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를 단국대 교수님이 알아보라고 과제를 냈다.
글쎄 어느 분이 이런 문제를 냈을까 궁금합니다.
혹 이재성 박사님? 아니면 박경철 강남대 교수님, 혹시 전연세대 교수였던 손보기 박사님? 어쩌면 단국대 서영수 교수님일지도 모르겠군요.
어느 분이 이런 문제를 냈는지도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고구려의 동몽고진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분이 아직까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기서 동몽고라는 지역이 문제가 되겠지요.
이 명칭은 이재성 박사가 "고대 동몽고사 연구" 1996년 법인문화사. 책을 내면서 사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체로 내몽고자치구 지역, 대흥안령산맥 주변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고구려가 이 지역으로 진출한 것은 무엇보다 광개토대왕의 거란 정벌이 우선 고려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사스페셜 200년에 방영한 대고구려전1,2부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스페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재방송을 보거나, 대본을 보면 됩니다.)
광개토대왕 이후 고구려는 지금의 요서북부, 소위 송막지역, 또는 동몽고지역이라는 곳으로 진출을 계속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470년대에 장수왕에 의한 지두우분할 계획이 그것입니다. 유연과 함께 지두우를 부할하여 유목제국인 유연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양국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거란, 해, 지두우 등을 고립시키고, 고구려 북쪽에 있는 물길의 이탈세력이 중원세력(구체적으로 북위) 등과 연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계획했습니다. 대체로 지두우분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이재성, 박경철)과와 반대하는 입장(박원길, 이기동 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물론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두우분할에 대해서는 이 카페 사료해설방에 가서 거란관련 원문 번역본이 있으니까 참조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고구려의 실위에 대한 철 수출 문제입니다. 이 역사 사료해설방에 가면 실위전에 대한 번역본이 있으니까 참고하면 됩니다. 고구려는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의 북쪽 지역에서 동쪽으로 있는 눈강 상류의 실위에 철을 수출합니다. 철은 굉장한 군사물품이기 때문에 쉽사리 수출하지 않습니다.
고구려가 실위에 철을 수출했다는 것은 이 시대가 유목제국인 돌궐(고구려와 친하던 유연제국을 무너뜨리고 550년대 이후 등장한 나라. 고구려와 전쟁까지도 함)과 경쟁하기 위해서 양국 사이에 있는 실위를 포섭하기 위해 철을 수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가 동몽고일대를 장악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 북방지역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고 유목제국과 연결하여 중원세력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52년 돌궐과 고구려의 전쟁이 벌어진 이후에는 고구려와 돌궐이 역시 거란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입니다. 돌궐의 이계찰대군을 격파하면서 고구려가 보다 북쪽의 돌궐 지역으로 공격했을 것으로 추정(고구려와 돌궐과의 전쟁은 수서 거란전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에 딱 2번만 나오나, 돌궐비문에 고구려 관련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여러차례 치열한 전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되고 있습니다.
1992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손보기 박사 등이 몽고공화국에 가서 한몽합동으로 몽고공화국 동부지역에 대한 발굴과 조사를 했는데, 이때 고구려성의 유적이 이 지역에서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의 북진 정책이 조금은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580년대 이후 고구려의 동몽고진출은 특히 거란의 거주지였던 대흥안령산맥 남단의 송막지역(서요하상류지역)에 집중됩니다. 그래서 수-당, 그리고 돌궐 등과 경쟁하기도 합니다.
645년 당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까지는 거란지역내에 고구려의 세력이 당보다 더 강하게 침투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후 당은 거란에 자기 세력을 부식시키는데 노력합니다. 그래서 650년대에는 당과 고구려 사이에 여러차례 이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결국 660년 고구려는 당과의 거란지역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사실상 동몽고지역에서의 지배권을 상실합니다. 그 결과 668년에는 동몽고지역 진출의 거점이었던 부여성이 함락되고 마침내는 멸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고구려가 이 지역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은 군사전략적 이점도 있지만, 명마의 산지(지두우가 대표적)이자, 전투원의 보충(이 지역 유목민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는 높은 세금보다는 전투원의 동원이란 측면에서 간접 지배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국제 교역망의 확보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특히 470년대 물길이 북위와 손을 잡으려고 할 때에 이를 단죄하기 위해서 고구려가 지두우를 유연과 분할하려고 했던 것은 동몽고진출이 얼마나 고구려 안보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고구려 후방에 물길이 북위와 연결하여 고구려를 공격하면 큰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552년 돌궐이 공격해오자, 고구려는 남부전선을 포기하고 북부전선에 집중합니다.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 남부를 공격하여 영토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가 돌궐과 전쟁을 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태돈, 1976년, 고구려의 한수유역 상실에 대하여, 한국사연구 13집 라는 아주 유명한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은 노태돈 저,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1999년에도 실려있습니다)
고구려의 동몽고진출 과정을 조금 더 도식으로 요약하면
거점 확보 단계 - 부여 정복 (대무신왕 - 서천왕)
진출 초기 단계 - 거란 정복 (광개토대왕)
진출 중기 단계 - 지두우 분할 (장수왕), 물길 등 주변세력 견제
동몽고 쟁탈단계 - 돌궐과의 전쟁 (550년대 이후 - 양원왕, 평원왕)
실위에 철 수출. 몽고공화국 동부에 거점 성 확보(?)
중원세력과 경쟁 단계 - 수, 당과의 치열한 거란확보전 (영양왕,보장왕)
철수 단계 - 660년 당과의 전쟁에서 패배로 상실
첫댓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말뜻을 정확히 몰라서 걱정하고 있었거든여... 그리고 저희 교수님은 단국대 서영수 교수님이구여~~^^ 넘넘 감사드려요~올려주신 내용을 토대로 보면 아주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