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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시간(주식&경제동향) 스크랩 감동&교양 스티브 잡스에게 유전자와 환경 중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까?
5/공석환 추천 0 조회 99 11.10.10 02: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스티브 잡스가 미국 현지 날자로 2011년 10월 5일 만 56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전세계에서 그에 대한 추모의 글 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가 IT산업과 현대인들의 생활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일생에 대한 관심이 조명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일부에서는 그를 에디슨과 같은 위대한 발명가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를 발명가라기 보다는 혁신가로서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가 IT산업의 기술동향과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지만 그는 IT 하드웨어를 직접 설계하거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발명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기술이나 MP3기술, 인터넷 연결 휴대폰 기술을 응용한 개량의 천재적인 혁신가였다.

 

그가 태어나자 마자 입양되어 양부모 슬하에서 자랐다는  사생활이 다시 조명되면서 그의 생부가 시리아에서 태어난 아랍인이라는 것과 그가 생부와 일생 한번도 만나지 아니하고 죽음을 맞이 하였다는 사실이 이색적으로 받아들여 진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스티브 잡스와 그의 생부 "압둘 파타 죤 잔달리(Abdul Fattah John Jandali)"는 용모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스티브 잡스는 생부를 한번도 만나지 아니하였을까? 그와 그의 생부는 용모외에 다른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글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

 

압둘 잔달리는 1931년 시리아에서 태어났다. 압둘 잔달리의 아버지는 정식 교육은 받지 아니하였지만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된 사람으로서  자식들에게 최선의 교육 기회를 만들어 주기를 원하였다. 알둘 잔달리는 18세에 베이투트에 있는 유명한 대학인 "아메리칸 대학(American University)"을 다니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아랍 민족주의 운동을 하던 죠지 하바스 등의 인물과 어울려 같이 아랍 민족주의에 관한 잡지도 편찬하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다마스커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시리아에 이미 변호사가 많다고 반대를 하였다. 그리하여  UN에 파견되어 있는 외교관인 친척의 도움을 받아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 공부를 한 후 위스컨신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법철학과 정치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압둘 잔달리는 위스컨신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스티브 잡스의 생모인 "죠안 캐롤 쉬블(Joanne Carole Sciebele)"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죠안은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계로서 독실한 기독교인인 쉬블의 아버지가 완고하여 아랍인이고 회교를 믿는 잔달리와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다.

 

좌절한 죠안 쉬블은 자기 아버지나 압둘 잔달리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좀 더 개방적인 샌프란시스코로 혼자 여행을 가서 1955년  아들을 낳고 입양을 부탁한다. 처음에 변호사 가정에서 입양할 예정이었으나 그 집안에서 여자 아기를 원하여 좌절된다. 그래서  결혼 후 10년간 아기를 갖지 못하여 입양을 원하던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된다.

 

잡스 부부가 대학을 나오지 아니한 것을 발견한 쉬블은 향후 아들을 대학교육을 시킨다는 서약을 받고 입양시킨다. 폴 잡스는 해군 제대 후 레이저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계공으로 일하고 있었고 클라라 잡스는 회계 관련 일을 하였다. 클라라 잡스는 윈래 소련과 이란의 접경에 있는 아르메니아 출신이었다.

 

그런데 죠안 쉬블이 아들을 입양시킨 후 얼마 안되어서 쉬블의 완고한 아버지가 사망을 하여 쉬블과 잔달리는 결혼을 하고 스티브 잡스의 생물학적 여동생인 모나 잔달리를 1957년 낳게 된다.  만약 쉬블의 아버지가 조금만 일찍 사망하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가 아닌 친부모 슬하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압둘 잔달리는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의 국가인 시리아에서 정치척 활동을 할 꿈을 가지고 모국으로 돌아 간다.  그러나 시리아로 가서 생활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 죠안 쉬블은 1962년 압둘 잔달리와 이혼을 한다.  그리고 죠안 쉬블이 심슨이라는 남자와 재혼하면서 딸의 이름을 "모나 심슨"으로 개명을 한다. 

 

알둘 잔달리가 당시 아랍 연맹에 속한 시리아에 가서 정치활동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집트인들이 득세하는 가운데에 그러한 기회를 잡지 못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 오게 된다. 그 후 미국에서 미시간대 조교수를 거쳐 네바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교수를 하다가 나중에 네바다주에서 음식과 카지노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알둘 잔달리는 그 이후 두번 더 재혼을 하였으나 재혼에서 더 아이를 가지지는 아니하였다.

 

스티브 잡스에 입양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압둘 잔달리는 죠안 쉬블과 이혼 후 자신의 친 아들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스티브 잡스가 유명하여 진 이후에 그가 그의 친 자식임을 알게 되었다.

 

알둘 잔달리는 스티브 잡스에게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밝히지 아니하고 평범한 안부 이메일을 몇 번 보내었으나 답장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암 증세가 나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언론의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의 친아들과 커피 한잔을 마셨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그러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스티브 잡스가 임종한 것이다.

 

 

 

Simpson_01.jpg 

(c) 1987 Thomas Victor. Courtesy Knopf.

 

 

 스티브 잡스의 생물학적 여동생인 "모나 심슨"의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 그녀는 버클리에서 영문학 학사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모험심 많은 모녀와의 갈등을 다룬 "Anywhere But Here"라는 그녀의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1999년 수잔 새런든이 주연을 맡아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아래 링크로  그 영화의 예고편을 볼 수 있다. http://www.imdb.com/title/tt0149691/

 

모나 심슨은 위 소설을 자신의 생모와 자신의 생물학적 오빠인 스티브 잡스에게 헌정한다고 발표하였고, 1988년  스티브 잡스와 모나 심슨은 직접 만나게 된 후 서로가 남매로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위 사진을 보면 그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모나 심슨을 만나고 나서 생부모 가족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고 생모인 죠안 심슨도 수차례 만났으나 생부인 압둘 잔달리는 평생 만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모나 심슨은 압둘라 잔달리와 연락을 계속 하여 성인이 된 후 생부의 도움으로 시리아에 다녀 온 적도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시리아 혈통을 생각하고 이름을 원래대로 "모나 잔달리"로 바꾸는 것까지도 고려하였다고 한다.(http://bombsite.com/issues/20/articles/947 잡지 인터뷰 참조) 다만 "모나"라는 이름 자체도 아랍에서 흔한 여자 이름이라고 한다.

 

 

File:Homer Simpson 2006.png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Homer_Simpson_2006.png

 

심슨은 그 후에도 여러 편의 소설을 더 쓰고 현재 UCLA 영문과 교수로 있다. 그녀는 1993년 TV작가 이면서 프로듀서인 "리차드 아펠"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나 나중에 이혼을 하였다. 아펠은 위 사진에 나오는 유명한 TV 시리즈인 "심슨 가족"을 제작하였다. 그런데 그 주인공인 호머 심슨의 어머니 이름을 자기 처 이름인 '모나 심슨"으로 하였다.

 

이제 스티브 잡스, 모나 심슨, 압둘 잔달리 3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보면 스티브 잡스는 생부인 압둘라 잔달리의 존재를 모나 심슨으로부터 들었으면서도 전혀 만나려 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압둘라 잔달리의 경우도 올해 언론을 통한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친자식을 만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양부모에 대한 존중 및 시리아 사람의 자존심으로 돌리고 있다. 입양되지 아니한 딸인 모나 심슨과 계속 연락을 취한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모나 심슨을 만나서 가족관계를 듣고나서 생모인 죠안 심슨은 만났으나 왜 생부인 압둘라 잔달리는 만나지 아니한 것일가? 참고로 잡스가 살던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와 잔달리가 살던 네바다 리노는 약4시간 정도 운전하면 도달할 수 있는 미국 기준에서는 그리 멀지 아니한 거리이다.

 

첫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양아버지인 "폴 잡스"에 대하여 아버지로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는 하였다. 즉 대학교육은 받지 못하였어도 스티브 잡스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악동 노릇을 하여도 참고 아들에게 전자키트를 만드는 기초를 가르쳐 주어 그가 향후 IT산업에 뛰어 들 동기를 마련하여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양부에 대한 존경심으로 생부를 만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미국에서는 아직도 아랍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많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가 시리아 출신인 아버지와의 만남으로서 그 사실을 강조하기 싫어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자기 생전에 자신에 대한 비공식 전기 발간에 대해 항의를 한 적이 있은 점을 참고할 수 있다.

 

세째 생부가 자신을 포기하였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생모에 대해서도 같은 감정이 있었을 수 있는데 생모는 여러 차례 다시 만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스티브 ?스가 성공한 것에 유전자와 환경 즉 생부, 생모와 양부모 중 어는 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려 한다.

 

스티브 잡스가 오레곤 주의 리드칼리지를 반학기만 다니고 중퇴를 한 것에 대해 그가 지적으로 능력이 없었다고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초등학교 시절에 비록 말썽은 많이 부렸지만 학업 수행능력이 특출하여 학교 선생님들이 월반을 권하였으나 양부모가 거절하였다고 한다.

 

실제 그와 접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순발력과 독서를 통한 지식 그리고 외부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그를 천재로서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천재성은 생부나 생모에서 얻어진 것일가? 아니면 양부모가 키워 준 것인가?

 

현대 생물학에서는 병에 관한 가능성 즉 암이나 고혈압과 같은 병에 걸릴 가능성 그리고 지능, 신체조건 습관 등의 중요한 요소를 90% 이상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일란생 쌍둥이가 분리되어 다른 환경에서 자란 후에도 지능, 용모, 습관 심지어는 직업 및 배우자 선택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미친다고 본다.

 

스티브 잡스의 생물학적인 여동생인 모나 심슨도 여러 베스트 셀러를 출간하는 과정에서 지적, 감성적인 능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남매가 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도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생모인 죠안 심슨에 대해서는 언어 치료사를 하였다는 것 이외에 크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지적으로 떨어지는 사람으로서는 여겨지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의 생부인 압둘 잔달리의 경우 시리아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그 이후에도 교수나 사업가로서 성공한 것을 보면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더 유의할 점은 압둘 잔달리가 이미 만 80세가 된 나이에도 은퇴를 거부하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한 후 아침 7시에 카지노로 출근하여 부사장 역할을 수행하는 "일벌레"라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예리한 것과 겸하여 주위 사람들을 볶는 보스로서 자신도 엄청나게 노력하는 일벌레였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특이한 성향이 평범한 인생을 보낸 그의 양부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의 생부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다만 스티브 잡스가 생부, 생모하에 자랐을 경우 시리아 계통의 차별을 받는 것과 동시에 권위의식이 강한 아버지로부터 오히려 압박을 받아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반항아가 아닌 평범한 모범생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정치학 교수인  생부하에서는 어려서 전자 관련한 키트를 접하여 볼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전자산업이 활발한 실리콘 밸리에서 살은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스티브 잡스가 평범하나 관용적이고  전자제품에 관한 호기심을 주는 가정에 입양된 것이 그의 잠재적인 능력을 키위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의 선천적인 지적능력 및 공격적인 일벌레 성격은  평범한 양부모 보다는 생부에서 온 것이 아닐가하고 생각한다.

 

교육에서 유전자 등에 기인한 선천적인 적성과 후천적인 환경의 기여 부분에 대한 부분은 아직 논란이 많다. 최근 각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한 후 그에 맞추어 약 진단을 하거나 예방 조치를 취하는 "맞춤 의학(Personalized Medicine)"에 의학계가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암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가 있을 경우 조기진단으로 미리 예방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미리 받았으면 스티브 잡스가 더 오래 살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어 취직, 보험 가입 그리고 결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에 장애 요소가 많거나 알콜 중독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경우 회사에서 고용을 꺼릴 것이다. 그리고 암, 고혈압 등의 장애 요소가 많을 경우 건강 보험은 물론 결혼에도 지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판 우생학적 선택의 오용 가능성이 문제된다.

 

 

정리하면 스티브 잡스가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는 아니더라도 IT분야의 혁신적인 개량을  주도한 뛰어난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의 지적 능력과  정서적 감수성 및 강한 의지력 등은  평범한 생활을 한 양부모보다는 생부, 생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개방적 사고와 전자제품에 대한 관심은 그의 양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만약 그의  입양이 없었다면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는 생겨 나지  아니하였을 수도 있었다고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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