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вятослав Рихтер / Svyatoslav Richter
굴드는 ‘리스트’ 타입과 ‘리히테르’ 타입의 두 부류로 연주가를 분류한 적이 있다.
단순히 말해 이는 악마적인 기교파냐 진중한 사유파냐, 또는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하는 분류였다. 다시 말해 리히테르는 중용과 절제를 통해 음악의
본질을 꿰뚫는 연주를 들려준 모범적인 연주가의 전형이라는 얘기다.
역시 리스트가 시작한 ‘암보로 연주하기’의 관행에 대해 철저히 반대했던 이가
리히테르였다. 그래서 그의 연주회에는 피아노 악보대에 항상 악보가 놓여 있었고, 그의 옆자리에는 그것을 넘기는 보조자가 있었다. 그리고 청중들이 연주가의 모습에 현혹되어 음악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무대 위의 조명을 최소화했다.
따라서 피아노 바로 위에 작은 조명을 켜놓고 연주하던 리히테르였다.
이도 또한 리스트가 시작한 ‘왕자 연주가’의 전통을 거부한 것이었다.
최근의 많은 연주가들은 그의 이러한 합리적인 태도에 대해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
그가 늦게 시작했다는 시각은 첫째 서너 살만 되면 피아노 앞에 앉히는 20세기의 잘못된 음악교육관행 때문에, 둘째 그가 40이 넘도록 철의 장막 뒤에 가려진 채 숨은 공력을 쌓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순간부터 그야말로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듯한 파장을 퍼뜨린 것이 이를 증명한다. / 객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