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不孝)세상?...한(恨)많은 모정(母情)의세월, (어느 유품(遺品)정리사의 기록)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아들 셋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다. 아니, 그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삼형제의 이야기다. 아들 셋 다 장성해 큰아들은 외국에 나가 자리를 잡았고, 셋째 아들에게선 손주들도 봤다. 장가까지 보냈지만 곧 이혼해 혼자가 된 둘째가 좀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노쇠해진 어머니는 둘째와 함께 살기로 했다. 갖고 있던 집 한 채를 처분하고 몇천만원쯤 되는 예금까지 합쳐 둘째에게 미리 상속해 줬다. 외국에 나간 형님과 가족이 있는 막내 대신 둘째가 어머니를 부양하기로 하면서 생긴 일이다.
내가 알아낼 수 있었던 이야기는 이 정도뿐이었다. 그들이 자라오면서 겪은 일이나 사연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특수청소 의뢰를 해온 건 삼형제 중 막내였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돌아가셨고, 그 집에 혼자 살던 둘째 형이 고독사한 것이다. “어머니 장례식 때 큰형이랑 제게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한푼도 내놓지 않는다고 어찌나 사람 피를 말리던지.” 현장에서 만난 막내 동생의 눈빛은 싸늘했다. 고인에 대한 애도나 죄책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치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됐다는 식의 말투와 행동이었다.
몇 주는 방치됐던 현장인 듯 시신의 부패물이 가득했다. 어느 집이나 바닥이 고르지 않고 경사가 지게 마련이다. 부패물은 고인이 숨진 거실을 지나 안방까지 흘러들어가 동그랗게 고여 있는 상태였다. 바닥을 모두 뜯어내 세척해야 했지만, 고인의 동생은 큰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은 꺼렸다. 의뢰인이 거절하면 난들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제시한 비용에 맞춰 최대한 해줄 수 있는 부분까지만 할 뿐이다.
유품을 정리하는데 고인이 써놓은 일기장 같은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를 혼자 모시고 사는데 내게만 모든 것을 맡겨놓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어머니 병원 비용도 줄곧 혼자 부담했는데, 장례식 비용까지 전부 떠맡았다." 고인이 남긴 글엔 큰형과 동생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앞서 얼핏 들은 이 가족의 사연, 홀어머니와 세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야 좀 짜맞춰졌다.
어머니의 재산은 모두 둘째였던 고인에게 상속됐다. 고인은 따로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던 것 같다. 상속받은 재산만으로 근근이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왔던 모양이다. 노모는 갈수록 병치레가 많아지고, 수중에 남은 돈으로 병원비를 대고 나면 생활비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손에 쥔 돈이 빠듯하니 다른 형제들에게 손을 벌렸을 것이고, 형과 동생은 상속받은 것이 한푼도 없으니 어머니는 알아서 모시라고 매몰차게 대했을 게다. 남의 집안, 누구 말이 맞는지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든 걸 차치하고, 어쨌든 삼형제를 홀로 키워내신 어머니 아닌가. 아들 셋을 성인이 될 때까지 여자 혼자 몸으로 키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 아이가 한 명만 있어도 모든 생활은 아이 위주로 돌아가게 된다. 툭하면 감기에 걸리는 아기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출퇴근 시간과 아이 보육 시간이 맞아야 하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입히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어느 하나 어른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옛날이라고 뭐 쉬웠겠나. 옛말이야 애들 혼자 큰다고들 하지만, 그때라고 정말 아이 내버려두고 키운 부모가 어디 있었겠나. 그런 아이를 셋이나 홀로 키워내신 분이 바로 그들의 어머니였다. 자식들이 상속 문제로 이해득실을 계산할 일인가 싶었다.
고인의 동생이 중얼거리듯 말한 것이 떠올랐다. “어머니 집이고 재산을 둘째 형이 다 받았는데 무슨 염치로 도와달라고 합니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마지막까지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원.” ‘전생의 죄’라니…글쎄. 물론 그도 힘들다. 그도 어렵게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가장이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꾸려왔던 가장의 길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생의 죄? 그들의 어머니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고인과 나머지 두 형제의 골은 더 깊어졌다. 서로 남처럼 살았고 왕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인은 고독사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현장은 30평 가까이 되는 평수였다. 오래 묵혀둔 짐들이 꽤 많았고 고독사 방치 기간도 길었다. 이럴 경우 유품 정리 비용은 수백만원에 달한다. 의뢰인인 동생은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절충을 했다. 청소 비용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되돌아가기엔 집 내부의 심각한 상태를 이미 봐버렸다. 굉장히 심했다. 내가 해야만 했다. 이러저러 비용 절충을 끝내고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고인의 통장 하나가 나왔다. 부패물로 인해 너무 많이 젖어 있었다. 확실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최근 날짜로 2700만원 정도의 잔액이 찍혀 있었다. 고인의 동생에게 알려주니 순간 눈빛이 반짝였다. 물론 내 착각이나 오해일 수도 있겠다.
“제가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부패물이 너무 많이 묻어서…2700인지, 7200인지 모르겠어요.” “통장 잔액 확인이나, 출금을 어떻게 하죠?” “네? 그걸 왜 저한테… 고인의 상속자가 되면 할 수 있겠죠.” 통장은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훼손됐고, 도장을 찍었는지 사인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내내 형의 죽음에 시큰둥하다 돈 이야기가 나온 순간 관심을 보인 동생의 모습을 보고 나니, 그 집의 전세보증금에도 생각이 미쳤다. 지역 시세를 보자면 적어도 5000만원 이상은 될 듯했다. 하지만 현장을 수습하고 사고 이전으로 복구해 놓아야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삼형제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들이 이렇게까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는지는 알 듯 모를 듯하다.
그냥, 삼형제의 어머니가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얼마나 원통해할지는 알 듯했다. 다툼은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만 해야 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내 괴로움을 들어줄 귀도 없다. 쌓아뒀던 원망은 고인과 함께 보내고, 그 순간만큼은 함께 뒹굴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릴 수는 없었을까. 죽은 사람을 향한 원망은 아무리 크게 질러봐도 다시 메아리로 되돌아와 자신의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힐 뿐이다. 어머니의 인생도, 형제의 인생도 끝이 났다.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보고 싶어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땐 이날을 얼마나 후회할 지, 그날의 그들만이 알 것이다. 홀어머니가 키운 삼형제의 남보다 못한 사이. 진짜 끝이었다. (출처, 중앙일보. 에디터 김새별 유품정리사)
에라이~ 몹쓸놈의 세상. 효(孝)는 사라지고, 군사부(君師父)일체(一切)는 실종되어 꿈 많던 새내기 스승은 극단 선택을 하고.... 어쩌다 이런 세상 되었는가? 제발 일부 정치가(政治家)이놈들아! 하늘이 무섭고 땅이 두렵지 아니한가? 읽기조차 싫은글, 소개 아니할 수 없다. 나무관세음보살! (설악산곰의 분노)
건봉사 불이문과 홍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