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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취향에 맞는 작품이 별로 없어 요 근래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작은 논란이 이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고해서 어떤 작품인지 좀 살펴보게 되었다. 바로 지난달부터 MBC에서 수목 미니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는 ‘더킹투하츠’란 드라마다. 작품 자체는 보지 못했고, 일단 공홈에서 시놉시스만 대충 살펴보고도 너무 기가막히고 어이가없어 아무래도 한마디 하지 않을수가 없다.
우선 이 드라마의 주제는 남한의 왕세자와 북한 여군 교관의 사랑 이야기란 매우 특별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우선 사람들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수단인지 남북문제를 소재로 다루었고, 거기에 조금 특별하게 이른바 신데렐라형 스토리를 남북관계에 얽어놓은것이다.
헌데 그러다보니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상황 설정이 드라마에 등장하게 되었다. 우선 남한에 ‘왕세자’가 있다. 한마디로 남한이 입헌군주국(?)이란 가상의 설정이다. 물론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대한제국 황실이 이어져 내려오거나 부활된다는 식의 소재를 다룬 드라마는 종종 있어왔다. ‘궁’, ‘마이 프린세스’등. 하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대개 백마탄 왕자님과의 사랑을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을 제대로 자극시켜 흔한 재벌2세와의 사랑 이야기에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 현실에 아예 왕이나 왕자,공주가 등장한다는 설정의 드라마였다. 그와같은 설정의 드라마를 만들자니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은 대한제국 황실이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거나 부활되는 가상상황을 만드는게 불가피했다.
하지만 어차피 ‘궁’이나 ‘마이 프린세스’ 같은 드라마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순전히 백마탄 왕자님과의 사랑이나 어느날 갑자기 공주가 되는식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을 주된 스토리로 다룬 환타지물이니 별 문제될것이 없었다. 헌데 ‘더킹투하츠’는 남북관계라는 현실과 직결되는 매우 민감한 문제를 그것도 제법 실제상황이라도 되는양 제법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드라마속 설정을 좀 더 깊게 파헤쳐보자. 극중 남한체제의 설정이 입헌군주국인것 조차 분명치가 않지만, 어쨌든 드라마속 남한은 ‘왕세자’가 등장하고 심지어 왕과 왕대비까지 등장하는 21세기판 ‘왕조국가’다. 더욱이 극중 소위 왕세자는 대개의 신데렐라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그러했듯 철딱서니없고 천방지축에 기고만장하기까지 한 재벌2세 캐릭터를 그대로 그리고 있다. 아마도 이 철딱서니 없는 남한의 왕세자가 북한 여군 교관 출신인 개념녀(!)를 만나 제대로 철드는 이야기를 그리려는 모양인데, 다시말해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것 같은 남한의 안하무인격 왕세자가 북한의 개념있는 여군교관을 만나 철들고 사람된다는 스토리가 이 드라마의 중심축인 것이다. - 남한의 왕자를 길들이는 북한 여군 교관 스토리 ???
남한이 왕조국가(?)인건 그렇다치고 북한의 상황은 어떤가 ? 우선 여자주인공은 북한의 잘 나가던 여군교관이면서 아버지 역시 북한 고위층인 상당한 엘리트 집안의 설정이다. 대개의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이 가난한 집안 여성이거나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성장한 것으로 묘사한것과는 달리 ‘더킹투하츠’의 여자주인공은 집안 배경도 빵빵하다. 헌데 뭐 여자 주인공 집안은 그렇다 치고, 대체 그런 잘나가는 여군교관 딸과 북한 통일선전부 간부인 아버지가 있는 그 북한은 극중에서 어찌 묘사되고 있는가 ? 최소한 이 드라마에선 김일성이니 김정일이니 하는 실제 3대째 엽기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실존하는 ‘현대판 왕조국가 북조선’은 등장하지 않는다. 극의 구성과 전개상 굳이 묘사할 필요가 없어 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덕분에 멀쩡한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은 철없는 왕세자가 있는 왕조국가로 둔갑해버렸고,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은 물론 작년 연말 사망한 김정일에 뒤를 이어 3대째 통치자가 된 김정은도 언급되지 않는 이상한 북한이 되어버렸다. - 극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더킹투하츠’의 전체적 분위기로 봐선 북한은 마치 군인엘리트등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지도체제’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체제에서 북한 고위층의 딸네미인 여자 주인공은 한마디로 ‘개념형 여군’인것이다.
왕조국가 남한의 철없는 왕세자와 집단 엘리트체제로 움직이는 북한의 개념여군의 사랑 이야기라. 그것도 남한의 왕세자가 북한 개념여군에 의해 철드는 드라마라. 정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드라마를 만든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꽤나 불쾌한 느낌이 들게하는 드라마다. 정말이지 제작진이 만약 OO이가 아니라면 그저 단순히 백마탄 왕자님과 신데렐라의 사랑이야기에 지나치게 매료된 비현실적 몽상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우선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근 100년간의 국제정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도 있다면 저런 설정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걸 잘 알것이다. 우선 입헌군주국이든 왕조국가든 남한에 조선시대나 대한제국 왕실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려면 두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 하나는 대한제국이 망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거나 둘째는 비록 일제시대가 되긴 했어도 일본의 나름 깊은 배려가 있어 왕실의 명맥은 이어져 내려오다 35년 일제치하에서 해방된뒤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가 있어 대한제국 황실이 부활했다던가 하는.
헌데 첫 번째 전재에서 벌써 모순이 생긴다. 솔직히 일제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분단이 되어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혹 볼세비키 혁명의 여파로 소련의 거의 모든 주변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고, 실제 중국에서 존재했던 국공내전처럼 우리도 공산진영과 민족진영간 한바탕 내전을 겪은뒤 남북분단이 된 그런 상황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근대사의 흐름 자체만을 놓고보자면, 일제시대가 없었다면 남북분단도 존재할 이유가 없는것이다. 따라서 대한제국이 안 망하고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상황이라면, 대명천지 21세기에 여전히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이다. - 그리고 적어도 제작진의 역사의식 수준으로 볼때, 무슨 중국의 국공내전 같은 사태를 거치면서 남북이 분단되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진 않았을것 같다. 극중 남북간 분위기를 봐도 무슨 그런 처절한 내전을 거친 사이같아 보이지도 않고.
두 번째 전제, 비록 일제에 나라는 빼앗겼으나 일본의 깊은 배려심이 있어 - 실제 의친왕,영친왕의 경우처럼 생계만 겨우 유지하거나 심지어 일본여성과 결혼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온 경우가 아닌 - 저 정도의 번창한 세력이 유지될수 있는 왕실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는것은 더더욱 말도 안되는 이야기고, 특히 해방직후의 상황은 한가하게 황실 복원이나 논의하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과거 존재했던 황실 환타지 드라마의 경우 ‘궁’은 일제에서 해방된뒤 황실이 복원되어 상징적 존재로서의 역할 - 가령 해외반출 유물 반환사업등 - 만 하는 것으로 설정되었고, ‘마이 프린세스’야 극 내용 자체가 순종황제의 숨겨진 핏줄이 있는것을 알고있는 한 노회장이 그 자손을 찾으려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된것이니 역사나 실제 대한민국 현재상황을 크게 왜곡한것은 없다. 하지만 ‘더킹투하츠’는 실제 남북한 상황이나 국제정세는 물론 근,현대사의 전개상황조차도 깡그리 무시해버린 100퍼센트 환타지 드라마다. 아니, 환타지도 그냥 환타지가 아니라 의도적이든 아니든 남북의 실제상황을 완전히 비틀어버려 남한을 왕조국가, 북한을 개념 엘리트 국가로 만들어버렸다.
흔히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일뿐’이라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 물론 옳은말이다. 더욱이 가상상황을 설정해서 만든 ‘환타지 드라마’를 놓고 현실왜곡 운운하는 필자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매우 찌질해 보일수도 있을것이다.
얼마전 역시 인기리에 방영된 MBC 수목극 ‘해를품은달’은 배경은 조선시대(?)인것 처럼 했으나, 실제 조선시대 역사는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 만든 역시 역사 환타지물이다. 하지만 이 ‘해품달’의 설정을 갖고도 일부 역사매니아들은 역사왜곡과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역사관,가치관을 심어줄 우려를 지적한 바 있다.
해품달 당시 역사매니아들이 지적한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극중에선 왕세자보다 나이가 많은 ‘이복형’인 서자가 나오는데, 실제 조선왕실의 풍습과 분위기를 고려해본다면 불가능한 일이란 지적이다. 서자가 왕세자보다 나이가 많은 이복형이라면 현실적으로 정실인 왕비보다 먼저 들인 후궁이 있어야 존재하는데, 실제 조선에서 그런 사례는 없다는것이다. 드물게 세자보다 나이많은 이복형 서자가 존재한 경우가 두 번 있는데, 한번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후사의 경우로, 이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진성대군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첫 부인이 폐비가 된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선조 이후 광해군,영창대군의 경우로 역시 선조가 첫 정비(正妃)와의 사이에 오랫동안 후사가 없었고, 임진왜란까지 겪은후 다 늙어서 새파랗게 젊은 계비(繼妃) 인목왕후를 들여 그때서야 어린 영창대군이 탄생한 경우라는 것이다.
그 두가지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왕실에서 왕세자가 정비보다 먼저 후궁을 들여 나이많은 서자 이복형이 탄생하는 상황이 벌어질수가 없는데, 그런 가상상황을 설정하여 그저그런 4각관계 로맨스를 만든것은 ‘역사왜곡’이라는게 해품달 방영 당시 이 문제를 지적한 ‘역사매니아’들의 주장이었다.
귀하는 ‘해품달’의 역사왜곡을 지적한 일부 역사매니아들의 주장이 환타지물을 갖고 공연한 트집을 잡는 찌질한 지적질로 보였는가. 아니면 자칫 청소년,젊은이들에게 조선시대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가치관을 심어줄수 있는 환타지물에 대한 우려를 지적한 일리있는 주장이라 생각하는가. 전자의 경우라면 논외가 되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같은 맥락에서 ‘더킹투하츠’의 몰상식한 근,현대사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환타지 상황도 비판받아야 한다.
수백년,수천년전의 역사를 갖고 정통사극이든 퓨전이나 환타지물이든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도 역사학자,역사매니아들은 그런 사극들이 청소년,젊은이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줄수 있음을 우려하며 늘상 비판하고 지적한다. 이미 수백수천년전의 일을 갖고도 그런데 엄연히 현존하는 남북분단의 문제이겠는가.
한마디로 ‘더킹투하츠’는 백마탄 왕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을 다소 무모하게 남북한 분단상황과 엮어버려 만들어버린 이상한 환타지물이다. 한층 더 심도있게 지적하자면, 기존의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은 대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거나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것으로 설정되곤 했는데, ‘더킹투하츠’는 이와같은 설정에서도 벗어나 그야말로 빵빵한 엘리트 집안에서 자라난 ‘개념 북한 여군교관’이 주인공이다. 엘리트 집단 지도체제(로 추정되는)에서 자라난 개념 북한 여군이 왕조국가 남한의 철딱서니없고 안하무인격에 세상물정 모르는 왕세자를 사람 만드는 이상한 모양새를 만들어버린 엽기 환타지물이다.
사실 ‘강한여성’에 대한 갈망과 로망은 대개는 ‘어설픈 페미니스트 기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강한 여성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기질과 백마탄 왕자와의 사랑을 꿈꾸는 여성심리 이 두가지 자체가 모순된 성격이긴 하지만, 거기까지 논했다간 글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기로 하고, 기존의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툭하면 눈물 찔찔짜고, 항상 주위의 악역들한테 당하기만 하고, 게다가 집안이나 성장배경까지 가난하고 찌질한 그런 천편일률적 신데렐라 여주인공에서 벗어나 ‘집안도 좋고, 개념도 갖췄고 게다가 입바른 소리도 잘하는’ 그런 강한 신데렐라 캐릭터를 등장시킨것 까진 좋은데, 왜 하필 그게 북한 여군인가. 그것도 북한의 엘리트 개념여군이 남한의 철딱서니 없는 왕세자를 길들인다는 ‘매우 이상한 설정’까지 만들어가면서. - 차라리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 한국땅에 정착한 탈북여성이 남한의 재벌2세와 사랑하는 이야기였다면 이렇게까지 열받지도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더킹투하츠’는 남북한의 현실은 물론 근,현대사의 상황까지 매우 이상하게 왜곡시켜 청소년,젊은이들에게 그릇된 역사인식과 가치관을 심어줄수 있는 아주 이상하고 위험한 드라마다. 필자는 이미 앞에서 ‘해를품은달’의 역사왜곡 문제를 지적한 역사매니아들의 경우를 예를 들면서 같은 맥락에서 ‘더킹투하츠’가 심어줄수 있는 잘못된 현실인식,역사인식의 문제도 지적되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였다.
환타지 드라마 하나갖고 공연히 찌질한 트집을 잡는다고 비웃지 말아주기 바란다. 역사매니아,역사학자들은 수백,수천년전의 역사를 갖고 만드는 드라마를 놓고도 그와같은 사극들이 만드는 역사인식이 일반대중과 젊은세대에게 심어줄수 있는 그릇된 역사인식과 가치관의 문제를 늘상 비판하곤 한다. 그렇다면 ‘더킹투하츠’가 자칫 자라나는 젊은이,청소년들에게 심어줄수 있는 잘못된 현실인식,역사인식에 관한 문제도 지적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었으리라고 본다.
첫댓글 비웃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드라마는 드라마니 뭐니 하지만 파급 효과를 생각할 때 반길만한 현상은 절대로 아니지요. 미디어의 영향이란 우리의 생각보다 실제로 막대한 법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해내리님의 말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