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서 있는 여자’
열왕기하 9.27-37
시 작 기 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어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그 뜻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와 마음을 부어 주시사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주님을 향한 열정을 부으소서. 주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죄악을 미워하고 거기서 떠나게 하소서. 절제되고 결단력있는 삶의 자세를 주소서.
본 문 요 약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왕 요람의 죽음으로 보고 도망하였고 예후는 그를 추적하여 부상을 입히고 므깃도에서 죽었고 그 시신은 예루살렘 다윗성의 조상들 묘지에 장사지냈습니다.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렀을 때, 이세벨은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장식하고 창문으로 내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소리치기를. “주인을 살해한 시므리 같은 자야, 이게 평화냐?”
예후가 창문을 쳐다보며, “누가 우리 편이 될 사람인가”라고 소리치자 내관 두 명이 내다보았고,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져라”하고 명하여 그들이 그 여자를 내던졌습니다. 그 피가 벽과 말에까지 튀었고 예후가 탄 말이 그 여자의 주검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예후가 들어가서 머고 마시면서 그 여자는 왕의 딸이니 장사를 지내주라고 했지만 그녀의 시신은 훼손되어서 두개골과 손 발만 남았습니다. 이에 예후가 말하기를, “이는 주님의 종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대로 이스르엘의 땅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주검을 뜯어 먹을 것이며, 이세벨이 주검은 밭의 거름같이 되어 아무도 이것이 이세벨이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 데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본 문 의 뜻
아합왕과 이세벨의 바알 숭배를 이어바든 이스라엘왕과 그들과 혼인관계로 그 종교신앙을 유다에 적극도입한 유다왕 아하시야가 한꺼번에 예후에 의해서 죽어서 제거 되었습니다. 유다왕 아하시야가 다윗성에 조상들과 같이 묻히고, 최종 일년 밖에 다스리지 못한 것은 이 우상숭배와 타락의 물결이 유다를 완전히 점령하는 길이 막힌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왕위가 보존되도록 하시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이제 바알 우상숭배을 시돈 땅에서 들여오고 아합왕에게 그 영향력을 행사하여 온 나라에 퍼지게 한 주범인 이세벨에게로 예후가 쳐들어갑니다. 이때 이세벨은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단장하여 무엇가를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죽음을 여왕처럼 당당하게 맞으려 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녀가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은 바로 그가 믿는 종교의 여신의 모습을 하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상아 명판과 현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창문에 서 있는 여자’으 모습입니다. 이것은 아세라(아수라), 또는 아스타르테 여신으로 고대 페니키아 지역 풍요와 성애, 다신의 여신이자, 바알신의 아내입니다. 삼하6.16-19에서는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창문에 선 여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주님의 임재의 언약궤가 들어오는 역사적 영적 중요한 순간에 이것을 즐거워 춤추는 다윗을 업신여기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예후의 바알척결의 역사를 깍아 내리면서 7일간 왕위에 올랐던 시므리 같은 사람이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6.8-20에 보면 주님이 이스라엘을 여로보암 왕이 한것처럼 악한 길로 인도하여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짓게한 바아사의 집안을 모두 제거하는 도구로 시므리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말씀의 도구일 뿐 자기도 죄가운데 죽어 7일 동안 왕좌에 앉았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이게 평화와 안녕이냐고 빈정대고 있습니다. 결국 이세벨은 종교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너희들이 주장하는 종교개혁은 평화와 안녕을 저해하는 잘못된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독설을 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열왕기상 19.15-18절에서 주신 최종 사명과, 열왕기상 21.21-26)에서 오므리-아합과 이세벨을 처단하는 주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사명은 왕들을 세우고 예언자 엘리야를 세워서 바알우상숭배를 처단하고 여호와언약신앙의 남은 자들의 명맥을 잇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가문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한 여로보암 왕과 바아사 왕의 가문처럼 아합의 가문을 몰살시키고, 특히 이세벨은 더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시신도 찾기 힘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 우상숭배 척결을 향한 주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죄를 짓게 하는 것과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그것을 제거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이렇게 우상숭배가 죄의 중심임을 알고 주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철저히 단호히 신속히 제거해야 합니다. 이 제거의 일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보고 우리는 경각심을 느껴야 하면 그것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이 시대에서도 주님이 그렇게 일하시고 그것이 정확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때에 예후가 계속 말하는 것처럼, “평안과 안녕이 무슨 상관이냐? 내 편에 설자가 누구인가 너희는 내 편에 가담하라”는 메시지가 들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소리에 반드시 주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모르고 주변과 시대를 향한 주님의 목적을 모르면, ‘평안과 안녕’을 저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후의 편’에 서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두 왕처럼, 아합과 이세벨의 운명과 같이 저 깊은 곳으로 내던짐을 당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모릅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 세상이 주는 평화와 안녕과 육신의 안락과 쾌락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이세벨의 화려함으로 유혹하는 바알-아세라 신의 속임이었습니다. 주님의 언약안에 거하며 주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대로 살면 평안과 안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님의 편에 가담하지 않고 중간 지대에서 서서 좋은 것만을 얻으려고 살았습니다. 결국은 그들이 가게될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목적에 나를 두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그러나, ‘아래로 내던져’ 파멸의 길로 가는 나를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처음에 구원하시는 음성으로 구원하시고 그 후 주님의 길, 주님의 편에 서도록 부르셨습니다. 이 양면의 부르심은 모두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죽어 장사되시어 나에 대한 심판을 받으시고 대속하시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하시면서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의 편에 서 있습니다. 출애굽한 백성, 가나안 땅 앞의 백성이 ‘군대’인 것처럼, 나는 주님의 싸움을 싸우는 군대입니다.
(아버지품)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삼위 하나님의 품에 거합니다. 나에게 평화와 안녕은 오직 주님 품입니다. 그 안에서 안식하며 주님의 군사로 서있습니다.
기 도
중간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확정하여 주님의 편에 서게 하소서. 이세벨같은 악마의 겉모습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주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내 삶을 드리는 군사로 서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주님의 편에 서서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그런 신자들을 계속 세우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겉으로 화려한 악마의 최후를 알게 하소서. 그리고 거기서 해방되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생 명 일 기 (9월 19일 목)
취침, 기상 시간을 조정하여 말씀 묵상시간을 앞당기는 일, 묵상 외에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에 진전이 없어 보입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수시로 주님께 마음을 열어 놓고 있어야 하고, 따로 시간을 떼어서 기도하기로 합니다.
생각만 가지고 있고 마음을 품었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니, 삶에서 하나씩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한 삶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절제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