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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고대 한국인
고조선 귀면(鬼面) 와당 속에 히브리어 문양의 비밀
1. 인도: 지붕 위에 수키와(夫瓦)
2. 뚜바: 문양이 있는 돌기원전 9세기 중엽 청동기 유물
3. 고조선: 히브리어가 적힌 귀면 와당 기원전 8세기 초, 평양부 대동군 림원부 상오리 출토
4. 고구려: 전설적인 치우천왕을 묘사한 수막새 기원후 4세기말 (광개토대왕 재위시) 국내성 출토
기와의 기원은 3천 년 전에 이스라엘 12지파 중 단 지파 민족이 알타이산맥까지 이주한 최초 정착지, 지금의 중국 서북부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 찾을 수 있다. 애굽에서 벽돌 굽던 기술이 지붕 덮개의 기왓장을 만드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한 시도는 일반 백성들의 가옥을 꾸미려고 한 데서 비록된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외심의 발로에서 천제를 지내는 사당(祠堂) 지붕에 와당을 얹었다.
한민족(단지파)은 BC 1073년경에 고대 이스라엘의 최북단 헬몬산 남쪽 기슭 ‘단(라이스)’에서 동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레바논에서 시리아, 이라크의 모술과 아르빌, 이란의 테브리즈와 아르다빌,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 이르렀다. 거기서 카스피 바다를 건너 투르크메니스탄의 마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타시켄트, 카자흐스탄의 침켄트와 알마티, 천산북로를 경유하여 BC 1065년경 알타이산맥 아래에 위치한 중국 서북부의 쿠둔과 부얼진까지 왔다.
이스라엘에서 알타이까지 7년가량 걸렸지만 남녀노소로 어우러진 수십만의 행군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들은 중국 북부 알타이산맥에 와서 지친 몸을 풀고 거기서 일시 우거(寓居)한다는 것이 200여 년 동안 살게 되었다(승리신문 통호 47호, 83호 「말씀」란 참조). 토착민과 물물교환을 위해 알타이계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자라나는 이스라엘 단지파 2세들은 히브리 모국어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배출할 민족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다. 언어가 완전히 교체된 후, BC 850년 전후에 몽고로 옮겨져 살았는데 이미 알타이산맥 아래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불어난 인구는 일백만이 족히 넘었으리라 본다.
기원전 9세기 중엽, 단지파 주류의 절반 이상이 되는 50만 명이 중국 서북부에서 몽고로 이동할 때에는 카자흐스탄의 세미에서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낮은 지대를 넘어 알타이의 수도 바르나울(Barnaul의 바른Barn은 ‘크다’는 뜻이고, 울ul이란 ‘마을’을 뜻함)을 경유하였다.
알타이를 넘은 단지파의 거주공간은 샤안산맥의 남쪽기슭에 위치한 뚜바와 바이칼호수 주변의 이르크츠크와 울란우데 그리고 몽고평원의 광대한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훗날 뚜바는 투르크족 시조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고 오늘날에 와서 뚜바인을 한민족 조상의 원류로 파악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뚜바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 가운데 청동검이나 문양이 있는 둥근 돌 그리고 몽골반점 등이 한반도의 문화와 너무나 일치하기 때문이다.
단지파 민족이 몽고에서 수십 년간 유목생활을 하면서 자연히 말을 다루는 기마민족으로 격상되었고, 마찬가지로 중국 서북부와 시베리아 알타이 그리고 몽골초원에서 청동검과 청동화살촉, 제사장의 청동방울과 청동거울 등을 제작하면서 이스라엘에서 출발할 당시 가져온 청동기 문화의 꽃을 피웠다. 중국 서북부에서 거주할 때에는 유목생활보다 정착민으로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들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흙 이기기와 벽돌 굽던 경험을 살려 집 지붕에 기와로 단장하는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환단고기에 단국을 세운 檀族이 나오는 <구약성경>의 기이한 예언
기독교사가 뒤집어질 역사적 진실이 규명된다.
지금의 유태인들은 백인종과 혼혈족으로 고대 순수 황인종이 아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기독교인들을 흥분시키는 이상한 예언이 하나 있다.
“유다(유대민족)은 사자새끼로다.홀(왕권)이 함께 하는데,실로(구원자)가 올 때 까지다. 단(단군민족)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毒蛇 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창49장)
이 창세기 49장의 예언내용은 단군민족이 유대민족을 대신할 미래 구원민족으로 하나님이 선택한 정통성을 가진 진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5백년전 남사고 선생이 예언한 격암유록에 기록한 정도령(바른 도가 내린다)을 우리 민족이 그토록 고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에는 유태인의 원족源族으로 12지파가 나오는데, 12지파 중에 유태인의 역사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단지파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사라진 단지파가 어디에선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백성을 심판한다고 예언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단족으로 볼 수 있는 인종은 치우천왕이 다스리던 청구국靑丘國이 사라지자,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단국檀國이다. <구약성경>에 실린 단지파를 추론해 보면 단국檀國을 세운 단족檀族 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쪽에서 동쪽으로 오지 않고, 동쪽에서 이스라엘 쪽으로 갔다가 다시 왔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즉,이스라엘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슈메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난 역사적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다시 말하면 12환국의 하나인 슈메르국에서 고대 한국인 아브라함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12지파중 하나인 단지파(예맥족)가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다시 동북방으로 이동하여 단군조선을 세운 것이다.
[한단고기-삼신오제본기]에 나오는 [단국]을 세운 분은 천일태제天一太帝로 단군왕검의 조부가 되거나 처조부가 되는 분이다. 그를 단군왕검의 조부가 되거나 처조부가 된다고 아리송한 표현을 한 것은, 당시가 마고삼신을 숭상하는 웅녀족熊女族이 다스리는 모계사회였으므로, 천일태제를 웅족의 모계혈족으로 보아서, 천일태제가 최고의 권력자인 웅녀의 지시를 받아 단국을 세웠을 것으로 보아, 단군왕검의 처조부라고 한 것이다. 단국은 천일태제, 지일홍제, 태일성제의 3세가 존속했던 나라이다. 태일성제는 지일홍제의 태자가 되어 단국을 승계하였고, 무진년(BC 2333년)에 단국의 국호를 배달나라로 고쳤고, 그로부터 10년 후에 배달나라의 국호를 조선으로 고쳤다. (<조선기>)3대까지 존속했던 나라가 나라 이름을 두 번이나 고치고 역사에서 퇴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 사람들이 역사의 표면에 나타난 남자들이 아니고 역사의 뒷편에 숨어서 역사를 이끌어간 여자였다고 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김씨니 이씨니 하는 부계혈통을 의미하는 씨칭氏稱이 별 의미가 없는 시대로 모계족성母系族姓을 성으로 쓰던 시대였다. 檀國의 檀은 태양신을 의미하는 문자인데, 웅녀를 태양신으로 보아 단으로 표현했을 것으로 보게 되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모계사회의 일원이었던 당시의 사람들이 숭상했던 태양신은 남신이 아니라 여신이라고 보면 된다.
만주와 한반도의 투착족인 마한족의 조상인 마고는 후손에게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마고의 대통을 이을 후손에게 전수했는데, 천부삼인은 해·달·북두칠성을 의미한다. 해와 달은 여신으로 보고 칠성은 남신으로 보았다.
유태인의 역사에서 단족이 사라진 것은 단족이 여신인 태양을 숭상하는 족속으로서 남신을 숭상하는 다른 유태원족과는 질이 다른 민족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단족이 어떠한 종족인가는 위에 든 예언에서 밝혀진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간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창49:16-18)
단지파는 레바논의 동쪽에서 출발하여 동북쪽(주, 동북쪽은 북두칠성이 뜨는 방위이다)으로 옮겨 가며, 시리아·이락·이란을 통과하여, 중국본토 북부의 알타이산맥 밑에서 살면서 알타이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히브리어는 잊어버렸다. 머리가 검은 이들이 몽고로 이주하였고, 만주로 이동하여 대동강 가에서 단군조선을 창건하였다.
“유다(유대민족)는 사자 새끼 같음이여, 홀(王權)이 함께하는데 실로(구원자)가 임할 때까지로다” 라고 한 예언이다. 유다를 강한 사자새끼에 비유하여 말했지만, 앞으로 나타날 단지파가 뱀과 독사가 되어 사자를 물어 죽이리라고 예언한 것이다. <성경>에서 유태민족에게서 구원자가 나오지 않고 단에서 나온다고 못을 박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500년전 우리민족의 미래을 예언해놓은 조선시대의 예언자 격암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내용과도 일맥상통한 내용이며,불경의 미륵불출현과도 일맥상통한 내용이다.
▲ '비파 청동검'은 만주를 포함 유라시아 대륙에서 발굴된 청동검 특징이고,'세형동검'은 한반도에서 변형된 청동검이다.
이 예언에서 단족을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라고 규정해 준 것이다. 뱀과 독사는 한국 12제국시대에 한국에 속해 있던 풍이족風夷族의 일파인 수메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풍이족의 풍風에는 충虫이 들어가 있는데, 이 충은 살모사를 의미하는 문자이다. 살모사殺母蛇는 어미를 죽이는 뱀이라는 뜻이다. 이 살모사가 풍이족의 인종아이콘이 된다. 풍이족이 세계 방방곡곡에 퍼져나가면서 뱀을 인종 아이콘으로 퍼뜨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작은 뱀을 양손에 들고 있는 성창盛娼의 여신 아스타르이다. 아스타르는 그리스가 남신인 제우스에게 정복당하기 전에 그리스를 다스리던 여인국의 주신이었다. 그는 매년 성창을 열어 그의 백성들이 임신할 수 있게 하였고, 이렇게 하여 태어나는 자들을 백성으로 삼았다. 이러한 유습을 퍼뜨린 인종이 풍이족의 일파인 수메르였다고 본다.
유태 땅에 새로운 신으로 등장한 남신 엘로힘은,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복수複數의 신이라고 하는데, 그가 복수의 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의 사회가 여신이 다스리는 성창의 시대였으므로, 남신을 단신單神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모계사회의 사회적 기풍의 영향을 받았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읽고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단족이 유태족 12지파에서 나와 동쪽으로 와서 고조선을 건국하였을 것으로만 추론한다. 그러나 반대로 오래 전에 우리 선조의 일파가 서쪽으로 가서 유태족의 원족이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 기독교인들의 역사인식은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 서울 대학교 히브리어 전문가인 신사훈 박사께서 고대 히브리어를 해독한 것이다. 또한 고대 히브리어가 씌여져 있는 단군 지석이 백두산에서 발견되었다.1911년 일제 식민지가 시작된 무렵 백두산에서 벌목을 하던 일본인이 알수 없는 글이 씌여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하고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다.그러나 해석 할 길이 없어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있던 프랑스 천주교 신부에게 판독시킨 결과 고대 히브리어로 씌여진 단군 지석임을 알게 되었는데 압록강 건너 안동현 천주교 신부도 와서 히브리어로 된 단군 지석임을 확인하였다. 그 이후 단군 지석은 일본인이 가져갔다. (평북 의주 출생 독립운동가 고정록씨 증언)
우리 단군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이 생활습관이 너무 닮은 것이 많다. 같다는 것을 몇 가지만 들어 보면, 제사법이 같다, 사람이 죽으면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하는 것이 같다, 산소마다 돌 제단이 있다, 또 장작을 쌓아놓고 염소나 양을 잡아서 불태우며 제사를 지냈다(우리나라에서도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낼 때 장작을 쌓아놓고 소를 잡아 올려놓아 불을 지르며 제사 지냈다), 두 민족이 다 같이 흰옷 입기를 좋아하여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한다,
양반, 상놈하는 제도가 같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정조관념이 같다, 부녀자들이 물동이를 이고 물을 깃던 것이 같다, 맷돌질, 도리깨, 농사법이 같다, 언어 중에 기본적인 언어인 에미 에비(엄마, 아빠)가 같다, 음식이 맵고 짜고, 부초와 마늘을 쓴다, 또 향어를 먹는다, 골상이 같다, 두뇌가 다 우수하다, 키가 작은 것이 같다,
이스라엘의 초막절풍습과 추석풍습의 동일성 등 절기節氣 지키는 것이 같다는 등등...... 대동강 변에서 출토된 기왓장에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으므로, 단족의 이동을 증명할 수 있다.
▲ 치우천황 ‘귀면와(鬼面瓦)의 변천과정'의 사진 ①과 ②는 평양부 림원면 상오리에 출토된 와당의 상단 중앙에 새겨진 모양이며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된다, 잠언을 지휘하는 사사가 통치한다>라는 고대 히브리어(BC11세기 문자)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기원전 8세기초 고조선 시대의 유물이다. 사진 ③과 ④는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릉 유적지에 발견된 것으로 기원후 5세기에 제작된 와당유물이다.
'성경'을 읽은 사람은, 통사의 흐름을 모르고 단편적인 역사만을 가지고 역사를 추론할 때, 단족이 이스라엘 쪽에서 왔다고 확신하게 되는 경우와 같은 해석이 나오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한반도 황해지역의 마고(마고 지나시대. 삼신시대)->한반도의 황궁(황궁시대)->만주. 시베리아의 유인·한인(12제국시대. 풍이족시대)->만주의 한웅(배달나라시대. 구려족시대)->쥐나대륙의 치우천왕(배달나라의 청구국시대)-> 천일태제(배달나라의 단국시대)-단군왕검(단군조선시대)으로 이어지는 통사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의 역사가 풍이족시대에 유태 땅으로 수출되었다가, 동이족시대에 그 일부가 조상이 떠났던 고토古土로 회귀하였을 것으로 보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폭 넓은 해석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 태호복희씨가 전해 주었다는 슈메르인들의 쐐기 문자(왼쪽)와 고대 동방족(한국인들)의 갑골문자(오른쪽)-슈메르어와 현대 한국어는 발음과 의미가 거의 같다(예: 엄마, 밭, 그, 나, 길, 아비, 님 등)
고대12환국->슈메르->이스라엘->기독교(성서)
하나님의 신앙은 배달국의 일신교, 고조선의 천신교(소도), 부여의 (대천교)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경천교(동맹), 신라숭천교(팔관회)등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상이 왕의 엄명으로 내려졌고, 왕이 직접 신하를 거느리고 팔관회에 직접참석하여 하나님께 천제를 지냈으며, 국가 종교, 민족종교로 승화시켰다.
슈메르 관련 한단고기 기록
1. 제15대 벌음단군(BC1661년)재위 10년 7월에 우루 사람 20가정이 투항하였다.
2. 재위 50년에는 슈메르 사절단이 조공을 바쳤다.
3. 제15대 대음단군, 제27대 두밀 단군은 천해가 물이 넘어 사라이산이 무너져 많은 백성이 수해를 당했을 때 슈메르에 구호물자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슈메르어와 현대 한국어의 언어의 구조와 의미와 발음은 같다.
12환국의 분국 슈메르어 한국어
ABAB(father, prince) 아바, 아버지
A-LA(Human Spirit) 얼, 인간의 정신
ARARI(Desolate plate) 아라리, 아리랑 아라리
AN(god of Heaven) 한(桓, 汗, 韓),하나님
BAB-BAR(BAR-BAR): 맑, 맑다, 광명, 인원
BAD(wall) 벽 BIR(Prayer) 빌다, 기도
BIR(to shine) 빛 BU(blow) 불다
BAR(other, another) 밖
BUR(separate) 벌어지다
DU(a mound or heap) 둑
DUB(cover) 덮다
DUG(water pot) 독
GAL(to flow) 가람(江)
GIR(way) 길
GAR(to grindor) 갈다(멧돌로)
GUL(picture, sculptured) 글, 그림
GAL, GALA(a piece, portion) 갈레
GAM(s sort of swornm) 검
GAM-MAL 감-말:검은말:낙타
GE(The ear) 귀
GE(end) 가(끝부분)
GEN(to go) 간 간다.
GUN(Country) 군(郡)
GUR(Cove) 굴(동굴)
Gush-kin(gold) 구지
본래 우리 한족의 원어로서 삼국시대까지도 금을 구지라 하였음. Kin은 누런 황금을 뜻한다. 봉황의 상징과 같은 동양인의 공통점,
역사의 뿌리가 같다면 반드시 닮은꼴이 있기 마련이다. 슈메르의 언어와 현재의 언어와 현재의 한국어를 비교하여 보자. 여기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문자와 발음의 변천원리를 간단히 배워두고 넘어가자.음운의 변천은 문화와 유적의 원뿌리를 밝히는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이와 같이 기초 단어가 의미까지 모두 같다. 특히 조사를 사용해서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는 교착어의 유일한 특징이라 할수 있다. ~로, ~가, ~의 , ~를 와 같은 조사를 사용하는 언어는 교착어가 유일하다.
교착어를 쓰는 종족은 전세계적으로 어떤 민족인가? 동이족 계열뿐이다. 터키도 교착어를 쓴다. 어순체계가 약간 다른데 터어키에서는 현재에도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터키의 역사 교과서는 2000년전에는 한국과 터키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외 지구촌의 소수종족중에 교착어를 쓰는 곳이 그 외 몇몇 종족은 중국의 묘족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교착어를 사용한다.
세계문명의 근원
1. 북만주 송하문명(BC3890년) - 한웅 배달국 문화 시작 - 편두풍습의 기원
2. 황하문명(BC3000년경) - 배달국의 복희천황이 이룩함
3. 유브라데 문명(BC2600년경) - 치우천황에 의하여 패전하여 도망한 소호금천(엘린영웅)이 슈메르(유브라데)문명을 꽃 피웠다.
4. 인더스 문명 - 배달국15대 치애특천황 : 티벧과 인도 점령(BC2500년)
A. 한국어와 갈대아(슈메르:수밀이국) 언어적 비교에서 나타난다.
한국어와 슈메르어는 발음과 언어구조가 같은 교착어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순수한 말과 슈메르어가 본질적으로 유사성이 많다는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다.
B. 복희문자와 창세기(1장 - 3장) 내용의 신관과 창조의 섭리가 같다.
C.H. 고든 박사는 슈메르 사람은 동방에서 갔으며, 슈메르 사람들이 근동에서 들어갈 때에 고대적 문자를 가지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의 우에노(上野景福)씨는 슈메르의 설형문자는 복희문자라고 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관(창세기)이 우리 민족의 신관과 처음부터 일치하였다는 사실은 영국의 .R.Nelson 박사의 '한문과 창세기' 증거에서 밝혔다. 성서의 사본이기도하는 쿰란 공동체(세례요한공동체)의 사해문서에서는 고대 한자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과 성서와 예수사상의 뿌리<슈메르<한국
인간창조의 이야기
구약성서(창세기 2장7절)-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후한시대의 문헌 ‘풍속통의(風俗通義)’-천지가 개벽되어 사람이 있지 아니 하였는데 여와님이 황토를 다져 사람으로 만드시고 힘써 진흙중에서 사람을 건져내다.(風俗通義又稱俗說天地開闢未有人民女 禍搏黃土作人劇務力不暇供~)
환인시대부터 전해 오는 것을 고구려의 을파소가 정리한 '참전계경(參佺戒經)'-여와(태호복희 여동생)님이 흙을 이겨 사람형상을 만들고 혼령을 불어 넣어 7일 만에 이루어마쳤다. (창세기 내용과 같다)
창조설화와 관련한 구약성서 창세기의 내용은 한민족의 경전을 표절한 것이다. 성서와 기독교는 중동문명(슈메르)의 영향을 받은 팔레스틴 산물이다. 즉,12환국->슈메르(우르)->이스라엘(아브라함) 신약성서 복음서의 예수계명은 한민족의 경천애인 사상이다. 예수는 흰옷을 입고 산속에서 도를 닦던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첫째, 하나님 사랑(경천)과 둘째, 이웃사랑(애인)=한민족 신앙사상
슈메르 초기 유적지인 아모르에서 발굴된 검은 머리의 편두형 유골은 이집트-인더스-그리스-히브리문명 등 서양문명의 뿌리인 슈메르인들이 동북 아시아에서 이주해온 한국인들임을 증명했다. 편두형은 바로 고대 동북아시아인들의 특징이다. 슈메르인들의 언어가 지금의 한국어와 발음과 구조가 같다.
또한 풍습(순장-씨름-60진법 등)이 같다는게 입증되었다.
미국인들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슈메르 유적지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이유일 것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고대 한국인들의 티우 왕조가 건설한 것이다. 스핑크스와 무궁화 여신의 얼굴은 전형적인 동북아시아 여성얼굴이다.
한반도->고대 12한국->슈메르(수밀이)->이스라엘
편두형은 북만주 송화강 지역에서 발굴된 유골들이 가장 오래되었다. 성경 창세기의 창조. 에덴. 노아. 바벨탑 설화의 원형은 이들 슈메르인들의 길가메쉬 서사시들에서 가져온 것이며, 구약성서의 잠언. 욥기. 시편 등도 모두 슈메인들의 문헌에서 가져와서 수정 편집한 책들입니다. 슈메르인들은 다신론과 일신론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개방적인 사람들이였다. 우리 한국민족의 우주관(세계관)인 다(많다)즉 일(하나), 일(하나)즉 다(많다)라는 [한]사상에서 나온 신앙관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현대 물리학에서 온 우주 속에 가득한 중성미자(일반빛보다 빠르고 충돌없이 시공을 초월한 빛)로 입증되고 있으니 우리 한국 민족(동방족)은 우주.철학.수학.물리학적 원리를 담고 있는 '천부경'이 입증하듯이 고대로 부터 우주를 인식했던, 가히 우주민족이라 할 것이다.
편두 :
남미 페루에서 발견된 인디언들의 편두 유골
동이지역에서는 일찍부터 편두 풍속이 있었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제2권에는 만주지방에는 옛날부터 편두하는 관습이 있어 어린아이 때부터 와구(臥具)를 통하여 머리통 모양을 인위적으로 편두형으로 만들었다고 적었다.
이러한 편두풍습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두뇌를 좋게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주로 지배계층의 풍습으로 알려져 있으며, 슈메르문명의 초기 유적지인 아모리유적지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편두 풍습은 고대 한민족의 풍습으로 북만주 송화강유역에서 발굴된 유골이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편두풍습은 북만주에서 기원한 흉노(훈) 등 북방 유목민들('흉노'의 기원은 단군의 신하였던 욕살 '색정'이 단군에게 문책당하여 귀양한 땅이 바로 흉노족의 땅인데, 이 색정이 바로 흉노족의 조상이라고 '한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단군이 귀양보내기 전에 색정을 감옥에 가둔 것으로 보아 색정은 상당히 호전적인 인물이였지 않나 생각한다)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전파되었으며, 당시 남북으로 양분되어 있던 북방 유목민들인 흉노족의 일파가 진시황의 탄압을 피하여 한반도로 이주하여 고조선 유민들의 나라인 가야와 신라에 유입된 흉노인들의 무덤에서도 발견된다.
따라서 이집트.그리스.인더스 등 서양문명의 근원이 되는 슈메르인들은 지구라트가 증명하듯이 고산 숭배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에서 기원한 동북 아시아 고대 한국인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하여 건설한 문명이다.
기원전3-4천년 전의 슈메르인들의 언어. 풍습. 체형. 봉황숭배. 10진법. 씨름석상 등 지금의 한국인들의 체형과 풍습이 거의 동일하여 우리 한민족과 핏줄이 동일함을 증명하고 있다.
첫댓글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