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콩국수
- 문하 정영인
집사람과 87번 버스를 타고 드림 파크 야생화단지를 산책하고 점심을 먹었다. 곰탕을 먹을 것인가, 콩국수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콩나물국밥을 먹을 것인가. 나는 나주곰탕을 먹자고 했고, 집사람은 콩국수를 먹자고 한다. 요즘 퇴직 남자가 여자의 말을 거슬리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칼국수 집에서 하는 검은콩 콩국수를 먹기로 했다. 그 집은 오래 전에 바지락칼국수를 먹었는데 별로라고 생각한 집이었다. 잘 되는지 그전보다는 식당을 더 늘렸다. 들어가니 입구에는 무슨 방송의 맛집으로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는 홍보가 벽면을 뒤덮고 있었다.
우리는 검은콩 콩국수를 두 그릇 시켰다. 큼직한 얼음이 든 거무틱틱한 콩국수가 나왔다. 국물은 검은 콩을 삶아 갈은 것이라 무척 텁텁하고 껄쭉하였다. 면은 국수를 삶은 것이었다. 국수는 점점 불어서 한 그릇 잔뜩 되었다. 하여간에 나는 이런 텁텁한 콩국수를 제일 싫어한다. 억지 춘향 격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집사람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냉모밀이나 따끈한 칼국수를 시킬 것을 그랬다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식당 안은 손님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다음부터는 이 집에 다시는 오지 말자고 또 다짐을 하였을 정도이다. 음식 맛은 절대적으로 개인 취향이 다분하다.
콩국수는 우리의 여름철의 식물성 보양식이라 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는 여름철 별미로 가끔 해 먹었다. 콩국수는 생각보다 손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바쁜 농촌에서는 자주 해 먹을 없었다.
우선 하얀 해콩을 준비해야 한다. 묵은 콩은 고소하지 못하다. 밀가루도 햇밀가루면 더욱 좋다. 우선 콩을 불려서 적당히 삶아야 한다. 그리고 맷돌로 곱게 갈아야 한다. 지금은 믹서기로 팍팍 갈지만 맷돌로 간 것과는 맛의 차이가 난다. 지금 음식점에서는 그냥 간 것을 쓰지만 고운 체를 겅그리개에 올려놓고 뽀오얀 콩물을 내려야 한다. 고운체 위에 남은 것은 비지가 되고….
다음에는 콩물에 넣을 면(麵)을 만들어야 한다. 대개 삶기 쉽게 국수를 쓰지만 어머니는 칼국수를 만들어 삶아 썼다. 밀가루를 여러 치대고 반죽하여 방망이로 얇게 밀어 쫄깃쫄깃한 면을 만들어 삶아 놓았다. 어머니는 면이 고소하라고 밀가루 반죽에 볶을 콩가루를 조금 넣었다. 여기서 핵심은 면이 꼬들꼬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에 어느 칼국수 집이 있다. 손님이 가면 커다란 반죽더미를 손님 보고 밟으라고 한다. 그러면 면이 쫄깃쫄깃해진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냉장고가 없었다. 우물물이 냉장고였다. 만들어 놓은 콩물은 우물물에 담가 놓았다. 그리곤 온 식구가 두레반상에 들어 앉아 시원한 콩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늘 콩물이나 면을 여유 있게 하였다. 그냥 콩물만 마셔도 끼니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손이 하는 일들은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손칼국수, 수제돈까스, 손뜨게질, 손두부, 손빨래 ‘손’자가 들어간 제품들이 귀하게 대접 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기야 붕어빵도 수제이긴 하지만. Hand-made가 대접 받는 세상이다.
독일 문호 괴테는 “손은 밖으로 나온 뇌”라고 했다.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 창의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젓가락질을 잘해서라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우리 민족이 유달리 창의적인 이유를 서너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표음문자인 한글과 표의문자인 한자를 같이 써 왔다는 것, 둘째, 젓가락질을 잘한다는 것, 셋째, 온대기후에 산다는 것, 넷째, 동성동본 혼인 금지 시킨 것, 다섯 째, 벼농사를 지었다는 것. 쌀 미(米 : 八十八)자를 보면 쌀 환 통을 얻기 위해선 88번의 손이 갈 정도로 손을 써서 벼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집는다, 들어 올린다, 쪼갠다, 찍는다, 젓는다, 옮긴다. 판다, 뒤집는다, 자른다, 벗긴다, 섞는다, 감는다 휘젓는다 등의 다양한 기능의 역사적 경험은 이기적인 유전자로 변형을 시켰을 것이다. 누가 그랬다. 우리 민족은 손의 감각적인 기능이 발달하여 손을 쓰는 운동을 잘한다고. 탁구, 배드민턴, 배구, 농구, 골프, 핸드볼, 펜싱, 유도 등. 악기 연주, 특히 피아노 등.
유난히 손재주가 많은 한 친구가 있다. 그의 손을 거치면 맥가이버처럼 척척 완벽하게 해낸다. 나는 그 친구가 무척 부럽다. 스위치 하나 고장 나도 벌벌 거리는 나로 보아서는 안 그럴 수 없다. 오늘도 그 친구는 고장 난 것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궁리할 것이다. 친구는 젓가락만으로도 생선이나 고갈비를 요리조리 잘 발라 먹는다.
어찌 보면 문명은 문(文)과 손(手)의 의해서 발전되는 것이 아닌지…. 아무리 인공지능의 시대라곤 하지만 기초는 글과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손은 바깥으로 나온 뇌이고, 젓가락은 손에서 나온 제3의 뇌일까?
첫댓글 음식이 입에 맞으면
행복함을 요즘은
많이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