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신씨 (平山 申氏) 시조(始祖) : 신숭겸(申崇謙)
곡성목사동면구룡리탄생지
시조 신숭겸(崇謙)의 원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이며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장으로 있다가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복지겸(卜智謙), 배현경(裵玄慶), 홍유(洪儒) 등과 함께 궁예를 추출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왕창근, 송합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한 개국원훈대장군으로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하루는 왕건이 장군들과 평주(평산)에 사냥을 나가는 도중에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서 맞힐 수 있는가?" 하고 물으니 신숭겸이 자신이 맞추겠다고 하며 "몇 번째 기러기를 맞출까요?" 하며 물어보자 세 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라고 하자 날아가는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날개를 맞추어서 떨어뜨렸다. 태조가 탄복하고 근처 땅 300결을 하사하고 함께 본관을 평산으로 삼게 했다.
927년(태조 10) 대구 공산동 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어 전세가 위급하자 태조와 용모가 비슷한 그는 태조를 피신케 하고 대신 어차를 타고 출전하여 전사 하였다. 그래서 태조는 그의 유해를 춘천에 예를 올려 장사지내고 공신으로 추봉하고 시호를 장절이라고 했다. 1120년(고려 예종 15) 예종이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여 '도이장가'를 지었다.
분파(分派), 계파(系派) - 인구 구성비
·사간공파(思簡公派 : 浩) - 30%
·문희공파(文僖公派 : ) - 30%
·제정공파(齊靖公派 : 孝昌) - 25%
·정언공파(正言公派 : 曉)
·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 : 夏)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신흠(欽)
신립(砬)
신개(槩) : 문희공,
신익희(翼熙)
집성촌(集姓村)
경남 밀양군 무안면 중산리
강원도 이천군 방우면 가여주리
전북 완도군 소안면 미라리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황해 평산(平山)
평산(平山)은 황해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평주(平州)의 다른 이름이다. 고구려 때에는 대곡군(大谷郡) 또는 다지실(多知悉)이라 하였으며, 747년(신라 경덕왕 6) 대곡성을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엔 영풍군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783년(선덕여왕 4)에는 진(鎭)을 두고 한주(漢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명칭을 평주로 바꾸었고, 성종 때 방어사(防禦使), 현종 때는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1272년(원종 13)엔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白川)에 잠시 예속되었다가 충렬왕 때 다시 복구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으로 바꾸고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평산군으로 개편하였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서부의 일부를 연백군에 이속시켰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산 신씨는
1985년에는 총 110,558가구 460,238명,
2000년에는 총 154,612가구 496,87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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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도>
항렬은 계대(系代)와 윤서(倫序)를 나타내는 종규(宗規)이니 반드시 준수(遵守)할 것이며, 작명시(作名時) 선조(先祖)의 휘자(諱字)를 범(犯)치 말 것이다.
평산신씨의 항렬자는 31세 이전에는 파별로 따로 쓰였으나 32세 부터는 같이 쓰기로 하였다.
홀수 세대는 이름의 첫 자를, 짝수 세대는 이름의 마지막 자를 항렬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