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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짝퉁 거래, 단속에도 끄덕 없어’>...베이징 짝퉁 거래 현장을 가다
“이 핸드백 ‘A급’이에요. 여기 명품 ‘버버리’ 상표 보이죠?” 지난 5월 중순 기자가 다른 물건들도 보자고 하자, 그는 곧바로 ‘구찌’와 '루이뷔통' '프라다' 상표가 붙은 핸드백을 꺼냈다. 2평 정도에 달하는 그 가게에는 유럽 명품 상표가 붙은 가방과 핸드백, 지갑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옆의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명품 상표의 상품이 가득히 진열돼 있었다. ‘쉬우쉐이’ 시장 지하 1층에는 이러한 매장이 몇 개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수십 곳이나 들어서 있다. 매장들에는 가방과 지갑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왔다는 관광객들은 “시우쉐이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이 진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명품과 같은 가방을 싸게 살 수 있고 쇼핑하는 재미도 있어서 이곳에 들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파는 가방, 지갑들은 100% 모조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짝퉁’이다. 일반인들은 진품인 줄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다. 그렇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위조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원이 준 명품 상표가 붙은 지갑을 만져 보고 안을 살펴 봤다. 안쪽 바느질 선이 고르지 않았다. 로고도 조금 조잡하고 흐릿했다. 보풀도 미세하게 일어났다. 버버리 상표가 붙은 핸드백의 경우, 겉 부분과 지퍼고리 부분에 새겨진 말 모양이 흐릿하고 조악했다. 버버리 상표가 붙은 지갑도 가죽이 아닌 비닐 원단을 쓴 것 같아 보였다. ‘샤넬’ 상표가 붙은 짝퉁 핸드백과 지갑의 경우, 최고급을 뜻하는 ‘SA급’ 제품이라 해도 비닐 원단이 대부분이라고 이곳 사정에 밝은 사람이 설명했다. 시우쉐이 4층으로 올라가서 시계 매장으로 갔다. 30m가량 이어진 10여 개 가게에는 롤렉스, 카르티에, DKNY, 엠포리오 아르마니, 타테오시안, 피아제 등 해외 명품의 짝퉁 시계들이 즐비했다. 시계들은 구매자의 취향에 맞게 종류와 디자인이 다양했다. 이곳에도 외국인들이 비교적 많았다. 가족끼리 온 한국 관광객들도 몇 백 위안을 주고 시계 3개를 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자가 한 가게 앞에서 “다른 시계들은 더 없느냐”고 묻자, 가게 주인은 자그마한 트렁크 가방을 꺼내 열어 보여줬다. 가방 안에는 금색, 은색을 띠는 해외 명품 짝퉁 시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시우쉐이 시장’ 건물을 빠져 나오자 출입구에 내걸린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혁신과 발전을 촉진하자’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은 “이 플래카드가 걸린 지 한 달 반 정도 됐다”고 말했다. 건물 앞에는 외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와 자가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시우쉐이 시장’에서 차로 남쪽으로 20분 정도 가면 닿는 ‘홍치아오 시장’.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짝퉁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이름 난 곳이다. 지난 5월 중순 핸드백, 지갑 따위를 주로 파는 2층 매장으로 올라가 봤다. 이곳은 ‘시우쉐이 시장’ 보다 규모만 비교적 작을 뿐, 해외 명품의 짝퉁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가게 주인이 핸드백과 가방을 보여 주면서 판매에 열을 올렸다. 기자가 ‘SA급’ 핸드백을 볼 수 있냐고 묻자, 주인이 위아래로 잠시 훑어 봤다. 그러더니 그는 조심스럽게 “요즘 단속 때문에 SA급 제품은 매장에 가져다 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신에 카달로그를 꺼내 보여주며 “여기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르면, 가져다 주겠다”고 말했다.
베이징 시우쉐이 시장 건물. 입구에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혁신과 발전을 촉진하자'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베이징 시우쉐이 시장 지하 1층에 있는 핸드백, 지갑 매장. 한 가게 점원이 '버버리' 상표가 새겨진 숄더백을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 시우쉐이 시장 지하 1층의 가방, 핸드백, 지갑 매장
해외 명품 핸드백의 모조품
해외 명품 숄더백의 모조품
해외 명품 핸드백의 모조품
시우쉐이 시장 4층에 있는 시계 매장
시계를 고르는 외국인 관광객
베이징 시내 남쪽에 있는 홍치아오 시장
◆중국 ‘짝퉁’ 단속 불구 활개= 13억 중국 대륙에 ‘짝퉁’이 활개를 치고 있다. ‘짝퉁 천국’이라는 불명예 딱지가 붙을 정도다. 세계적인 명품은 물론 외국에서 잘 팔리거나 인기 있는 상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위조품으로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짝퉁은 생활 용품부터 식품, 액세서리, 소프트웨어, 전자제품까지 망라하고 있다. 오죽하면 외국기업은 물론 중국 내 기업들끼리 ‘짝퉁’ 피해로 소송을 벌일 정도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의 짝퉁에 대한 단속과 처벌 강화에도 불구하고 ‘짝퉁’ 판매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외국 정부와 기업들의 공세가 강해지자 중국 당국은 최근 지적재산권 보호 및 침해 처벌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4월 중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를 논의한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공안부·상무부·문화부·신식산업부·국가지식산권국 등은 불법 모조품 단속에 나섰다. 또 중국 정부는 전국 50개 도시에 지적재산권 침해 제보센터를 설치하고, 컴퓨터업체들이 정품 운영체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4월 초에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 미국, 유럽연합과 함께 상하이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와 침해행위에 공동 대처하는 것을 뼈대로 한 ‘상하이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법원도 모조품 처벌에 가세했다. 지난 4월 중순 베이징시 중급법원이 시우쉐이와 홍치아오시장에서 구찌, 루이뷔통, 버버리, 샤넬, 프라다 등의 모조품을 판 상인들에 대해 10만 위안(12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모조품 거래 현장 감시도 강화되고 있다. 베이징시 공상국은 4월 중순부터 매일 여러 명의 감시요원들을 시우쉐이 시장에 파견, 모조품 판매를 감시·통제하도록 하고 있다. 모조품을 발견하면 즉시 압수하고 벌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처럼 중국 당국이 단속과 처벌에 고삐를 죈 3월~5월 중 시장에서 짝퉁 거래 실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국의 조치가 시장에서 별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4월~5월 중 네 차례에 걸쳐 시우쉐이 시장과 홍치아오 시장을 둘러봤을 때, 모조품이 이전처럼 다름없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국의 손길이 쉽게 닿는 대형 유명 상가에서는 그나마 짝퉁 거래가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소형 매장과 도심 거리에서는 ‘짝퉁’ 단속을 아랑곳 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예 드러내놓고 짝퉁을 버젓이 팔고 있다. 시우쉐이 시장의 한 매장 주인은 “단속이 있을 것 같으면, 건물 관리자 측이 미리 알려준다”고 말했다. ‘SA’급 짝퉁 제품의 경우, 상가가 아닌 주변 아파트나 단속반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에서 비밀리에 판매 되고 있다고 했다. 당국과 상인들 간에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시내 대형 전자제품 상가들이 몰려 있는 중관촌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중관촌은 최근 짝퉁 단속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벌써 올해 초부터 공안 당국이 몇 차례 대형 상가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3월에는 공안 당국이 불시에 들이 닥쳐 소형 트럭 한 대 분량의 불법 복제 DVD를 압수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짝퉁 거래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5월 중순, 중관촌 내에서도 대형 전자제품 판매상가로 꼽히는 커마오뗸즈청. 5층으로 올라가니 PC 주변기기와 소모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청소원에게 “DVD를 어디 가면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코너의 한 가게로 안내해 줬다. 점원에게 “영화 DVD를 사고 싶다”고 말하니, 일단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점원은 “얼마 전에 공안들이 단속을 나와서 진열장이나 매장 내에 DVD는 놓지 않았다”고 설명하고는, “대신 보고 싶은 영화나 TV드라마를 얘기해 주면 이틀 정도 뒤 (복제해서) 주겠다”고 말했다. 이 가게에서 10m 떨어진 다른 한 가게에도 진열장은 비어 있었지만, DVD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게 점원 역시 “미리 주문하면 2~3일 뒤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면서 “물건이 귀해서 가격이 단속 전보다 조금은 올랐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커마오뗀즈청과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전자상가 건물 ‘하이롱빌딩’. 게임·주변기기 매장이 있는 6층의 한 가게에 들르자, 주인은 DVD 목록을 보여주면서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 DVD를 고르면 3일 정도 뒤 주겠다”고 말했다. 하이롱빌딩을 빠져 나오는데 한 중년 여성이 행인들에게 “DVD를 사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DVD를 한 번 보자”고 하자, 이 여성은 기자를 2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한 슈퍼마켓에 다다르자, 또 다른 중년 여성이 나타났다. 둘이 잠시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일행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주위를 살폈다. 그 여성은 “각종 DVD들이 있으니,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골목 안의 한 건물 뒤로 돌아 가더니, DVD 한 뭉치를 옷 속에 숨겨가지고 왔다. 반면 베이징시 중관촌에서 불과 1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다오커우 지역은 요즘 단속에 아랑곳 하지 않고 상점에서 불법 복제 DVD가 공개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신작 영화가 상영되는 즉시 불법 복제 DVD가 나와 진열대에 꽂히고 있다. 그래서 외국 유학생들이 많이 몰려 사는 이 지역은 짝퉁 단속의 ‘무풍지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우다오커우내 한 DVD 가게 점원에게 “요즘 단속이 심한 것 같던 데 괜찮느냐”고 묻자, “문제없다“고 대꾸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베이징 시내 거리와 육교, 관광지 등지에서도 영세상인들이 위조품 핸드백, 지갑 불법 복제 DVD를 팔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베이징뿐만이 아니다. 선양,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중국 내 다른 대도시에서도 ‘짝퉁’ 거래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의 단속과 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짝퉁’이 쉽게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 당국이 위조품 제조자 및 판매자에 대해 미약한 처벌을 내리고, 짝퉁 단속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당국이 모조품에 외국의 공세를 무마하기 위해 ‘제스처’를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들리고 있다. 또 “잠시 몸을 엎드리고 단속의 ‘칼 바람’만 피하면 된다”는 게 베이징에서 만나 본 대다수 짝퉁 판매 상인들의 생각이다. 즉 ‘시범 케이스’에만 걸려들지 않으면 된다는 것.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단속의 강도가 약해질 것으로 이들은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아울러 외국인을 포함한 구매자들도 짝퉁 거래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시우쉐이에서 만난 상인은 “모조품을 찾는 외국인들이 매일 같이 찾아 오는데, 우리 상인들한테만 모조품의 판매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더군다나 중국의 기업들 대부분이 아직까지 자체 기술 특허를 갖고 있지 못한 데다 상당수 산업 핵심기술을 외국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단기간에 지적재산권 침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시 중관촌에서 대형 전자상가가 있는 '하이롱빌딩' 입구
중관촌에 있는 커마오뗸즈청의 한 층 내부 모습. 안쪽 일부 매장에서 DVD를 불법 복제해 팔고 있다
중관촌 지역내 한 상점 근처. 이곳에서 불법 복제 DVD가 비밀리에 거래된다
베이징 시내 거리에서 판매되는 불법 복제 DVD
베이징 시내 한 육교 위에서 불법 복제 DVD를 팔고 있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