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의 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하던 만휴정 외나무 다리. [방송화면캡쳐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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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닭, 간고등어 그리고 하회마을. 우리가 알고 있는 안동에는 또 뭐가 있을까. 이번 여행의 시작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유교와 민속 문화가 공존한 지역이자 시대별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을 느린 속도로 정성껏 들여다보기로 했다. 안동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진짜 안동을 보기 위해 10월의 어느 날 버스에 몸을 실었다.
◆ 국내 고건축 문화재 30% 안동
안동의 첫인상은 역시나 전통문화의 본고장이라 불릴 만하다는 것이었다. 시선이 머무는 곳곳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고건축물이 많이 보였다. 국내 고건축문화재 가운데 3분의 1이 경북 북부지역에 집중돼 있고, 그 가운데 3분의 2가 안동지역에 분포한다고 하니 허투루 본 풍광이 아닌 셈이다. 이들 고건축물이 비교적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건물의 본래 기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말해주니 말이다. 왜 안동에는 이처럼 살아 있는 고건축물이 산재해 있을까. 다른 지역에 비해 유교문화가 강성했기 때문이다. 취침과 휴식을 위한 공간, 학문을 연마하고 스승의 학문과 덕망을 기리는 공간, 신위를 배향하는 공간, 유림의 회합이 이뤄지는 공간 등 유교문화에 입각해서 세워진 건물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이런 전통과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한몫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때는 건축물 훼손을 우려해 미리 가옥을 해체해 땅에 묻어두기도 했다.
병산서원 만대루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사진제공 = 빅팜컴퍼니]
1. 병산서원 = 조선시대 건축의 걸작이자 서원 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병산서원은 낙동강 하얀 모래밭과 하회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옛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시초다. 이후 조선시대 정치가이자 유학자인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시는 사당을 세워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됐다. 고건축을 연구하는 정연상 안동대 교수는 "주인의 관점에서 이곳을 둘러보라"고 조언했다.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공간이었던 만대루 안쪽 자리에 앉아 스승의 시점으로 바깥을 향해 바라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의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강과 산의 풍경은 실제로 놀라웠다.
하회마을의 가을 풍경. [사진제공 = 빅팜컴퍼니]
2. 하회마을 =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한다. 하회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선조들이 후손 대대로 살아갈 삶의 터전을 염두에 두고 선정한 곳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강물은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별빛은 어느 방향으로 쏟아지는지,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 고심 끝에 선택된 자리인 셈이다. 선조들 바람대로 하회마을에서는 여전히 자손들이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전통 생활문화와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현재까지도 잘 보존돼 있다. 안동에 왔다면 하회마을은 반드시 들러야 할 터. 풍산들판에서 시작해 병산서원을 거쳐 하회마을에 들어서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걸었다. 둥글게 굽이치는 강변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유서 깊은 한 마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에 출렁이는 풍경은 마음마저 풍요롭게 했다.
미스터 션샤인 의 배경지 만휴정. [사진제공 = 빅팜컴퍼니]
3. 만휴정 = 최근 안동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만휴정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하던 외나무다리가 바로 만휴정 곁에 있다. 보백당 김계행이 71세 때 지은 정자로 권력 다툼에 연루돼 갖은 고초를 겪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늦은 쉼(萬休)'을 취했던 곳이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옆 기슭에 소박하게 자리한 정자는 위태로워 보이는 좁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닿는다.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오르면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와 어디선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의 품에서 맛보는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짙은 풀내음을 맡으며 폭포를 따라 걷는 가벼운 산책은 이곳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안동 내림 손맛으로 전해져 오는 전통 반찬인 북어 보푸라기. [사진제공 = 빅팜컴퍼니]
◆ 식문화의 보고 '안동'
안동은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식문화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많은 곳이다. 세시풍속 등이 잘 보존된 하회마을은 조선시대 때 전통 음식 문화도 잘 이어오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안동은 교통이 불편해 어촌에서 소금에 절인 자반 어물과 건어물 해조류가 밥상에 올랐다. 특히 문어는 이곳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식재료로 여겨진다.
유교문화 영향으로 문어의 문은 글월문(文)자의 문과 동일한 음을 갖고 있는 데다 먹물이 갖는 상징성 덕분이다. 안동 곳곳에 산재해 있는 명가문에서는 의례음식인 떡, 한과류, 그리고 다양한 기법의 가양주 등을 만든다. 이들 음식은 소박하고 격조 있는 특유의 내림 식문화로 전해온다. 안동에서는 내림 손맛을 담은 500~600년 전 양반가의 의례음식부터 찜닭과 현대의 로컬푸드 가공품까지 식문화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밥상을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안동을 대표하는 농산물 하면 '마'를 빼놓을 수 없다. 전국 생산량 중 70%가 안동에서 난다. 참마는 '산에서 나는 장어'라 불릴 만큼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식재료이자 약재료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동의보감에는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돋우며, 위장을 잘 다스리는 등 그 효능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또 일교차가 큰 안동은 사과 맛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적절한 토양과 기후 조건 덕분에 색상이 선명하고 향과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전국 소비자가 뽑은 3년 연속 우수 농산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콩, 우엉, 생강, 고추 등은 안동에 가면 잊지 말고 꼭 사와야 할 산지 작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