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사회성 키우기 먼 길… 장애학생 통합교육 17%뿐
특수교육 현주소 들여다보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주인공은 비장애인보다 학업과 업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학교와 직장에서 차별의 대상이 된다. ENA 제공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4회엔 주인공의 학창 시절이 짧게 그려진다. 우영우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천재 소녀이지만 학교생활은 녹록지 않다. 괴롭힘을 피해 전학 간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따돌림이 끊이지 않는다.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이겠지만, 장애 학생의 학교 적응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올 4월 기준 특수교육을 받는 전국 자폐성 장애 학생은 1만7024명으로 전년 대비 11.9% 늘었다.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 중 16.4%를 차지해 지적장애(51.8%)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 역시 10만3695명으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72.8%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닌다. 그 비율은 증가 추세다. 비장애 학생과 섞여 지내는 ‘통합교육’이 장애 학생의 사회성을 키우는 등 교육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늬만 통합교육인 학교도 적지 않다. 다양한 학생을 보듬지 못하는 입시 위주 교육과 특수교육에 대한 지원 부족이 맞물린 결과다.》
○ 더 감소한 ‘일반반’ 장애 학생 비율
올 1학기 경기도의 한 중학교 특수교사인 강모 씨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는 A 군이 찾아왔다. 비장애 친구들과 함께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듣던 A 군은 “○○○ 선생님 수업에 들어가기 싫다”며 울먹였다.
강 교사가 해당 교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어차피 수업도 못 따라오는데 특수학급에서 그림이나 그리는 게 낫지 않으냐”는 비아냥거림이었다. 강 교사는 “선생님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아이가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 같다”고 말했다. A 군은 그 후 해당 과목 시간마다 장애 학생들만 모인 특수학급으로 옮겨 수업을 듣기로 했다.
장애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런 편견과 맞닥뜨리는 건 흔한 일이다. 그 결과는 대부분 비장애 학생과의 ‘분리’다. 자폐성 장애는 종종 돌발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일부 교사는 “다른 학생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이들을 수업에 들이기를 꺼린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특수교사는 “학년부장 선생님이 반대해 자폐 학생을 체험학습이나 수련회에 못 데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 학생의 72.8%가 일반학교에 다닌다는 통계에도 허수가 적지 않다. 일반학급에서 비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 전일제 통합학급 학생은 16.9%(1만7514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5만7948명은 일반학교의 특수반에 다닌다. 전일제 통합학급에 다니는 장애 학생 비율은 10년 전인 2012년(18.4%)보다 오히려 줄었다. 전문가들은 “또래와의 교류가 차단당하면 학교 안의 섬이 돼 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교사 1인당 학생 수, 지역별 2배 격차도
통합교육의 수준을 높이려면 교사의 질과 양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학교와 지역마다 인프라 격차가 크다. 특수교사 1인당 학생 수가 대표적이다. 본보가 올해 광역시급 이상 대도시의 특수교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일반학교의 특수교사 1인당 학생 수는 대전이 5.4명으로 가장 적었다. 반면 부산(7.1명)과 대구(6.8명)는 평균(5.5명)을 웃돌았다. 유치원만 놓고 보면 대구(9.4명)의 유치원 특수교사가 맡은 장애 학생은 서울(4.4명)의 두 배가 넘는다. 학교급별 특수학급 정원은 유치원 4명, 초등 및 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이다.
특수학급이 없어 특수교사 배치가 되지 않은 곳도 많다. 장애 학생 수가 학급 개설 기준에 못 미치는 곳들이다. 이런 학교에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순회교육을 나간다. 하지만 주 2, 3회, 회당 2시간가량의 교육으로는 장애 학생의 학습을 돕거나 일반교사의 특수교육 이해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일선 학교에 특수교사가 충분히 배치돼야 다양한 장애 유형에 따른 맞춤형 지원이 가능해진다. 서울 노원구 공릉중에 근무하는 특수교사 김민진 씨는 자폐 학생을 위해 일반교사와 협업하는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폐 학생들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요. 수업에 시청각 자료가 있으면 해당 교사가 미리 저에게 알려주고, 저는 학생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요. 영상이 나올 때만 5∼10분 정도 나왔다가 다시 수업에 참여해요. 그렇게 해야 장애 학생을 배제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 교사 의지에 따라 학생도 성장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10)을 둔 엄마 김윤정 씨는 통합교육이 아이를 바꾼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욕구 충족이 되지 않으면 머리를 찍곤 하던 아들은 통합학급을 다니면서 이런 행동이 점차 사라졌다. 담임교사가 “아이가 열외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뒤 노력해 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 씨는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이라며 “이젠 혼자 분식집에서 주문을 하고, 버스도 혼자 탈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학급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이처럼 담임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감은 “담임이 장애 학생을 나 몰라라 하면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의 존재를 지우거나 따돌림이 발생한다”며 “한 공간에 앉아만 있을 뿐 통합도 교육도 없는 교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부터 ‘정다운 학교’ 사업을 진행 중이다. 통합교육 수요가 많은 학교에 특수교사를 증원해 일반교사와 협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서울 8곳 등 전국 104개 학교가 운영 중이다. 오세경 서울 새솔유치원 교사는 “특수교사 2명이 3∼5세반에 흩어진 8명의 장애 학생을 종일 돌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는데, 올해 특수교사 한 명이 충원돼 아이 특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일부 학교에 한정된 얘기다. 당장 특수교사를 크게 늘리기도 어렵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가공무원인 특수교사를 계속 늘리자고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선 당장 특수교사 지원이 힘들다면 통합학급을 맡은 담임들이 장애 학생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 특수교육 대상자를 맡을 경우 학급에 배정된 학생이나 수업 시수를 줄여주는 것이다.
○ 특수교육 대상은 1.7%뿐일까
숫자로 보이는 국내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는 약 10만 명이지만, 실제 특수교육 지원이 필요한 학생은 그보다 더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내 특수교육 대상자는 전체 유치원 및 초중고교 학생 수 대비 약 1.7%다. 이는 호주 18.8%, 미국 14.1%, 독일 5.2%, 일본 5.0%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한국은 이들 나라보다 특수교육 대상을 더 좁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언어나 계산 능력이 떨어지는 ‘학습장애’ 학생이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33.2%를 차지한다. 독일도 34.6%가 학습장애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의 학습장애 학생은 전체의 1%(1078명)에 불과하다.
한경근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한국은 눈에 띄는 장애가 있어야만 특수교육 대상자로 분류한다”며 “우울증을 겪는 정서장애 학생, 경계선 지능(IQ 71∼84)에 있는 학습장애 학생, 넓게는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까지 특수교육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