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레마, 케리그마
헬라어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을 표현 할 때 쓰이는 단어가 세 가지 있다. 레마, 케리그마 그리고 로고스이다. 이 셋의 의미를 간단히 구별하면, 로고스는 지성에, 레마는 감성에 케리그마는 의지에 작용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늘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종종 그 의미 중복되어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 중 로고스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로 어떤 때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말씀’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구체적 의미로는 우리의 지성 안에서 작용하는 말씀을 가리킨다.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때 그리고 말씀을 담아 둠으로 깨어 있을 때, 이런 작용을 하는 말씀은 대개 로고스의 의미다. 또한 로고스의 말씀은 레마와 케리그마로서의 말씀의 기초이기도 하다. 엄격히 말하면 로고스의 말씀이 특정한 작용을 할 때 이것을 레마나 케리그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에게 깨달아져서 나의 인격에 사랑이 들어와 채울 때 로고스의 말씀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말씀이 나를 강권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런 종류의 작용을 레마의 말씀이라고 구별해 볼 수 있다. 알아야 할 것은 로고스와 레마는 같은 ‘내용’의 말씀이다. 다만 레마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이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어 행위로 옮겨지는 힘이 동반된 작용을 가리킨다. 따라서 로고스와 레마는 서로 다른 종류의 말씀이 아니다. 즉 로고스로서의 사랑과 레마로서의 사랑이 다른 종류의 사랑이 아니란 뜻이다. 따라서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보다 못하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로고스의 말씀이 특별한 곳에서 특별히 작용하는 현상을 레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레마의 말씀은 주로 우리를 깨어지게 하는 작용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레마는 우리의 정서에 주로 작용하고, 움직이게 한다는 해석은 옳다. 한편 로고스의 말씀도 살아서 움직인다. 다만 이 말씀은 우리의 정서보다는 지성을 터치하여 깨닫게 하고, 깨어 있도록 한다.
한편 케리그마는 선포된 말씀으로, 주로 설교를 통해서 혹은 성도의 신앙 고백을 통해서 선포된다. 선포된 말씀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특별한 운동력이 있다. 이 말씀은 사단의 권세를 깨부순다. 왜냐하면 선포된 말씀을 망가진 본질을 회복하기 때문인데, 이 회복은 한 순간에 일어 난다. 기록된 말씀을 설교자가 깨달아 선포한다. 선포된 말씀은 반응하는 이들에 따라 열매를 많이 맺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선포된 말씀이 가진 운동력은 대체로 두가지이다. 하나는 반응하는 사람들 속에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 속으로 폭발적인 힘으로 작용을 한다. 또 선포된 말씀은 때로는 그 순간 반응이 보이지 않지만,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는 영적인 세계 속의 전투를 수행한다. 따라서 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자주 자주 케리그마의 말씀이 선포된 공간에도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네사렛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경험한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케리그마와 레마 그리고 로고스에 대한 말씀이 구별되는 좋은 예가 나온다. 누가복음 5장에 기록된 게네사렛 바닷가 사건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헌신한 사건이다. 밤새 고기잡이에 실패한 베드로는 그물을 깁고 있었다. 다음 고기잡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수 많은 무리와 함께 바닷가에 온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위에 올라 무리들과 조금 거리를 띄고 말씀을 전하신다. 베드로는 피곤한 육신을 갖고 가장 재미없는 일인 그물 깁기(씻기)를 하면서 한편 귀로 무리를 향하여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이 말씀은 케리그마다. 무리에게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의 관심은 처량하게 그물을 만지고 있던 베드로를 향한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베드로에게 이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 그 말씀이 그의 가슴에 닿았기 때문에 (레마) 그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레마의 말씀은 정서를 움직여 행동하게 한다. 특별히 이런 행동의 믿음의 순종이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비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이 레마가 된 기반에는 그물을 씻으면서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말씀(케리그마)이 베드로의 마음에 이미 들어와 천국을 이루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마의 말씀이 다가오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케리그마의 말씀을 잘 보전하고 있어야 한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마음에 잘 담아 둔 성도들에게는(엡 5:19) 그 말씀이 살아 움직여, 그를 이끄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으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요한복음 6장 68절의 말씀도 ‘레마’의 말씀이다. 이것은 선포되고 가르쳐진 말씀에 대한 경청과 마음에 담아둔 것에 기초하여 일어난 축복이다. 우리의 응답이 어디서 오나, 선포된 말씀을 담아 두고, 이 말씀이 깨달아진 말씀으로 보전되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놀라운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때로 레마가 되어 말씀 자체가 우리를 순종(혹은 행동)하게 한다. 말씀이 다가 올 때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레마의 말씀 대로 이루어지자 베드로는 자신의 죄성을 보게 된다. 그는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간청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오히려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신다.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로고스의 말씀’이다. 로고스의 말씀은 성도의 마음을 움직여 인격을 형성한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 요한복음은 그 분을 ‘그 로고스’라 부른다. 로고스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움직이는 말씀인 이유는 로고스 속에는 예수의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