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잠든 새벽에 폰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지금 주무셨나요? 가방을 쌀 수가 없어서 애가 울며 전화했어요. 좀 가서 봐주세요."
너무도 당당한 목소리에 비몽사몽 정신도 못차리고 일단 알았다 했는데ㅡ 생각할수로 섭섭함이 가슴에서 내리지 못한채 하루를 보내고야 말았다. ㅠㅠ
모두가 잠든 이 시간에ㅡ 물론 딸에게 이런 전화를 받아 화가 났을 어머님 마음도 이해가 가다가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일단 전화는 받았으니 그녀의 방에 가서 확인했다.
느닷없이 우는 짝꿍이 걱정돼 흥분해 있는 친구를 보니
잠과 잠시 들었던 원망의 감정이 훅! 날아가 버렸다.
흥분한 다른 그녀를 안심시키고
그녀가 원하는데로 가방 속을 꾸역꾸역 채워 넣으며 매우 단호한 목소리로 힘 주어 말했다.
아직 시간도 많은데....... 아침에 조식 먹고 내게 도와달라고 얘기해도 되지 않았을까?.....
엄마가 선생님한테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선생님하고 있는 곳에서 생긴 어려운 일은 일단 선생님하고 해결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제도 멀미약 때문에 엄마가 많이 화내셨는데 오늘은 엄마가 선생님에게 화가 더 많이 나셨네~
다음엔 무슨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해 주면 좋겠어. 절대 미안한일 아니니까~
내가 먼저 알기 전에 엄마가 먼저 알게 하는게 사실 더 미안한 일이니까!
엄마가 무심코 던지는 부정적인 푸념들이 아이에게서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하고 있는 것을 그녀를 볼 때마다 느껴져서 늘 마음이 아프다.
계절정보 까지 알려주고 얇은 여벌옷들을 준비하게 당부했는데 가방에 겨울옷들이 세트별로 가득하니 전날 산 부피가 큰 기념품들이 힘들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어찌 수습하고 잠시 쉬었다가
생각난 길에 다른 방들을 순회하며 짐들은 잘 쌌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좀 일찍 가졌다.
ㅡ@@씨 가방에는 선물들까지 다 잘 들어 갔겠죠?
어디 가방을 얼마나 멋지게 잘 쌌는지 보여줄수 있을까요? 나도 좀 보고 따라하게~
ㅡ에이, 왜그러세요? 하나도 안 빼고 있어요.
잘난척 뽐내며 가방들을 오픈해 주니 확인이 수월했다.
복잡하게 엉킨 부분들말고는 대부분 잘들 챙겨넣었다.
인천 도착하면 입게될 외투만 압축해서 말아주며
가방 입구에 넣도록 알려주니 감탄 하며 냉큼 받아 넣고 짐싸기를 마무리했다.
조식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에 몸을 실었다.
먼저 용산사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교회에 다녀." 입으로 말 하면서 몸은 벌써 각종 신들앞에 공손히 서서 정성껏 기도를 하고 있었다.
ㅡ나 취직해야해요.
ㅡ나 월급 많이 받고 싶어요.
ㅡ남자친구 생겨서 결혼할거예요.
ㅡ가족 건강하게 같이 살게 해주세요.
중정기념관에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한가롭게 인생샷들을 추가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니 구름위로 붉은 색이 물들고 있었다. 그 그림이 참으로 특별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맛있게 기내식을 마치고 한글로 된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를 기록하고 언제 도착 할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눈앞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폰의 유심칩도 요령껏 갈아끼우고 평안하게 기다림을 갖는다.
출국할 때의 서툴고 당황스러웠던 첫경험들이
입국하면서 자신감과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새벽부터 정신줄 붙잡아준 그녀와 헤어지면서 당부 당부했다.
ㅡ엄마가 불편한 일이 뭐였냐고 물으시거든 그 말에 답하지 말고
재미있었던 기억들만 얘기해 주면 참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