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Madness"
그야말로 미친 3월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한일전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운하다고 느낄것 같습니다.
2회말 일본 사토자키의 우전 적시타때 2루주자가 홈에서 횡사한 것은
우익수 이진영의 호송구때문이라 치더라도
8회초 김민재의 파울플라이를 이치로가 잡지못하고 결국 볼넷으로 살려준 점,
이병규의 후속타에 3루로 대쉬하던 김민재가
완벽한 아웃타이밍에서 과감한 허슬플레이로 3루수의 공을 떨어뜨려 1사 2,3루
뒤이은 이종범의 2타점 적시타. 그리고,
9회말 2:1 투아웃 주자1루에서 마지막타자 다무라가 노려친 오승환의 초구가
홈런성 파울이 되며 경기는 돌이킬수 없게되었습니다.
일본으로선 안타깝겠지만 야구란 그런것...
이제 한국과 일본간 적어도 대표팀간의 경기에서는
실력의 우열보단 스타일의 차이만 남은듯한 느낌입니다.
1982년말 한국프로야구 원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다음시즌 재일교포투수 장명부의 영입을 발표합니다.
83년초 어느술집
삼미 허모사장:"박철순이가 작년 24승을 했는데 후쿠시상(후쿠시는 장명부의 2번째 일본이름)은
몇승이나 하겠소?"
KBO 이호헌사무총장:"아마 20승정도는..."
장명부:"20승은 기본이고 30승도 가능합니다."
허모사장:"아니 팀당 100게임인데 한선수가 30승을 할수있단 말이오? 정말 하면 내가 1억을 주리다."
장명부:"분명히 약속하셨죠?"
삼미 슈퍼스타즈의 허모사장은 한시즌 30승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해 보너스 1억을
농담처럼 약속합니다.
3월 시작된 시범게임에서 장명부는 전구단을 상대로 등판해
직구위주의 투구로 뭇매를 맞으며 각팀의 타자들을 분석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 건너오기전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온
삼성라이온즈구단에 배팅볼을 던져주겠다며 접근하여
장효조등 최강팀 삼성의 타력도 이미 파악해놓은 상태라는 겁니다.
83년 장명부는 시즌 종료 2게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해태전에 등판하여
한시즌 30승을 달성합니다.(60게임 출전)
그러나 1억의 지급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구단의 월급쟁이 사장이 술자리에서 한 약속을 그룹총수에게 품의를 올릴수가 없었던 것이죠.
장명부는 격노했습니다.
"한국야구가 아무리 너절하다해도 구단사장이 자기가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다니
이러니 한국야구가 일본에 무시당하는 것이다..."
1950년생인 장명부(일본명:마쓰하라 아키오)는 고교시절 촉망받는 투수였으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프로드래프트에 참가하지 못하고 낭인시절을 보내게됩니다.
그 다음해 소속고교팀을 고시엔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김일융(전 삼성라이온즈)도
같은 경우였으나 모든 프로구단이 현금을 싸들고 다니며 김일융을 스카웃하려는
물의를 빚자 한국인이라도 일본에서 교육받은 자에 한해 프로드래프트에
참가할수 있다는 규약변경을 하게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불운이 장명부의 편에
섰다고 여겨집니다.
절치부심 장명부는 6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구단에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이미 김일융(일본명:니우라 히사오)은 요미우리의 1군 선발로 뛰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내년 이승엽이 뛰게될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프로야구단은
요미우리 자이언츠팀과 그이외의 팀이 있을 뿐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최고의 인기구단입니다.)
요미우리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장명부는 난카이 호크스를 거쳐
히로시마 카프에 입단하여 일본시리즈 우승도 맛보게되나
그 기쁨도 잠시 다음해 부진하자 히로시마 카프에서는 방출을 하려합니다.
한해 15승도 거둔 적이 있는 팀의 에이스였던 선수를 슬럼프에서 벗어날
기회도 주지않는 구단에 대해 분노한 장명부는 82년 32세의 나이로 은퇴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오게됩니다.
84년 이후 이미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실망한 장명부는 프로선수로서의 절제력을 잃고
갖은 기행과 마약복용등의 물의로 91년 한국을 떠나 쓸쓸히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장애인 야구팀을 지도하기도 하는등 간간히 소식을 전하던 장명부는
그러나 자신이 운영하던 마작하우스에서 2005년 4월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돌연사로 추정된다는 보도와 함께 다음의 기사가 덧붙여져 있었다는군요.
그가 운명한 마작하우스의 벽에는 "一球入魂"이라는 글귀가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공 하나하나에 혼을 넣어 던진다는 말이겠죠...
한국에서는 '쪽바리'로 일본에서는 '죠센징'으로 멸시받던 그래서 나의 고향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현해탄이라고 말하던 희대의 풍운아 너구리 장명부는
그렇게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오늘 한일전을 보며 장명부가 생각나는 것은 정말 미친 3월 탓일까요?
첫댓글 장명부, 허전 씁쓸하네요...민총님 이왕에 <비교한일야구사>같은 책 한 권 내시죠. 그럼 밀리언셀러, 베스트셀러는 시간문제 같은데...ㅎㅎ
장명부는 파란만장한 삶을 볼 때,영화로 맹글어도 되겟다.역도산처럼.
혹시 유도선수 추성훈도 이리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부산시청에서 뛰던 재일교포 유도선수 추성훈은 탁월한 실력에도 불구 이른바 Y대 마피아라고 불리는 기득권세력에 의해 번번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편파적인 판정으로 패배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귀화합니다.(일본명:아키야마 요시히로)-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일본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고 지금은 K-1선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