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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 교묘한 줄타기로 권력 유지
포로·정적 잔인하게 처형한 유럽의 공적
마늘 무서워하는 뱀파이어 소설 모델로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도 많이 즐기는 핼러윈 축제(10월 31일)는 고대 유럽의 켈트족
전설에서 비롯됐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천국은 물론 지옥에도 가지 못하고 암흑 세상인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던 행위가 핼러윈 행사의 유래다.
핼러윈 축제 분장 때 단골로 등장하는 모델이 뱀파이어인 드라큘라다. 영화와 소설에서 자주
봐 모두에게 익숙한 드라큘라는 1897년 영국 작가 브람 스토커가 쓴 소설에 처음 등장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블라드 드라큘라의 전쟁을 그린 횃불 전투(19세기 데오도르 아만 작). 필자 제공 |
실존인물 드라큘라, 흡혈귀 대명사로 재탄생
먼저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실제 모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동유럽 루마니아에 있었던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이자 장군인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흡혈귀가 아니라 정상적인
인물이다.
또 하나, 드라큘라는 지금 뱀파이어의 대명사처럼 쓰이지만 원래는 ‘용의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의
부친은 용맹하다는 의미에서 슬라브 계통 언어로 용(dragon)이라는 뜻의 드라쿨(Dracul)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드라큘라는 드라쿨의
아들, 곧 용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왜 드라큘라가 뱀파이어·흡혈귀의 대명사가 됐을까? 물론 소설과 영화의 영향 때문이지만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이 워낙 잔인한 인물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의 별명은 ‘꼬챙이 백작 블라드 3세(Vlad
the Impaler)’였다. 꼬챙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적군과 포로, 정적과 적대국 주민을 꼬챙이에 찔러 매달아 처형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매다는 형벌보다 더 가혹했다. 죽이는 방법이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에 적군은 물론이고 주민들조차도 치를 떨었다. 그 결과 꼬챙이 백작으로
후세에 이름이 남았다. 그 부정적 이미지가 소설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흡혈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에 대해
달리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하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평가가 다수이지만, 루마니아 일부에서는 이슬람
세계에 대항해 루마니아 독립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여긴다.
꼬챙이 백작 블라드의 처형 장면을 묘사한 1499년 판화. |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15세기 루마니아 영주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우리나라의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15세기 때 인물로, 왈라키아 공국을 다스리던 블라드 드라쿨의 둘째
아들이었다. 이 무렵 왈라키아 공국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은 동생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인질로
잡혀갔다.
그 후 헝가리가 왈라키아 공국을 침범해 부친을 살해하고 사촌 형을 영주로 삼아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다 패배하자
블라드 드라큘라는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아 영주 자리를 차지한다.
이후 블라드 드라큘라는 오스만튀르크와 헝가리,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권력을 강화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배경으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반대하는 공국의
귀족들을 제거했는데, 이때 사람을 꼬챙이에 꿰어 매달아 처형했다. 반대로 헝가리의 후원을 바탕으로, 오스만튀르크의 술탄이 보낸 사자를 형벌로
죽이고 전쟁이 벌어지자 오스만튀르크의 영토로 쳐들어가 수만 명의 이슬람 병사와 지금의 불가리아 주민들을 역시 꼬챙이 형벌로 학살했다. 또한
통치권 강화를 위해 지금의 도나우 강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계 상인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권력을 강화하면서 반항하는 상인들을 잔인하게 제압했다.
이것이 15세기 이후 독일을 비롯한 중동부 유럽에서 그를 꼬챙이 백작으로 부르며 잔인한 군주의 대명사로 여겼던 배경이다.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이
그만큼 잔인했던 데다 교묘한 줄타기를 통해 권력을 챙기고 유지했기에 유럽의 공적이 됐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영국 작가 브람 스토커가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을 자신이 쓴 뱀파이어 소설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 |
드라큘라가 십자가 마늘을 무서워하는 이유
흡혈귀 드라큘라가 십자가와 마늘을 무서워하는 데도 배경이 있다. 드라큘라가 기독교 문명권의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등장한 것이고, 마늘은 전통적으로 동유럽에서 뱀파이어를 쫓는 데 사용됐다. 실제 드라큘라의 무대로 알려진 루마니아 북부 지방에서는 부활절이 되면 새벽에 마늘로 십자가를 만들어 창문에 장식을 하거나 집안 곳곳에 마늘을 놓아두며, 가축을 키우는 축사에도 마늘을 걸어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동짓날 팥죽으로 역귀를 예방하려 한 것과 비슷하게, 마늘이 흡혈귀의 접근을 막아 전염병을 예방한다고 믿은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