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08 11:37
프로야구 감독과 수석코치의 관계는 배의 선장과 갑판장의 관계로 자주 표현된다.
선장과 갑판장이 따로 놀면 배가 산으로 가듯 프로야구도 한시즌 팀의 운명을 짊어진 감독과 수석코치의 궁합은 매우 중요하다.
감독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해 그 뜻대로 일선에서 팀을 직접 꾸려나가는게 수석코치의 몫이다. 수석코치는 실질적인 감독의 오른팔이자 선수단과 감독간 의사소통 통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두산이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수석코치를 바꾼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김경문 감독은 스프링캠프 막판인 6일 양승호 수석코치를 2군으로 내려보내는 대신 김광수 수비코치를 새 수석코치으로 임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두산의 이번 사태를 배경으로 프로야구의 감독과 수석코치의 관계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수석코치의 역할이 시대와 구단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 수석코치는 감독의 오른팔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른바 벤치코치가 실질적인 수석코치 역할을 담당한다. 보통 감독이 선수들과 공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면 벤치코치는 어머니 같은 인자함으로 선두들 융화에 앞장 서는 역할을 맡는다.
2003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조 토리 감독을 도와 벤치를 관장했던 돈 짐머 코치가 대표적인 경우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만으로도 누구나 그에게 호감을 갖게 만든다. 바로 이같은 후덕함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선수들을 토닥여 이른바 ‘양키 제국’을 건설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그가 있는한 토리 감독은 선수단 문제에 대해 달리 걱정할 게 없었다. 다들 짐머 코치를 토리 감독의 오른팔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찰떡궁합 김영덕 - 강병철, 김응룡 - 유남호
국내 프로야구에 이런 수석코치 개념이 보편화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하더라도 선수단 규모가 작고 코칭스태프의 숫자도 제한돼 따로 수석코치를 두지 않았다.
빙그레시절 김영덕 감독과 강병철 수석코치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김영덕 감독은 경기 결과에 대한 감정의 기복이 심해 선수들에 대한 잘 잘못을 여과없이 토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간에서 선수들을 달래는 역할을 한게 강병철 수석코치였다. 당시만 해도 강 코치는 김 감독의 뗄레야 뗄수 없는 심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90년 김영덕 감독의 영구감독설이 불거져 나오면서 강 코치가 빙그레를 떠나 롯데 감독으로 재취임하면서 둘의 밀월관계도 끝났다. 결과적으로 계약동거였던 셈이다.
김응룡 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도 해태 감독시절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업적을 이룬데는 당시 유남호 수석코치(현 기아 감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해태는 선후배간 위계질서와 끈끈한 승부근성으로 국내 프로야구를 호령했는데 해태를 강인한 인적 구성으로 만든 것은 실질적으로 유 코치의 역할이 컸다. 다들 김용룡 감독이 선수단을 엄하게 이끌었다고 하지만 이같은 김 감독의 의도를 100% 이상 선수단에 전달한게 바로 유 코치였기 때문이다.
◇ 구단의 선택 - 갈등의 전조?
그러나 수석코치를 꼭 감독이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구단이 필요에 의해 수석코치를 심는 경우다. 선수단에 프런트의 입김을 강하게 내세우기 위한 경우와 현 감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보험용으로 차기 감독 후보를 수석코치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다.
두산의 이번 파문의 배경은 전자로 보인다. 김 감독은 지난해 사령탑에 앉을 때부터 양 코치보다는 김 코치를 선호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구단이 양 코치를 수석코치로 임명하는 바람에 시즌 내내 불협화음을 빚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김 감독의 이번 선택은 지난해 3위 돌풍을 일으킨 위세를 앞세워 올해는 프런트의 입김없이 자기만의 야구의 색깔을 확실하게 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LG가 2001년 이광은 감독 체제가 시즌 초반 흔들리지 곧바로 김성근 2군감독을 1군 수석으로 불러올린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다. 결국 시즌 도중 김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