화를 나눠보겠냐 하여 나눠보겠다고 했다.
전화 끊고 있으면 전화한다고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조금 있다니 전화가 왔다.
보건소장이 받아 들고 내방으로 나왔다.
방송 나오는 것 들어보려고 아나운서와 인사를 나누고 먼저 피디하고 얘기한 것 그대로 얘기 한 후 아나운서 누구와 희망곡을 듣고 싶냐하여 이 시간을 즐겨듣는 모든 분과 듣고 싶다 하고 아나운서께서 지체가 불편하시면서 방송을 즐겨 들으시는 편이냐 하여 라디오는 계속 듣는 편이며 이 프로는 계속 듣고 있다고 하니 감사하다고 하시며 요즘 전화가 있어 편지 쓰는 것이 드문데 권오윤씨는 최근 편지를 써 본 일이 있냐 하여 계속 쓰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썼다 하니 주로 어떤 분에게 쓰느냐 하여 친척과 근육디스트로피 환우와 대구 경북지부 자원봉사 하는 분들께 쓴다하니 오늘 참 반갑다며 짧은 글이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기쁨은 매우 반갑고 기쁜 일이라며 편지를 즐겨 쓰는 권오윤씨와 연결되어 고맙습니다.
하여 감사합니다. 수고 하십시오. 하고 주현미 짝사랑을 들으면서 감상하고 있다니 소장은 나가시고 제수씨 나오시어 짝사랑 좋아하는 곡인 모양이지요? 하고 안동 해동사 갔던 얘기 절 뒤우로 화장실 있던데 까지 차량이 들어오도록 길이 나고 절 마당을 확장하였다며 김태현 교무께서 만나 내가 부탁한 가계가 하나 있다고 하시던데 부탁해야 하냐며 누가 알아봐 달라하여 부탁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해야 한다하고 무슨 이야기를 전해 달라 했으면 그때그때 얘기해주지 않고 오래 있다 얘기하니 내가 얘기해주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문중 터수세도 벌써 받아 놓고 쓴 후 얘기도 없어 다시 수세를 보내달라고 얘기하니 벌써 주었다하여
나는 받은 일이 없다하게 하고 뭔 사람이 자기 요랑만 하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석식을 한 후 오늘은 태현 교무님께 전화 드릴여고 했더니 통화중이어서 못하고 옹천 개인택시 미담을 푸른 신호등에 편지할까? 하고 전화로 차량 번호와 성함을 알아보려고 전화하니 받지 않아 그만두고 11월 19일 날 대구 동생 결혼 때 영남여객 신효원 기사님 훈훈한 정감을 모두 고마워 하시무로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려고 차번호도 묻고 모든 분들이 인사하신다고 전해드리려고 전화를 했더니 받아다며 뭐 잘해 드린 것도 없다며 도리어 많은 감명을 받았다며 고마워하시며 전화번호를 물어서 가르쳐 드리고 11시까지 미담을 편지로 썼다.
법성계 반야심경을 TV시청해가며 12시반까지 다 쓴 후 취침을 한다.
자비하신 부처님 감사합니다.
모든 인연 있는 분들에게 부처님의 가피력을 내려주시어 원하는 소망이 여의하게 가피를 내려주소서. 대구시 원화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최경현양께 문수사리보살 지혜를 주시어 이번 대학 시험에 합격하도록 불 지혜를 꼭 주시옵소서. 관세음보살 내일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안동 매제도 시험에 합격되기를 8일 날 소원하면서...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989년 12월 8일 금요일 맑음.
푸른 신호등에 편지 한 통 발송.
금일은 날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가서 날씨가 매우 추웠다.
아버지께서도 매주콩을 골리고 집에 계시고 나는 그냥 책을 보다 집 앞에 나갔다와서 중식이 끝나고 오후에 국민학생을 시켜서 MBC 푸른 신호등에 보내는 편지를 보내고 들어와서 라디오를 청취하다가 석식을 하고 반야경 법성계를 필기하고 내가 써둔 영레이디 기사와 방송된 내용 써둔 것을 찾아 쓰나 없었다.
강릉 명기호 회장께 편지를 보내려고 초안 해둔 것을 모두 정리하고
한시반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1989년 12월 9일 토 맑음.
문중터 수세를 받고.
금일은 제수씨 안동 가서 어머니 기일 제사장을 봐오시고 백부께서 문회 돈 쓴 것 갖다 주고 가신다.
하계아제 처남 어른도 함께 오셨다 가시고 안호사형도 지나가다 인사하신다.
형수도 오시고 상명 할매도 왔다 가고 상인 아줌마 오시어 태섭 아제 중규 터수세 콩 열 두말 가지고 온 것 만 삼천 원씩 받고 팔았다.
우리 것도 두말 4승 팔았다.
상철네 엄마도 오고 중규모친, 재철 모친, 도목 할배, 신승원 아마리 승후어른, 삼산사형 모두 잠깐씩 들려 얘기하시다 상인이 준 돈 천원과 아버지 막걸리 두병 환타 두병 소주 한 병 사가지고 접대 하였다.
모두 12시 반경 가시고 제수씨 1시반경 장을 봐가지고 나 골덴 쓰봉 하나 사가지고 오셨다.
중식을 하고 장봐온 것 얘기하여 주고 남은 돈 갖다 보인다.
아직 떡도 해야 하고 덜 산 것 사야 하니 그냥 쓰시라하고 휴식을 취한 후에 경희양께 편지를 한통 쓰고 오후 김교무님께 전화를 하였으며 가게가 하나 있다 하시고 얻어보려면 얻어 보라고 얘기하였다 하시고 해동사까지 길을 닦은 것 권재무께서 혼자 하셨다 하시고 교도소 부지는 그대로 있다 하신다.
부산에서 선주가 선례 앞으로 편지가 왔다.
내가 보낸 편지를 받아 본 모양이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감사한 하루였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989년 12월10일 일요일 맑음.
어머니 기일. 대구동생 내외도 참석.
금일은 7시반에 기상을 한 후 8시반에 조식을 한 후 제수씨께서는 祭需을 장만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콩을 줍고 들깨를 털고 해 오신다고 과원에 가셨다 오시고,
나는 최경희 신정희 명기호 이길자 류호식이 한태 각각 편지를 썼다.
중식을 한 후 방청소를 하고 머리 깍고 면도 하고 잇빨도 닦고 들어와서 손톱과 발톱을 깍고 있다니까 3시 50분경 대구 동생이 제수씨하고 왔다.
점심은 안 먹고 왔다하여 점심부터 먹으라 하고 있다니 아버지 오셔서 인사드리고 아버지 제물고기 장만 하시고, 석식을 한 후 곶감 때문에 큰집에 전화를 하니 큰집에도 곶감이 덜 되었다고 한다.
없이 그냥 지내고 시장에 곶감이 없었다.
제사상을 차릴 준비를 하다니 종형 삼촌께서 재종형님과 함께 오시었다.
종형께서 시루떡을 담으시고 제물도 담으시고 삼촌이 과일을 담으시고 동생들께 밤을 치라고 했다.
나는 싸인펜을 사오라 하여 지방을 쓰고 모두 9시까지 다 담아 놓고 한잔 한 후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 자정이 넘어 제사를 올리고 대구 제수씨 들어오시어 잔을 드리고 절 네 번을 하시고 어머니 영혼이나마 얼마나 기쁘고 고마울까?
어머니 음덕이 만세에 빛이나야 할 텐데 우리가 이만치라도 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모두 함께 음복과 제사 밥을 잡순 후에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취침을 했다.
잠이 새벽 3시까지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터수세 받은 것은 잘 못 팔았다고 돈을 채워 넣어야 한다기에 기분이 좀 언잔앗다.
누이 생각에 잠겼다.
물어 넣으라면 물어넣지만 제사 차린 수수료를 정하는 대로 봐가면서 할 마음먹고 억지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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