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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삼조사(推三阻四)
세 번을 추진하는데 네 번의 제재를 받는다는 뜻으로, 어떤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서 장애를 만나도 계속 추진해 나가라는 말이다.
推 : 밀 추(扌/8)
三 : 석 삼(一/2)
阻 : 험할 조(阝/5)
四 : 넉 사(囗/2)
출전 : 정약용(丁若鏞)의 증언첩(贈言帖)
다산이 제자인 초의 스님에게 준 친필 증언첩(贈言帖)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余平生有讀書之願.
내가 평생 독서하려는 소원이 있었다.
故及遭流落, 始大肆力.
그 때문에 귀양을 오게 되자 비로소 크게 힘을 쏟았다.
匪爲有用而然也.
쓸데가 있다고 여겨 그런 것이 아니었다.
僧徒每云, 績文無用處, 任其懶散, 自暴自棄, 孰甚於此.
승려들은 매번 글을 지어봤자 쓸데가 없다고 하면서 게으르고 산만한 곳에 몸을 내맡기니 자포자기 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讀書之便, 莫如比丘.
독서하기 편한 것은 비구만 한 것이 없다.
切勿推三阻四, 着力前進也.
절대로 이런저런 장애에 걸리지 말고 힘을 쏟아 나아가야 한다.
원문 중에 추삼조사(推三阻四)란 표현이 나온다. 말 그대로 세 가지 일을 추진하면 네 곳에서 제동이 걸리는 형국을 말한다.
결국 여기서 걸리고 저기서 자빠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세상 사는 일은 예상할 수 없는 장애물과의 전쟁이다. 장애와 난관은 없는 적이 없다. 시련과 역경이 성취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귀양 왔다고 주눅 들고, 당장에 쓸데없다고 자기 성장을 멈추면 진짜 무언가 이뤄보려 할 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다산은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을 하늘이 주는 기회로 알고 학문에 몰두했다.
이것으로 재기의 발판을 삼을 생각이 아니었다. 반성문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벼슬길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었던 금쪽같은 독서의 시간을 하늘이 특별히 허락해 준 것으로 알고 이 시간을 달고 고맙게 받았다.
당시 불문의 제자가 다산의 문하를 들락거리는 것을 두고 절집 내부에서 말들이 많았다. 그 서슬에 움츠러든 초의에게 그게 바로 자포자기라며 나무랐다.
공부는 당장의 쓸모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하고 아니 해서는 안 되기에 하는 것이다. 숨을 생각하고 쉬는 사람이 있는가? 끼니마다 밥을 먹는 이유를 따지기도 하는가?
숨 쉬고 밥 먹듯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어디다 써먹을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공부는 빠른 법도 늦는 법도 없다. 할 때가 빠른 때고 안 할 때가 늦은 때다.
⏹ 금당기주(琴堂記珠) 중에서
신헌(申櫶; 申觀鎬, 1811-1884)
초의(艸衣)에게
人世甚忙, 汝每動作遲重.
인간 세상은 몹시도 바쁜데, 너는 늘 동작이 느리고 무겁다.
所以終勢書史之間, 而勳績甚少也.
그래서 일년 내내 서사(書史)의 사이에 있더라도 거둘 보람은 매우 적다.
今授汝魯論.
이제 내가 네게 논어를 가르쳐 주겠다.
汝其始自今, 如承王公嚴詔, 刻日督迫.
너는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되, 마치 임금의 엄한 분부를 받들듯 날을 아껴 급박하게 독책(督責)하도록 해라.
如有將帥在後, 麾旗前驅, 遑遑汲汲.
마치 장수는 뒤편에 있고 깃발은 앞에서 내몰아 황급한 것처럼 해야 한다.
如爲虎狼蛟龍所逼迫, 一瞬一息, 無敢徐緩.
호랑이나 이무기가 핍박하는 듯이 해서 한 순간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唯義理尋索, 必潛心精硏, 乃得眞趣.
오직 의리만을 찾아 헤매고, 반드시 마음을 쏟아 정밀하게 연구해야만 참된 맛을 얻을 것이다.
余平生有讀書之願.
내가 평생 독서하려는 소원이 있었다.
故及遭流落, 始大肆力.
때문에 귀양을 오게 되자 비로소 크게 힘을 쏟았다.
匪爲有用而然也.
쓸데가 있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僧徒每云, 績文無用處, 任其懶散, 自暴自棄, 孰甚於此.
승려들은 매 번 글을 지어봤자 쓸데가 없다고 하면서, 게으르고 산만한 곳에 몸을 내 맡기니 자포자기함이 이 보다 심함이 없다.
讀書之使, 莫如比丘. 切勿推三阻四, 着力前進也.
독서하기 편한 것은 비구만한 것이 없다. 절대로 이런 저런 말에 휘둘리지 말고 힘을 쏟아 나아가야 한다.
法身者 吾家所謂大體也.
법신(法身)이란 유가에서 말하는 대체(大體)다.
色身者 吾家所謂小體也.
색신(色身)은 유가의 소체(小體)에 해당한다.
道心汝家所謂眞如, 人心汝家謂之無明.
도심(道心)은 불가에서 말하는 진여(眞如)이고, 인심(人心)은 불가에서는 무명(無明)이라 한다.
尊德性汝以爲定, 道問學汝以爲慧.
존덕성(尊德性)을 너희는 정(定)으로 여기고, 도문학(道問學)을 너희는 혜(慧)라고 한다.
彼此相當 互不相用.
피차가 서로 합당하나 함께 섞어 쓰지는 못한다.
但汝家, 近日巫風太張, 足可惡也.
다만 근래에 불가에 무풍(巫風)이 크게 일어나니 이것이 참 고약하다.
身者我也, 人者彼也.
내 몸은 아(我)요, 남은 피(彼)다.
然譽從苦我生, 訾從樂我生.
하지만 기림은 나를 괴롭힘에서 나오고, 헐뜯음은 나를 즐겁게 함에서 나온다.
讚自厚彼生, 詛自薄彼生.
찬미함은 상대를 두터이 하는데서 생기고, 원망은 상대를 박하게 여기는데서 생긴다.
勞由我, 則畢世喘喘, 而寸功不錄.
나만을 위해 수고로우면 죽을 때 까지 애를 써도 조그만 공조차 이루지 못한다.
不爲彼役, 則終身潔潔, 而萬弩俱發.
남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몸을 마치도록 고결하게 지내도 1만개의 쇠뇌가 동시에 발사될 것이다.
你胡得云, 囂囂然我飮我泉, 我食我稻 曾莫之. 欺女也.
네가 어찌 떡 벌리고 내 샘물을 마시며 내 쌀로 밥을 지어 먹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揚朱固未嘗以一毛利天下, 亦未嘗取一毛於隣人.
양주(揚朱; 사상가 利己主義者)는 일찍이 터럭 하나로도 천하를 이롭게 하려 들지 않았고, 또한 이웃에게서 터럭 하나 조차 취하려 들지 않았다.
然凡言惡者, 首揚朱爲欲厚己而薄彼也.
하지만 악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양주를 자기를 두터이 하고 남에게 각박하게 한 우두머리로 꼽는다.
意洵性沖澹, 無求於人. 亦不以澤物爲意. 余是以箴之.
의순(意洵; 초의)은 성품이 담박해서 남에게 구하는 법이 없다. 또한 만물을 이롭게 할 뜻도 없다. 내가 그래서 이를 경계한다.
力去塵勞障, 情存洒脫門.
힘을 쏟아 진로장(塵勞障)을 제거하고서, 쇄탈문(洒脫門)에 마음을 보존하리라.
這二句話頭, 常常記取, 愼勿於狻猊座上, 綰取千葛萬藤.
이 두 구절의 화두를 항상 기억해 두고, 설법하는 자리 위에서 온갖 갈등에 얽히지 않도록 해라.
平生做, 自己事, 都屬別人; 平生做, 別人事, 還益自己.
평생 자기 일을 하면 온통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되고, 평생 다른 사람의 일을 하면 도리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或不曉此理, 一指不肯爲他動, 如今竟有何成.
혹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해, 다른 사람을 위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들지 않으니, 이제 와서 마침내 무엇을 이루겠느냐?
余觀佛書, 如狗子無佛性, 祖師西來意, 庭前栢樹子, 吸盡西江水, 多般話頭, 無非要人起疑.
내가 불서(佛書)를 보니 예컨데 개는 불성(佛性)이 없다거나,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이나, 뜰 앞의 잣나무라거나, 서강의 물을 다 마셔 버렸다는 등의 여러 가지 화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其究竟法, 則都歸於寂滅. 何益於身心哉.
그 구경(究竟)의 법이란 온통 적멸(寂滅)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찌 몸과 마음에 보탬이 있겠는가?
必也自無疑而有疑, 自有疑而無疑, 然後可謂讀書也. 此儒釋之所以分也.
의심이 없는 곳에서 의문이 있고, 의심이 있는 데로부터 의문이 없기를 기필한 뒤라야 독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유교와 불교가 갈라지는 까닭이다.
▶️ 推(밀 추, 밀 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隹(추)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隹(추)는 본디 뜻은 새이었으나 여기에서는 椎(추; 나무방망이), 錐(추; 송곳) 따위와 공통되어 치는 듯한 거동(擧動)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推자는 '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推자는 手(손 수)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隹자는 꽁지가 짧은 새를 그린 것으로 '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새는 앞으로만 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推자는 앞으로만 나는 새의 특성과 手자를 결합해 '밀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이는 '앞으로 나아가다'라는 뜻의 進(나아갈 진)자도 마찬가지이다. '추진(推進)하다'라는 글자에 隹자가 사용된 것도 후퇴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새의 특성을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推(추, 퇴)는 손으로 밀다, 밀어 젖히다, 밀어 치우다, 밀어 나아감, 또 옮기다, 짐작하다 따위의 뜻으로 ①밀다 ②옮다, 변천(變遷)하다 ③천거하다(薦擧), 추천(推薦)하다 ④넓히다, 확충(擴充)하다 ⑤헤아리다, 추측(推測)하다 ⑥받들다, 공경(恭敬)하여 높이 받들다 ⑦꾸미지 아니하다 ⑧꾸짖다, 꼬집다, 따지다, 힐난(詰難)하다 ⑨성(盛)한 모양, 그리고 ⓐ밀다(퇴) ⓑ밀어젖히다(퇴)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끌 인(引), 당길 만(挽), 끌 만(輓)이다. 용례로는 높이 받들어 우러름을 추앙(推仰), 추측하여 판정함을 추정(推定), 사리를 미루어서 생각함을 추리(推理), 미루어 생각하여 헤아리거나 어림을 잡음을 추측(推測), 어떤 조건에 적합한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함을 추천(推薦), 밀고 나아감을 추진(推進), 짐작으로 미뤄서 셈침 또는 그 계산을 추산(推算), 일이나 형편이 차차 옮아 가거나 변해 감을 추이(推移), 어떤 사람을 높은 직위로 오르게 하여 받듦을 추대(推戴), 찾아내서 가져옴으로 은행이 소지인의 의뢰를 받아 수표 또는 어음을 지급인에게 제시하여 지급하게 하는 일을 추심(推尋), 추정하여 계산함을 추계(推計), 이치를 좇아 어떤 일을 미루어 생각하고 논급함을 추론(推論),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고무하고 격려함을 추동(推動), 앞으로 올 일을 미루어 생각함 또는 그 생각을 추상(推想), 자기의 일에 관해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고 남에게 전가함을 추위(推委), 이치로 미루어 생각하여 끝까지 규명해 냄을 추구(推究), 찾아서 가져감을 추거(推去), 추측하여 생각함을 추고(推考), 받들어 높임을 추상(推尙), 미루어 짐작함을 유추(類推), 살피어 미룸을 고추(考推), 갇혀 있는 죄인을 신문함을 시추(時推),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며 캐어 묻는 일을 형추(刑推), 나쁘게 추측함 또는 못된 의심을 품고 짐작함을 사추(邪推), 혹독하게 닥달함을 박추(剝推), 여러 사람이 죄인을 함께 심문함을 동추(同推), 미느냐 두드리느냐는 뜻으로 시문의 자구를 여러 번 고침을 이르는 말을 퇴고(推敲), 자기 마음을 미루어 보아 남에게도 그렇게 대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으로 제 배 부르면 남의 배 고픈 줄 모른다는 속담과 그 뜻이 일맥상통함을 이르는 말을 추기급인(推己及人), 뭍에서 배를 민다는 뜻으로 고집으로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추주어륙(推舟於陸), 이 일로 미루어 다른 일을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추차가지(推此可知),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한다는 말을 여세추이(與世推移), 옷을 벗어주고 음식을 밀어준다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말을 해의추식(解衣推食), 윗자리에 있는 자는 아랫사람을 끌어올리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추대한다는 말을 상원하추(上援下推) 등에 쓰인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阻(막힐 조)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且(저, 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阻(조)는 ①막히다 ②험(險)하다 ③떨어지다 ④허덕거리다 ⑤저상하다 ⑥의심(疑心)하다 ⑦의거(依據)하다 ⑧믿다 ⑨고난(苦難)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막힐 색(塞), 막힐 체(滯), 막힐 질(窒), 막힐 옹(邕),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소통할 소(疏)이다. 용례로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다가오는 것을 막아서 가림을 조당(阻擋), 가거나 오거나 하지 못하게 막음을 조당(阻搪), 오랫동안 서로 만나 보지 못함을 조면(阻面), 길이 꽉 막힘을 조경(阻梗), 하지 못하게 막음을 조니(阻泥), 오랫 동안 소식이 막힘을 조문(阻聞), 막아서 못하게 함을 조방(阻防), 서로의 왕래가 막히고 의심함을 조이(阻異), 오랫 동안 문후가 막힘을 조후(阻候), 통하지 못하게 막거나 막힘을 조해(阻閡), 막혀서 서로 통하지 못함을 조격(阻隔), 길이 막히고 험난함을 조험(阻險), 어떤 일이나 행동 따위가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서 방해함을 조애(阻礙),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통하지 못함을 격조(隔阻), 가로 막힘 또는 가로 막음을 난조(攔阻), 멀리 떨어져 있어 사이가 막힘을 형조(夐阻), 어긋나고 막힘을 규조(睽阻), 소식이 오래 막힘을 구조(久阻), 깊고 험함을 심조(深阻), 두 사람 사이에서 오래 소식이 막힘을 적조(積阻), 지세가 높고 가파르며 험하여 막히고 끊어져 있음을 험조(險阻), 험하고 가파름을 준조(峻阻), 세 번을 추진하는데 네 번의 제재를 받는다는 뜻으로 어떤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서 장애를 만나도 계속 추진해 나가라는 말을 추삼조사(推三阻四) 등에 쓰인다.
▶️ 四(넉 사)는 ❶지사문자로 亖(사)는 고자(古字), 罒(사)는 동자(同字)이다. 아주 옛날엔 수를 나타낼 때 가로 장대 네 개의 모양으로 썼으나 三(삼)과 혼동되기 쉬우므로 전국시대 무렵부터 四(사)를 빌어 쓰게 되었다. 四(사)는 코에서 숨이 나오는 모양을 본뜬 것이었으나 그 뜻으로는 나중에 呬(희)로 나타내고, 四(사)는 오로지 수의 넷을 표시하는데 쓴다. ❷상형문자로 四자는 숫자 '넷'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런데 四자의 갑골문을 보면 긴 막대기 4개를 그린 亖(넉 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는 막대기 4개를 나열해 숫자 4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亖자가 숫자 三(석 삼)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금문에서는 '숨 쉬다'라는 뜻으로 쓰였던 四자를 숫자 '사'로 쓰기 시작했다. 四자는 사람의 콧구멍을 그린 것으로 본래는 '숨쉬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숫자 4로 가차(假借)되면서 후에 여기에 口(입 구)자를 더한 呬(쉴 희)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四(사)는 ①넉, 넷 ②네 번 ③사방(四方)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네 사람을 사인(四人), 네 곱절을 사배(四倍), 넷으로 가르거나 갈라짐을 사분(四分), 사방의 경계를 사경(四境), 사방의 둘레를 사위(四圍), 사방을 돌아보아도 친척이 없다는 뜻으로 의지할 만한 사람이 도무지 없다는 말을 사고무친(四顧無親),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사면초가(四面楚歌), 주위에 사람이 없어 쓸쓸함을 일컫는 말을 사고무인(四顧無人), 길이 사방 팔방으로 통해 있음이나 길이 여러 군데로 막힘 없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사통팔달(四通八達), 이리저리 여러 곳으로 길이 통한다는 뜻으로 길이나 교통망이나 통신망 등이 사방으로 막힘없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사통오달(四通五達), 사면이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좋은 낯으로만 남을 대함을 이르는 말을 사면춘풍(四面春風), 사해란 곧 온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천하의 뭇사람들은 모두 동포요 형제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사해형제(四海兄弟), 네 갈래 다섯 갈래로 나눠지고 찢어진다는 뜻으로 이리저리 갈기갈기 찢어짐 또는 천하가 심히 어지러움 또는 질서 없이 몇 갈래로 뿔뿔이 헤어지거나 떨어짐을 일컫는 말을 사분오열(四分五裂), 네 가지 괴로움과 여덟 가지 괴로움이라는 뜻으로 인생에 있어 반드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온갖 괴로움을 이르는 말을 사고팔고(四苦八苦), 사철의 어느 때나 늘 봄과 같음으로 늘 잘 지냄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을 사시장춘(四時長春), 사주의 간지로 되는 여덟 글자 또는 피치 못할 타고난 운수를 이르는 말을 사주팔자(四柱八字), 천하의 풍파가 진정되어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사해정밀(四海靜謐), 갓마흔에 첫 버선이라는 뜻으로 뒤늦게 비로소 일을 해 봄을 이르는 말을 사십초말(四十初襪), 404 가지 병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걸리는 모든 질병을 이르는 말을 사백사병(四百四病), 네 마리 새의 이별이라는 뜻으로 모자의 이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사조지별(四鳥之別), 천하를 제 집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천하를 떠돌아 다녀서 일정한 주거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사해위가(四海爲家), 사궁 중의 첫머리라는 뜻으로 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를 이르는 말을 사궁지수(四窮之首), 사방의 지세가 견고하고 험한 자연의 요새로 되어 있는 땅을 이르는 말을 사색지지(四塞之地), 사방으로 흩어져 서로 따로따로 떨어짐 또는 그렇게 떼어놓음을 일컫는 말을 사산분리(四散分離), 어떤 주창에 응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사방향응(四方響應)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