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전한, 검증가능한, 불가역적인’ 우상척결
열왕기하 12.1-21
시 작 기 도
주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일에 전념하게 하소서. 다른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주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 주님을 찾는 것임을 인식합니다. 오 주여 주님을 향한 열정을 부어주소서. 열정과 갈망 없이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찾기 힘들다고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도록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가는 성실함도 부어주소서. 자기 목숨을 구하는 길을 찾듯 생명이신 주님을 구하게 하소서.
본 문 요 약
남유다에서 요아스가 왕이 되어 40년을 예루살렘에서 다스렸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 제사장의 가르침을 받아 평생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여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지속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들을 명하여여 성전에 들어오는 수입으로 성전을 수리하고 부수하라고 하였습니다. 드러나 20년이 지나도록 성전이 보수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요아스는 제사장들을 불러놓고 이제부터는 제사장들이 직접 헌금을 받지 않고 또 성전 수리하는 일에도 직접 가담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헌금궤를 마련하여 돈이 모이면 왕실과 제사장들이 함께 계산하여 그 돈을 직접 공사 감독관들에게 주어서 다시 각 건축자들과 자재 구매자에게 전달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각종 기구들을 만드는 데에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의 하사엘 왕이 블레셋의 가드를 점령한 뒤, 예루살렘도 치려고 할 때, 요아스는 주님의 성전과 왕실 창고에 있는 세 명의 선왕과 자신이 드린 모든 선물과 금들을 시리아 하사엘 왕에게 보냈습니다. 하사엘은 예루살렘을 치지 않고 물어 갔습니다.
요아스는 요사갈과 여호사브드라는 신하들의 역모로 밀로의 궁에서 살해 당했습니다.
본 문 의 뜻
다시 새롭게 다윗 왕의 혈통을 이은 왕인 요아스가 다스리기 시작하는 유다입니다. 요아스 왕은주님 보시기에 바알우상숭배의 악한 길로 행하지 않고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피우면서 자연스럽게 혼합신앙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산당은 제단과 신전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써 누구나 거기에 쉽게 와서 하나님께 또는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자연적으로 그 지역 이방신에게 제사드리는 풍습과 우상을 그래로 답습하게 되는 곳이 되었습니다(혼합신앙, 유사신앙). 이것은 오직 한 곳 예배할 곳을 지정한 신명기12장이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솔로몬이 수 많은 이방 첩들로부터 배운 우상숭배를 위해서 이 산당 제사를 백성들에게 허용하였습니다(왕상11.4-8). 그것이 이스라엘의 신앙 타락의 원점이고 남북 분열의 원인이자 다윗의 자손에게 형벌이 내리는 원인입니다. 요아스 왕은 이런 산당 제사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성전의 무너진 곳을 고치고 보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제사장들이 협조하지 않았고 오래동안 방치하였습니다. 요아스는 그 일을 위임하였으나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 후에 요아스 왕은 왕실에서 직접 회계를 맡아 헌금을 걷어서 공사감독관에게 전달하여 일을 진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쉬운 것은 그들이 정직하게 돈을 쓴다고 해서 회계감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아쉬운 것은 그 돈으로 정작 필요한 기구들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은대접, 부집게, 각종 대접들과 나팔, 각종 금은 그릇 등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을(왕상7.48-51) 만드는 데에는 그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대한 온전한 보수라고 말하기에는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요아스 왕은 다윗이 이루어놓은 솔로몬 시대의 ‘사방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왕 하사엘의 압력에 하나님의 성전에 바쳤던 선물과 금들을 그리고 왕실에 있는 금을 다 시리아의 하사엘에게 바쳤습니다. 그래서 겨우 침략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민족들에 대한 다윗 왕국의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요아스왕은 40이란 긴 세월을 다스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바알숭배신앙에서 멀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일부를 보수했습니다. 외부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역모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 척결에 있어서는 산당 제사를 없애지 못했으므로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있어서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회복에 있어서 온전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국의 영화를 회복하는 데에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꽤 잘 살았고 옳은 일은 했지만 끝은 살해당함으로 보아 좋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요아스가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그러나 산당제사를 없애지 않았고 그의 생의 업적으로써 성전보수가 있으나 아쉬운 점이 있고, 다윗왕국의 영화와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역모로 살해 당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구속과 부활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우상숭배와 죄악에 빠질 때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했던 것처럼 주님의 은혜로 신앙을 회복시키시는 일들을 행하시고 새롭게 언약을 세워 확인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새롭게 신앙으로 살아가지만 가장 중요한 우상숭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습니다. 항상 우상을 조금씩 남겨 놓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상태로 신앙의 회복의 길을 가고,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항상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에 못 미칩니다. 그렇게 지나다가 신앙의 타락이 다시 찾아 옵니다. 이것이 반복됩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산당’까지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왕기 상하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결국 실패하여 언약을 파기하고 언약에서 끊어질 시점까지 다다릅니다. 예레미야가 끝까지 외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시점에서 새 언약을 주시고 확실한 길을 보이십니다.(렘31.31-34, 32.39-40).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언약 불이행으로 온갖 재앙을 다 맞이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새 언약이 그들에게 임했고 우리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주님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걸으사 그 새 언약을 실제로 역사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새 언약의 핵심은 주님이 내 마음과 영혼에 성령을 보내주시사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모든 우상을 내 마음에서 다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동일하게 선포한 새 언약(겔36.25-28)에서 그 것을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겠다....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 영을 부어주어 나의 모든 율례대로 모든 규례를 행동하고 지키게 해 주겠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많은 왕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못나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산당까지 모두 없애서 우상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1차적 의미를 발견하고서 우리가 기억하고 돌아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을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그 분 안에서만 이룰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 안에서 그 은혜와 생명을 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온전히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방에 안정’을 이룬 다윗왕의 영화처럼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며 주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새 언약이 나의 삶에 이루어지도록 주님을 구합시다.
나 의 묵 상
(비참함) 주님이 신앙의 내리막길과 삶의 고난이 찾아오면 주님께서 거기에서 구원하시고 새롭게 살아가도록 날마다 때마다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내 마음 속의 우상이 무엇인지도 다 규명하지도 못한 채, 우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영적 상태로 남아 있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삶의 각 영역에서 충분히 나타나지 못하고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우상과 죄악으로 돌아가는 삶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나의 내면적 신앙과 외부적 삶에서 주님의 임재와 능력이 잘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우상을 품고 섬기고 있으면서 내면의 주님의 성전과 삶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안일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구원)이스라엘 백성들과 왕들이 반복적으로 실패할 때에 주님께서 예언자들과 성경에서 예언하신 새 언약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드려 희생제물되시어 십가가에서 새 언약을 피로 맺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내게 보내어주시사 우상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주님의 법이 새겨진 새로운 마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의 뜻과 목적을 내가 실천하여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 재건하여주시고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버지품) 주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갑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삼위의 하나님 안에서 그 영광을 누리고 그 기쁨을 누립니다.
기 도
오직 주님의 은혜로 모든 내 마음 속의 모든 우상을 다 제거하게 하소서. 내 맘과 삶의 우상을 드러내어 보이소서. 우상으로 더럽혀진 나를 씻어주시사 깨끟하게 하시고 모든 우상을 신속히 철저히 영원히 버리도록 성령을 부어주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모든 우상을 제거하도록 성령을 부으소서. 그래서 각자 모두가 그리고 전체가 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온전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고 온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우상을 제거한 주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 것을 보고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 아래로 몰려 들게 하소서.
생 명 일 기 (9월 24일 화)
하나님의 성전에서 다윗의 창과 방패, 즉 주님의 능력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님이 성전을 세우시듯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그 우주적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군대로 일어나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온 우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보좌에 앉도록 행진하는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의 임재와 권능을 경험하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임재로 나아가 주님 발 앞에 앉아 주님과 친밀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초점을 잃지 않고 주님을 구하고 찾는 것에 온 삶을 드려야함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찾고 구하는 것도 시간과 훈련을 통해서 그것을 익혀야 합니다. 거기에 포함되는 것이 주님을 노래로 높이는 것일 것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해 보니 해애할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고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는 갈망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
첫댓글 아멘!
포로지에서도
온ㅇ마음으로 주를 구하고 찾으라는 말씀은
오늘도 진리가 되어 선포됩니다.
그리하면 주를 만나리라. 렘 29:13.
아멘 신실하신 주님을 구하고 찾으면 어디에 처해있든지 구원받는 놀라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