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희한한 漢字들, 앞으론 사람 이름으로 쓸 수 있답니다
김닐손·이에피톤·박줄리아…
외국식 이름을 漢字로도 표기 가능해
다문화 시대 수요 늘어… 작명가도 환영
KTDS에서 근무하는 나폴레온(28)씨. 1986년 금성나씨(錦城羅氏) 가문의 장손을 얻은 기쁨에 아버지는 큰 인물이 되라는 바람을 담아 아기 이름을 '나폴레옹'으로 지었다. 구청에 출생신고서를 내밀자 "'옹'은 어르신 옹(翁)자와 같은 음이라 아이 이름으로는 부적합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온'으로 하지요." 나씨는 "나폴레온으로 살아오면서 좋은 점이 많아 딸 이름도 '나이팅게일' 같은 것으로 지으려는데 뜻이 좋은 글자가 있으면 한자로도 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폴레온씨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대법원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인명용 한자 규칙개정안을 보면 가능할 것 같다. 대법원은 기존 5761자에 새 한자 2381자를 포함한 규칙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벨 괵(馘), 출출할 녁(惄), 친할 닐(昵), 구름 낄 에(曀), 느릿할 톤(噋), 성 퉁(佟) 같은 희한한 한자가 이번에 처음 인명용 한자 목록에 올랐다. 김닐손(金昵孫), 이에피톤(李曀披噋) 같은 외국식 이름을 한자로도 지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줄리아의 '줄'은 기존에는 풀 처음 나는 모양 줄(茁) 하나였지만 이번 개정안엔 줄 줄(注乙)이 포함됐다. 힐러리의 '힐'은 물을 힐(詰) 하나뿐이었다. 힐난(詰難)하다 등 부정적 단어의 어감이 커 이름으로 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개정안엔 옷자락 꽂을 힐(襭) 등 한자 5개가 추가됐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여진족 의형제 성 퉁(佟)자도 이번에 포함됐다.
인명용 한자는 1990년 호적법 개정 때 신설됐다.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를 이름에 쓰면 행정 착오가 자주 일어나고 개인 역시 불편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산화 초기 시절 입력할 수 있었던 한자가 적었던 탓도 있었다. 인명용 한자가 아닌 한자로 된 이름을 고집하면 한글로만 등록할 수밖에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이 한자도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졌다. 처음엔 2731자였던 인명용 한자는 8차례 규칙 개정으로 5761자까지 늘었다가 이번 9번째 개정을 맞아 최대 규모(8142자)로 확대됐다.
이현복 대법원 홍보심의관은 "특이한 발음, 이색적인 뜻을 담은 한자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이 계속 늘어 인명용 한자를 대폭 늘렸다"며 "과거와 달리 전산 환경이 좋아지고 다문화 시대를 맞아 외국식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고 싶은 수요도 높아지는 만큼 인명용 한자 확대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명가들도 이번 인명용 한자 개정안을 환영하고 있다. 요즘 신세대 부모는 영어 발음이 편하고 한자 뜻도 좋은 '하이브리드 작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집안 어른들이 벽자(僻字·희귀 글자)로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었다. 1980~1990년대엔 '새롬' '하나' '샛별' 같은 순우리말 이름이 유행했다가 요즘엔 '민준' '서연' 같은 세련되고 발음이 편한 이름의 인기가 높다.
김기승 한국작명가협회 이사장은 "다문화 시대로 이행하면서 다양한 발음과 뜻을 가진 한자가 필요해지는 상황이다. 쓸 수 있는 한자가 많아진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인명용 한자에 아직도 죽을 사(死), 간사할 간(姦) 같은 글자가 포함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