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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야고보서4:6-8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있습니다.
가까이 해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사람도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이 있고 멀리 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사귀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귀면 손해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음식도 사람에 따라 가까이 해야 할 음식이 있고 멀리 해야 할 음식이 있습니다.
당뇨병을 앓는 사람은 당연히 단 것을 멀리해야 하고 간이 안 좋은 사람은 술을 멀리해야 합니다.
취미도 가까이 해야 할 취미가 있는 반면에 멀리 해야 할 취미도 있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도 가까이 해야 할 방법이 있고 멀리 해야 할 방법도 있습니다.
요행수로 일확천금을 바라는 방법은 멀리해야 합니다.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해서 정당하게 버는 방법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누구를 가까이 하고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근에 한 유명한 작곡가가 마약에 손을 대서 구속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마약을 가까이 하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과 담배와 도박을 너무 가까이하다가 건강을 잃고 실수를 하고 실패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한방에 인생역전을 노리며 살아가는 자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해야 할 것과 멀리해애 할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롯 유다는 돈을 너무 좋아하고 가까이 하다가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쾌락을 너무 가까이 하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분열로 이끄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여자를 너무 가까이 하다가 사사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롯은 세상을 너무 가까이하다가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함께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모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는 큰일을 하였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과 이방 여인 룻은 하나님을 가까이 했을 때 큰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양을 치는 목동에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목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까이 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고 멀리해야 할 존재는 마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복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마귀를 가까이하면 저주를 받고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구약의 사울 왕과 다윗왕의 차이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한 차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좇았을 때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여 실패했지만 주님을 가까이했을 때는 성령의 능력으로 크게 역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대적하여 쫓아냈지만 가롯 유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승리한 반면에 롯은 세상을 가까이 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장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했을 때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가까이 했을 때 불행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는 지혜의 왕이 되었고 나라가 부강했고 국력이 튼튼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가까이 했을 때 나라가 몰락하고 둘로 나뉘는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가까이 하고 누구를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세상의 것을 가까이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시고 흐트러진 발걸음이 있다면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 받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삼손을 가까이 했을 때 삼손은 정말 큰일을 하고 그를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인 천명을 죽이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삼손이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나실인으로 만져서는 안 되는 시체를 만지기도 하고, 블레셋 지방을 자주 드나들면서 그 곳 여인을 사랑하면서 점차로 하나님을 멀리하더니
급기야 머리카락에 힘의 비밀을 있음을 알리면서 머리카락을 잘리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삼손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떠나자 삼손은 이전의 삼손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고 눈이 빠지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삼손을 가까이 했을 때는 누구도 당할 수 없는 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만
하나님이 삼손을 떠나자 아무런 힘도 사용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삼손이 다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잘렸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잘못된 삶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을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삼손과 함께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 삼손은 두 기둥을 무너트리고 마지막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습니다.
성경은 그 때의 사건을 ‘삼손이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죽을 때에 죽인 자가 더 많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하는 것은 우리의 힘이고 능력이고 축복이고 행복이고 승리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3:28)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겸손한자가 되어야 합니다.
6절 말씀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잠언 3장 34절 인용한 말씀입니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교만은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겸손은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도 은혜가 필요하고 험한 인생길에서 평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은 모두가 다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로 무릎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다윗도 늘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늘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절 말씀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십니다.
그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돌들로 떡을 만들라는 것은 물질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라는 것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는 말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엎드려 절하라는 것은 나와 타협해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 예수님에게 이런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역할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귀의 유혹을 단호하게 대적하였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그리고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심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으려는 마귀의 유혹을 과감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물리치지 못하고 그 유혹에 넘어가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하와가 사탄을 대적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분명 마귀의 유혹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려고 하면 다른 일이 일어나게 하고, 기도하려고 하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게 하고 헌신하려고 하면 다음에 하라고 미루게 하여 더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런 마귀의 유혹을 대적하여 물리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8절 말씀에 보면,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고 헸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은 교만한 사람일 뿐 아니라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신데 죄의 더러운 모습으로 그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멀어진 것도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의 노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을 때 지난날에 그 어떤 무서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받고 깨끗해지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할 때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범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과 이방신들을 숭배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들이 행하는 일들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8:6) 하십니다.
그러면서 성전의 그룹들을 떠나 성전 문지방으로 옮기십니다.
그러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문지방에서 성전 동문으로 멀리 옮기시고 그 다음에는 동편에 있는 산위로 점점 더 멀리 옮겨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범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점점 멀리 떠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니까 이스라엘은 이방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피를 통하여 죄 사함 받고 죄를 멀리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8절 말씀에 보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도 사데교회를 향하여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절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택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택하여야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나무꾼’ 이야기입니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여우가 나무꾼을 발견하고는 숨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무꾼은 옆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뒤 여우를 쫓던 사냥꾼들이 와서 도망가던 여우를 보지 못했냐고 물었습니다.
여우가 불쌍해서 숨겨주었지만 사냥꾼을 도와주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마음에 잠시 고민하던 나무꾼은 말로는 여우가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는 오두막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바쁜 사냥꾼들은 나무꾼의 손가락을 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잠시 후 오두막에서 나온 여우가 아무 말 없이 길을 떠나자 나무꾼은 은혜도 모른다고 화를 냅니다.
그때 여우가 “당신의 말과 손가락이 일치했다면 백번이라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우리의 말과 행동은 일치합니까?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그저 적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심을 원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진실한 신앙의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경험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호텔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폭포를 보고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둘째는, 폭포가 있는 공원으로 가서 폭포의 물방을 맞으면서 더 생동감 있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배를 타고 폭포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 최고의 감동을 느끼면서 폭포를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폭포속으로 더 가까이 갈 때 최고의 감동을 느끼듯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갈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20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