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팀
거룩함을 추구할 권리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와 “Blue Lives Matter(경찰 생명도 소중하다)”가 슬로건으로 자리 잡기 수년 전,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피터슨은 “OPM: Other People Matter(다른 사람들도 중요하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수천 년 앞서,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한 신성한 변화의 청사진인 토라가 주어졌습니다. “힘이 곧 정의”인, 경계도 제약도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보다 더 나은 존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법전을 바탕으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니었습니다.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도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있었으며, 고고학자들은 그보다 더 오래된 법전의 흔적까지 발견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사회를 계층화했으며, 권리와 처벌은 자신의 신분과 피해를 입힌 상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규칙은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다르게 적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법전에는 “하층 계급”을 위한 별도의 법과 기준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계층에게조차 법으로 명문화된 권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꽤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토라의 정의는 어떻게 다른가요? 사회를 보호하는 법전과 인류를 고양시키는 법전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현상을 유지하는 체제와, 사람들이 자신의 저급한 본능을 극복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이끌어 통합과 고양을 이루는 체제 사이의 차이입니다.
옳음과 행복 사이의 선택
결혼 생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옳거나, 행복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저는 이 말이 모든 관계, 어쩌면 인생 자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세상과 타인을 주시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손해 본 기분을 느낍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받는 것 사이의 간극에서 우리는 분노뿐 아니라 열등감까지 느낍니다.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족함은 육체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영역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존중, 충성,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배신감을 느끼고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힙니다.
제가 아는 한 남자가 딸과 싸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고, 진심으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꼈습니다. 딸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냐고 물었더니, 딸이 잘못했으니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딸 역시 아버지와 같은 감정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딸 역시 아버지에게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20년 넘게 소원한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아버지는 80대입니다. 두 사람 모두 관계보다 정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원래라면 절대 깨지지 않아야 할 소중한 관계를 스스로 내팽개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복잡성의 아름다움
쇼프팀(שֹׁפְטִים, Shoftim)의 첫 문단에는 “공의(Justice), 공의를 좇을지니…”라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토라는 시적일 수는 있지만, 시는 아닙니다. 불필요한 단어는 단 하나도 없으며, 본문은 문장을 꾸미기 위해 두음법이나 그 밖의 문학적 기법에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정의(Justice)”는 하나의 단어가 아닙니다. 정의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뜻하는 히브리어 ‘쩨데크(צֶדֶק, Tzedek)’는 “의로움(righteousness)”과 “자비(mercy)”라는 두 가지 특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법은 우리의 안전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며, 갈등을 해결하고, 우리를 사회로 묶어줍니다. 그러나 의로움과 자비라는 토대가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거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번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타심(altruism)이 수반되는데, 이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잘 알려진 열정을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강조하심으로써, 우리가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려는 성향을 극복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언약 대 계약
이 시점에서 유대 민족은 요르단 강을 건너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모두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사회 계약’의 토대가 되는 사회를 구축하고 법 체계를 시행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예측 가능한 행동과 규범을 보장하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시장 경제나 국가의 권력에 의해 주도되었던 그 어떤 과거 사회와도 달리, 유대 민족은 집단적 책임을 기반으로 한 ‘언약 공동체’로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문화적 기후 변화”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조나단 삭스 랍비는 이를 ‘공유된 가치의 사회’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시장이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거나 국가가 강제로 친절하게 대하도록 하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삭스 랍비는 언약적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것은 사회 계약뿐이며, 이는 우리를 비인간화시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서비스를 외주화할 때, 국가는 커지는 반면 우리 공동체와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작아집니다.
유대인들은 ‘언약의 백성’으로 불리는데, 이는 하나님과 유대 민족 사이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집단적 언약 의식을 바탕으로 한 정의롭고 자비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경건하다고 생각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거룩함은 행복이다
독립선언문은 개인에게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반면 토라는 정의, 또 정의를 추구하는 거룩한 민족을 그립니다. 법이 흑백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반면, 정의는 지혜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정의—진정한 정의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 즉 거룩함을 필요로 합니다.
토라의 법 체계에는 “법의 문자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넘어서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의 권리 영역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식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면 여러분도 훨씬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By Hanna Perlberger (an author, attorney, spiritual teacher and coach)
Art by Sefira Light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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