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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11일 월요일 맑음.
서당골권씨 대문회를 한 날.
금일은 모친 제사 파일. 대문회를 내가 태어나던 해부터 시작한 것을 동생 집에서 처음으로 했는데 날씨가 따뜻해서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섭섭한 점은 백태 12말 터수세 받은 것을 문회할 때 돈을 넣기 위해 백부에게 여쭈니까 팔아서 돈을 넣으라고 하여 상인을 불러서 두당 13000원씩 받고 팔아서 도목 할배께서도 참석하여 상인 아줌마가 준 돈 천원과 아버지가 낸 술까지 잡수고 아무 말하지 않고 가서 내 마음대로 팔았다고 집안에 말을 하니 속았다고 돈을 물어넣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백부께서 팔아가지고 돈을 넣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했는데 어찌할까 생각 끝에 돈을 물어넣겠다고 했다.
나중에 콩 값 얼마 속았다. 돈이 줄었다 듣기 싫어 모두가 욕심이 꽉꽉 차있다.
자기들 집에서 유태를 얼마 받고 팔았더니 속았다 하면서 내가 판 콩값을 장에서 최고 시세 만오천원 갔다고 만오천원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은 만오천원 간다 해도 만사천원만 계산해 들루라 하면 두말없이 입금한다고 했더니 만오천원 다 들루라 한다.
이유는 수수료 십만원을 떨어주니 그렇게 하라고 하여 떨어주는 돈은 떨어주는 돈이고 기분이 좀 상했으나 어쩔 수 없이 물어 넣기로 결심하고 틀림없이 찬조하라 하신 건데 찬조 할 때 내가 졸려서 한 생각으로 마음먹었으니 오만원 할 것 3만원 해버리면 그만이다.
마침 찬조 거둔 서류를 보인다.
구렁삼촌이 남이 권하니 5만원 적어 놨다.
돈이 얼마 잇나하니 3만원 내준다.
이것만 받아도 된다하고 더 이상 하지 말라하고 꿔 달라 하는 거 우리도 3만원만 주고 말았다.
기분이 좋았으면 삼촌 5만원 우리도 5만원 그대로 했을 텐데...
콩을 먼저 속고 팔았다고 다 채워 넣으라니 모두가 그렇게 속지 않고만 살고 큰 문중 차리고 산다면서 돈 몇 만원에 죽고 사는지 박무화씨 8두 값을 만 오천원씩 계산해 받았다고 돈 천원씩 내주기 싫어 내 한 테 그대로 넣으라니 10대조 이하 자손이 누가 뭐가되어 나중에 동장이나 조합장이나 면장 출마라도 한다면 그분들께 한 표 부탁할 때 터수세가 비싸다고 너무 많아 못한다고 낮추어 달라고 둘 집 태섭 아제 중규모 얘기하시더라니까 비싸면 다른데 이사가라하지 요즘 누가 터주는 사람 있나하며 얘기가 나온다. 오른 큰 밭 자리를 누가 터주랴만은 어차피 집을 짓고 옛날부터 살고 있었으니까 말이지.
더 이상 내가 알일 아니고 모두가 중생의 욕심이기 때문에 우선 손해 보기 싫고 음덕을 쌓기 싫어서 그러니 내가 어찌하랴.
그냥 하는 대로만 보다가 의견이 분분하여 한참 소란스럽다가 큰아버지가 명년에 십만원 수수료 떨어주면 한다하여 그대로 통과했다.
나가서 살고 있는 분들은 찬조나 좀 넉넉히 받아 보태기로 하고 돌려가며 하면 수수료가 없다 했는데 돌려가면서 하게 되면 서울 부산 모두다 해야 한다 하니 문회참석도 하지 않는 사람들께 시켜도 안 되니 산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하지 않기로 하고 누가 차리던지 십만원씩 주고 시키기로 결정되어 큰아버지께 맡겨서 문회가 순조롭게 되어 문서를 닦았다.
경오년 유사는 미나무 할배께서 맡아쓰며 돈이 백만원에서 조금 빠진다.
회전 제수장 보기 모두 빼고 벼는 우리가 샀다.
아지메네도 모두 할매네하고 와서 놀다 모두 저녁때 가신 후 어른들도 4시경 모두 가시고 태연 숙모님, 경주식당 아줌마, 우홍구 사형, 고광한씨 함께 오시어 차 한 잔씩 하고 도목 할배 종형 종숙 다시 들어와서 비밀스럽게 돈 이만원씩을 주면서 우리 함께 조합장 선거에 각자 힘써 달라고 하셨다.
어두워지자 모두 가시고 방안을 청소 한 후에 제수씨 석식을 차려 오시어 먹고 수수료 떨어준 이야기 하니 들어앉아 있으니 장시세를 알 수 있나 안 속고 팔아 내나 하신다.
기분이 얼마나 나쁜지 억지로 참았다. 백부도 있었고 물어 본 후 팔았다.
동생도 있었고 다른 사람도 만이천원도 받고 팔았다고 백부 얘기 하려는데 콩이 좋아 만3천원씩 받았다고 좋아했는데 그리고 저울로 대번 달았으니 그렇지 만약 말로 되고 그냥 팔지 않고 두었다면 8키로 모자라는 콩 6승을 물어 넣을 뻔했다.
이래저래 돈이자 하고 수수료 십만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대로 다 싸그려진 셈이다.
제수씨 수고했다고 2만 5천원 드리고 대구 동생내외 갈 때 만원 여비주고 저녁 반야경과 법성계를 읽고 오늘 하루를 감사히 보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문회를 책임 완수 한 후 장부정리도 해놓고 오늘은 10시반경 평소보다 좀 일찍 취침을 했다.
제수씨께서 수고가 많아 고맙고 감사하였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늘 어제 써둔 편지 5통을 우송했다.
12월 12일 화. 청천.
인천 족조님께 편지 한통을 썼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깐 아버지께서 주머니 돈 4만원이 없다하시며 내가 서울 고종 어른께 보내 주신 돈 십만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버지 돈으로 내가 주머니 뒤적여 그렇게 빼낼까봐 이상한 일이다.
누가 잠결에 들어왔다면 그렇게 모를리가 없는데 제수씨 들어왔다 갔냐고 물었더니 아니 들어왔다며 귀신이 곡할 일이란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일이로다.
조반을 한 후 아버지 박도계 어른 회갑에 놀러 가시고 제수씨 모래부터 장사 한다고 재료 사러 안동 가신 후 TV보다 누었더니 고광한씨 왔다.
이 사람이 어제 왔다 갔다.
손버릇이 나쁜 사람인데 오는게 반갑지 않다.
얘기하다니 상철이 엄마 김장 고추 찧으러 왔다가 우리 집에 들왔다.
신도회 기금을 돈 십만원 얻으면 자기 집에 보일라 놓고 벽지 발라서 대조사님 진영을 모시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런 것 하는데 이 돈을 갖다 하려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어떤 돈인데 자기 개인적으로 기도실 만드는데 쓰려하는지 참 가관이다.
집 앞에 나갔다 바람을 쐬이고 들어와서 곡차를 한잔하고 제수씨 3시 40분경에 오시어 점심 차려주는 것 먹었다.
인천 족조님께 편지 한 통을 쓴 후 석식이 끝나고 TV를 보면서 법성계와 반야심경을 필기하고 오늘은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
족조님께 편지를 쓰고 보니 내용이 맘에 안 들어 다시 쓰고 또 다시 쓰고 세 번 만에 그냥 쓴 대로 보내려고 넣어두었다.
겨울 날씨에도 날이 너무 포근하고 따뜻하여 좋았다.
부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늘 안동 MBC 취재기자 주진 선착장에 취재하러 왔다 갔다 하였다.
89년12월13일 수요일 흐림 비.
계영실씨께 편지 한통을...
날씨가 흐려서 비가 올 것 같아 제수씨 매주 다음날 쑤신다하여 그렇게 하라 한 후 아버지 장작을 끈어서 쪼개놓고 홀을 정리하였다.
모두 치우고 내일부터 장사를 하려고 모두 치우고 쓸어 낸 후 정리 하신 후 중식을 먹고 메주 달대를 만들어 놓으려고 갖다 놓고 동생이 하다가 나가고 오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편지를 쓰고 있다니 박경진 놀러 들와서 소주 한 잔하고 얘기 좀 나누다 갔다.
저녁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쓰다 석식을 한 후 제수씨 핫도그 튀길 것을 반죽하여 놓고 나가시고 오징어를 제사 때 쓴 것을 먹지 않고 두었다가 갖다 주면서 구워먹으라 하신다.
오늘 기분이 좋았다.
요즘 제수씨 잘 해주신다.
반야심경을 쓰고 법성계를 쓴 후 총무께 안부 편지를 쓰던 것 모두 써놓고 자정이 되었다.
주가를 보니 하락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12월14일 목요일 맑음.
용계 아자매 계갈이를 우리 집에서 했다.
금일은 장날이어서 날씨가 추워 장에 왔다가 모두 들어와서 계추도 하고 짬뽕을 시켜서 우리가 세 그릇을 먹었다.
계추문서를 내가 썼다.
처음으로 써보는 것이라 옳게 썼는지 모르겠다.
먼저 9일 장날 백태사간 아줌마께서 포대 4개를 갖다 주러 왔다.
아지매 콩을 어찌 남이 주는 값을 주지 않아 2만 4천원이나 물어 넣었으므로 다시는 아지매 하고 거래하지 않겠다고 하고 보내버리고 큰집 백모 왔다.
일찍 몸을 녹여서 가고 병일조모 용계 아지메 종형수 미나무 할배 종숙모 미산 아지매 윤옥엄마 숙모 오식이 엄마 이렇게 오셨다. 놀다 4시경에 갔다.
모이면 시목이네 이야기 참으로 문제다.
언제 남에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살아 갈수 있을는지...
오늘 이야기 내가 듣다가 바른 말을 하지 않으려다가 누구라도 뒤로 말하려면 아예 데리고 다니지 말고 함께 가자하여도 거절하는 것이 났다고 하고 어찌 친정도 혼자 다니면서 신단지에서 집을 못 찾아와서 소변보러 가는데 같이 따라 다녀나 하고 나무레더니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갔다.
문회이야기 하지 않으려다가 얘기가 나와 해 버렸다.
큰 문호 차리고 산다면서 그 정도 실수도 이해도 못하고 채워 넣긴 해도 마음은 어쨌거나 섭섭함을 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참으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을 쓰고 저녁이 끝나고 오늘 일을 일기 쓴 후 하루를 마무리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89년 12월15일 금요일 맑음.
메주를 쑨 날. 월곡농협 조합장 선거를 했다.
금일은 6시반경 기상을 했다가 다시 한 시간 더 누웠다가 일어나 조반을 한 후 제수씨 메주콩을 씻어가지고 쌍둥이네 집에 아버지하고 싣고 가서 안쳐주고 아버지 불을 넣어 삶아놓고 오시고 주진 종매제 들려 커피 제수씨 타주어 한잔씩하고 신동이 사형 결혼식을 내일 올리러 부산에 갔다 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있어서 안 되기 때문에 2만원 축의금을 전하고 곧 가고 무실 어른이 오셨다.
김실이 전화도 왔다.
서울 아줌마께 전화 드렸더니 내 편지를 받았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 했다.
또다시 답장을 드리기로 마음을 먹고 초안 적고 있다니 구룡 권영욱 족숙 노천족친 재종형님 미나무 할 배 들오셔서 점심을 시켜 놓고 있다니 연숙사형 박양동씨 신승학씨 오셔서 우동 시킨 것을 먼저 잡수게 한 후 삼촌과 아버지 나는 다시 해 오라하여 먹은 후 일차 가시고 종형 용개아제 하계아제 오시고 도목 할배는 오셨다 가시고 무승씨도 승록씨도 오셔서 담배치기도 하시고 먹뚜기도 하시고 저녁때 모두 가시고 방청소 하고 있다니 종숙께서도 늦게 오시어 제수씨께서 맥주 두병내고 종숙어른도 두병 내고 하여 잡수면서 집안의 문제들을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9시경 개표결과 권정대 조족께서 승리했다는 얘길 제수씨 맥주 사러 갔다 듣고 오시어 모두가 기분이 좋았다.
도목 할배께서 승리했다는 얘길 전해주로 오셨다 가시고 종숙께서도 9시 40분경 가신 후에 메주를 아버지 밟아서 메어 단 후 나는 반야경 법성계를 독송하고 이렇게 저렇게 오늘은 감사한 하루가 지나가고 대학 시험 날이며 청와대의 서는 일노 3김 총재 4당 영수 회담이 있었다.
5공화국 청산을 위하여 합의 청산을 위하여 오후 6시경부터 자정까지 6시간동안 연석 회담을 하여 좋은 결과 있었다는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사회, 경제, 민생 문제 등이 해결 된다는 국민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보니 이제는 구시대 모든 허물을 싹 씻어버리고 앞날의 모든 희망을 걸고 도약 창조를 해야 하리라 본다.
나무관자제 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89년12월 16일 토요 맑음.
편지 쓰고 전화 받고..
서울 김은정씨 어머니께 최화열께 편지 2통 씀.
금일은 조반이 끝나고 TV를 시청 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서울 김은정 母께 서신을 드리려고 초안을 잡았다.
성심상회 아줌마 맥주상자 가지러 오시는 길에 편지지와 봉투를 같다주시어 맥주병하고 바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가신 후 중식을 하고 아버지는 핫도그 꼬지를 다듬고 나는 쏘세지 한 백 개 정도 끼워주고 제수씨 안동 가서 재료 사오시어 계속 튀겨서 팔았다.
계속 할 수 있으면 하면 돈이 제법 모일 것 같다.
사로 오는 것을 다 주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나는 쓰던 편지를 계속 쓴 후 석식이 들어왔다.
연탄가스에 취하여 제수씨 골이 아푸다며 기름에 튀기는데 냄새와 어울려 나는 방에서 잠깐식 맡아도 골이 아플 정도로 싫은데 계속 들여다 보고 구우니 안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문밖에 내놓고 하려고 문밖에 콩 가마 벼 가마니를 치우고 있다니 경주 선례이모 전화 와서 바꿔주고 끊은 뒤 옥신이가 경주 향숙이네 집에 놀러왔다며 전화하여 선례이모 전화번호를 물었다.
제수씨 가르쳐 주고 내가 보낸 엽서 받아봤다고 했다.
시험이 있어 답 못했는데 내려가면 답한다고 했다.
저녁에는 최화열이 한테 안부편지를 쓰고 자정이 되어서 취침을 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관세음 보살님
89년12월17일 일요일 맑음.
김정희 최영자 누님께 편지를 씀.
오늘은 반야심경 법성계를 기록한 후 백부께서 오셔서 놀다 가신 후 중식을 하고 김정희와 최영자 누님께 안부 편지을 쓴 후 저녁때 강서방 아버지 놀러 오시라고 전화가 왔다.
옷을 입고 준비하였다가 백부께서 가실 생각이 없다하여 아버지도 안가시고 들어오셨다.
저녁 먹고 10시 반경 대구 박감사 한태서 안부 전화가 왔다.
친구와 한약방을 차렸다며 약전골목으로 집을 옮겼다고 하였다.
참으로 어려운 사회 속에서 자기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박감사를 높이 치하하오며 오늘은 낮잠도 두 번이나 잤다.
꿈속에 불상이 조각된 사찰을 보았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가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89년12월 18일 월요일 맑음.
지사장 하영종께 편지 씀
오늘은 지경원 사장님 진도 하영종군께 조반을 한 후 안부와 감사 편지를 쓴 후 큰집 형수가 왔다 가는 길에 넣으라고 6통을 한몫에 우송했다.
날씨가 따뜻하여 집 앞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책을 보았다.
벌써 금년 봄부터 치질이 생긴 것 같아 연고를 발랐더니 심하게 아프진 않았으나 찝찝하다.
요즘은 신경이 항문에 많이 간다.
앉아 있으니 무엇이 나잇는 느낌이 든다.
저녁까지 아버지 고추 뽑아서 말린 뒤 해골을 주웠으며 온수기 물을 떠내주어서 머리를 감고 외숙모 대구 있는 병철이 손을 다쳐서 치료 다닌다며 왔다 가시는 길에 안동 와서 전화를 하셨다.
안부를 문하니 병하도 다리 다쳐서 치료받으러 다닌다 하였다.
외가는 어찌 탈이 자주 난다.
병철이도 걱정하지 마란다.
약간씩 다쳤다며 오늘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석식을 한 후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치질을 확인한 후 치료을 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12월 19일 화요일.
외숙한테 수지침 한방 전자 침에 관한 편지 씀
금일 장날은 날씨가 좀 차가운데 아버지와 조반이 끝나고 나는 외숙께 년말이 되고 하여 편지를 쓴 후 효순 조부께서 장에 오시는 길에 찹쌀을 반 되 갖다 주신다.
먼저 장에 오시어 중식을 잡수시고 갔다고 하시며 고마웠다.
용개 아지매 숙모 삼촌 장에 왔다 맥주 사가지고 나도 한잔 얻어먹고 간 후 봉두완이 호춘 여성시대 소책이 오고 복지뉴스가 나와서 훑어보고 캔 월드 통상 전자침 대표와 수지침에 대하여 상담편지를 두통 쓴 후 오후 신문을 보고 중식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려 하다니 상철이 母께서 왔다.
잠깐 들려 얘기하고 놀다 가신 후 일지을 정리 한 후 반야심경을 기록하며 내일은 푸른 하늘을 청취하였다. TV를 시청하고 취침했다.
89년12월 20일 수요일 흐리고 비.
외사촌이 놀러왔다.
금일 경을 쓰고 선예가 휠췌어 밀고 기성이랑 함께 한약방까지 같다 왔다.
오다가 년하장을 5장사고 선례도 한 장 사주고 애들 사고 싶은 것 사라고 한 후 왔다.
편지3통을 선예가 갖다 넣고 우표 10장을 사가지고 왔다.
오후 중식이 끝나고 누어 책을 보다 잠이 와서 눈을 조금 붙이고 쏘세지를 꼬지에 모자랄까봐 한 20개 끼워놓고 밖에 나가 오뎅을 4개먹고 제수씨한테 아줌마요 오뎅 좀 파세요 하니 그냥 잡수라 한다.
애들이 리어카를 올라타고 시끄럽게 해서 아버지께 전주대에 붙여 세우라하고 나니
외사촌 병철이가 놀러왔다. 손을 다쳐 일을 못하고 놀고 있으므로 다니러 온 모양이다.
아우랑 저희들끼리 놀라고 나는 나가지 않았다.
일기는 이렇게 끝나고 TV를 보다가 취침.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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