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밧
안식일(Shabbat):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
신명기(12:9)에서는 약속의 땅을 ‘안식처(מְנוּחָה, 메누하)’와 ‘물려받은 땅(נַחֲלָה, 나할라)’라는 헨디아디스(hendiadys: 두 단어가 하나의 개념을 이루는 표현)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 두 용어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땅을 지칭하기 위해 여러 차례 사용됩니다. 수천 년이 지난 후, 이 용어들은 안식일(샤밧)과 관련하여 유대교 예배 의식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으며, 신성한 공간은 시간 속에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모쉐는 신명기에서 한 작별 연설에서 약속의 땅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안식처와 기업 땅에 아직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신명기 12:9 )
כִּי לֹא בָאתֶם עַד עָתָּה אֶל הַמְּנוּחָה וְאֶל הַנַּחֲלָה אֲשֶׁר יְ־הֹוָה אֱלֹהֶיךָ נֹתֵן לָךְ
그 명사들과 어근이 같은 동사들도 바로 다음 구절에 등장합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시는 땅에 정착하고, 그분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너희에게 안식을 주셔서 너희가 안전하게 살게 될 때” (신명기 12:10)
וַעֲבַרְתֶּם אֶת הַיַּרְדֵּן וִישַׁבְתֶּם בָּאָרֶץ אֲשֶׁר יְ־הֹוָה אֱלֹהֵיכֶם מַנְחִיל אֶתְכֶם וְהֵנִיחַ לָכֶם מִכׇּל אֹיְבֵיכֶם מִסָּבִיב וִישַׁבְתֶּם בֶּטַח
이 두 용어는 약속의 땅이 지닌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중요한 측면들을 부각시켜 줍니다.
안식 – 상태가 아닌 장소
추상 명사인 מְנוּחָה(메누하)는 “안식”을 의미하지만, 성경에서는 훨씬 더 자주 “안식처”라는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모쉐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방황하던 초기에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산에서 사흘 길을 행진하였다. 그 사흘 동안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들 앞에서 나아가며, 그들을 위한 안식처(מְנוּחָה)를 찾아다녔다.” (민수기 10:33)
물론 그곳은 바로 이스라엘 땅입니다. 시편에서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방황하던 시절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한 태도를 꾸짖으셨던 일을 회상하시며, 약속의 땅을 다시 한번 안식처- ‘מנוחה’라고 언급하십니다:
“나는 그 세대를 40년 동안 노여워하며, “그들은 무지한 백성이니, 내 길을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다. 95:11 나는 그들에 대하여 분노 중에 맹세하여,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מנוחה)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시 95:10)
안식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솔로몬 왕이 성전을 봉헌할 때,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누하(מְנוּחָה, menuchah)’—즉, 이제 중심적인 예배 장소가 완비된 이 땅의 안전한 피난처—를 허락해 주신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께 이 모든 기도와 간구를 드리고 나자,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하늘을 향해 펼쳤다. 그가 일어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 온 회중을 축복하며 말하였다. “약속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식처(מנוחה)를 주신 여호와를 찬양하노라. 그분이 그 종 모쉐를 통해 하신 모든 은혜로운 약속 중에서 단 한 마디도 어긋난 것이 없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분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기를 원하노라.” (열왕기상 8:54-57)
솔로몬이 감사해 하는 ‘메누하(מְנוּחָה)’는 추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방랑하며 위험에 처한 백성을 위한 물리적인 장소, 즉 안전하게 보호받는 안식처입니다.
상속 토지 소유권
‘나할라(נַחֲלָה, nachalah)’라는 용어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 소유권을 의미하며, 이전 소유자의 상속인들이 공유하는 “상속 토지 소유권”을 가리킵니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에서 부의 주된 형태는 가족 소유의 토지로, 남성 가장이 관리하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 신탁으로서 가족의 후손들을 위해 신탁 관리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약속의 땅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민족들이 쫓겨난 땅을 집단적, 국가적 ‘나할라’로서 받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쉐에게 말씀하시기를 3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것이 너희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땅(בְּנַחֲלָה)이니, 곧 여러 경계를 가진 가나안 땅이라” 하셨다.“ (민수기 34:1)
지파와 가족의 토지 소유
또한, 여러 구절에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분배하는 것을 각 지파에 ‘나할라(נַחֲלָה)’를 할당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개별 가족 소유지에 할당된 몫도 동일한 용어로 지칭됩니다.
예를 들어, 형제가 없는 딸들이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아버지의 토지를 상속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쯜로프핫의 딸들이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용어는 때로는 지파의 토지 소유분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개별 가족의 몫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만일 그들이 다른 이스라엘 지파의 사람과 결혼하면, 그들의 나할라(נַחֲלָה)는 우리 조상들의 나할라에서 분리되어 그들이 결혼한 지파의 나할라에 편입될 것이니, 그리하여 우리 나할라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36:4 이스라엘 자손들이 희년을 지킬 때에도, 그들의 나할라는 그들이 시집간 지파의 나할라에 합쳐지고, 그들의 나할라는 우리 조상 지파의 나할라(נַחֲלָה)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민수기 36:3)
두 단어, 하나의 개념: 안식은 땅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탐구를 시작한 신명기의 본문에서, ‘안식처’를 뜻하는 מְנוּחָה와 ‘상속지’를 뜻하는 נַחֲלָה라는 독특한 명사 조합은 하나의 개념을 나타냅니다. 이는 ‘헨디아디스(hendiadys)’로, 접속사로 연결된 두 단어로 하나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질병도 피로도 설명하지 않는 “sick and tired”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두 단어의 결합은 사람이 조상의 땅, 즉 양도할 수 없는 고향인 땅에서 살 때만 비로소 진정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외의 어떤 곳에서 살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일부 현대 번역가들은 이 조합을 “할당된 안식처”(NJPS)나 “영원한 안식처”(Robert Alter)와 같은 표현으로 포착하려고 노력하며, 이 조합이 형성하는 개념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두 단어의 조합(예: NRSV의 “안식과 소유”)을 사용하는 대신에 그러합니다.
이 두 용어가 한 쌍으로 등장하는 곳은 성경 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용어 쌍이 유대 문헌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 용어 쌍은 다시 등장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동 가능한 ‘토지 소유’로서의 안식일
유대교 예배 전통에서는 여러 차례 안식일을 מְנוּחָה(메누하)의 날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용어는 더 이상 공간적 지칭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 오후 예배 중에 낭송되는 아미다(“서서 드리는” 기도)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안식일 아미다 기도: “주님은 한 분이시며, 주님의 이름도 하나이시니, 온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은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에게 독보적인 영광과 구원의 면류관, 안식(מְנוּחָה)과 거룩함의 날을 주셨습니다.”
‘안식’을 유산으로
안식일 예배 의식에는 그날 네 번 낭송되는 아미다 기도의 일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아미다 기도: “사랑과 기쁜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 아도나이여,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내려 주시어,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백성이 이 날에 언제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두 동사는 신명기적 쌍을 이루는 ‘מְנוּחָה(메누하)’와 ‘נַחֲלָה(나할라)’입니다.
안식일 예배문에서 이 두 용어는 더욱 밀접하게 짝을 이루며 사용됩니다. 안식일 아침 예식 기도 후 첫 번째 축복인 ‘요쩨르 오르(יוֹצֵר אוֹר: 빛을 창조하신 분)’ 축복의 확장 버전에는 다음과 같은 간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쩨르 오르: “주님의 모든 피조물이 주님을 찬양하며, 만물의 주재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위대함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자신의 거룩함 안에서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유산(הַמַּנְחִיל מְנוּחָה)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핵심 용어 중 하나가 동사로 사용되고, 바로 뒤를 이어 다른 용어가 명사로 등장하는데, 이는 매우 긴밀한 조합을 이룹니다.
12~13세기에 안식일 준수를 찬양하는 안식일 찬송가 『바루크 엘 엘리온(Barukh El ‘Elyon)』을 지은 마인츠의 바루크 벤 샤무엘은, 성경에 나오는 순서를 반대로 바꿔 이 두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이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바루크 엘 엘리: 짙은 구름 속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부터.
두 배의 상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복이 있다
그가 산과 골짜기에서 마땅히 받을 유산(נַחֲלָה),
마치 태양이 비추던 이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유산이자 안식처(נַחֲלָה וּמְנוּחָה),
이동 가능한 안식처
성경과 전례에서 ‘안식’과 ‘상속/토지 소유’가 맺는 관계의 차이는 극명하고 눈에 띕니다. 기도에서 이 용어들은 가족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나 심지어 약속의 땅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용어들은 더 이상 토지를 전혀 가리키지 않습니다.
대신, 유대인의 유산 중 핵심이자, 유대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후손들을 위해 신탁으로 간직하는 것은 바로 거룩한 날, 즉 안식일(샤밧)입니다. “안식”은 여행의 피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단어의 근본적 의미에서 비롯된 고난으로부터의 휴식입니다.
안식일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며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은 그의 고전적인 저서 『안식일: 현대인을 위한 그 의미』에서 시간의 거룩함을 숭상했으며, 생애 말년까지 유대교 사상에서 공간—즉 약속의 땅—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 2성전 파괴 이후 유대 역사 전반에 걸쳐 이어져 온 큰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였습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유대인의 주권이 무너졌으며, 수많은 유대인들이 에레쯔 이스라엘을 떠나자, 유대교 형성기의 현자들은 조상의 땅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공간상의 다른 곳이 아니라 훨씬 더 휴대하기 쉬운 것, 즉 유대력에서 찾았습니다. 그들은 신성함은 예루살렘의 성전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헤셸이 말했듯이,
영적 삶의 더 높은 목표는 … 신성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 체험에서 인간에게 강요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영적인 현존입니다. 영혼에 남는 것은 그 행위가 일어난 장소가 아니라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행운이며, 우리를 측정 가능한 시간의 한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데려갑니다.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의 웅장함을 감지하지 못할 때, 영적 삶은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헤셸의 통찰은 성경 속 이스라엘의 성소에서 유래한 용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가장 신성한 시간인 안식일(Shabbat)의 영적 가치를 묘사하는 것의 완전한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By Rabbi Peretz Rodman (earned a B.A. and M.A. in Jewish studies at Brandeis University and a Bachelor of Hebrew Literature at Hebrew College.)
From the tora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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