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13]
또 레바논의 높고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여호와의 심판은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일시에 넘어뜨리는, 지진을 동반한 무서운 폭풍으로 형상화된다. 그 폭풍은 북에서 발원하여 남쪽의 바다로 향한다. 이 방향은 이스라엘의 적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방향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레바논의...백향목과 바산의...상수리나무 - 레바논은 '흰 산'이란 뜻인데, 그 산의 꼴개기가 1년 중 거의 절반이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팔레스틴과 시리아 접경에 위치한다. 그곳의 자랑인 백향목은 성경에서 종종 위엄과 능력의 상징으로 취해졌으며, 세속적인 교만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바산은 요르단 동쪽에 자리하고 길르앗 북쪽에 위치하며 그 남쪽으로는 야르묵 강이 흐르는 고원 지대이다. 지금은 엔-누크라고 불리며 가축을 키우기 좋은 목축지가 있다.
황소와 상수리나무로 유명하다. 주석가들은 이것들이 유다의 높은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나무들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해 들어올 때 군사용 목적으로 벌목되어 완전히 황폐화 되고 말았다.
[사 2:14]"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사 2:15]"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여호와의 심판은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일시에 넘어뜨리는, 지진을 동반한 무서운 폭풍으로 형상화된다. 그 폭풍은 북에서 발원하여 남쪽의 바다로 향한다. 이 방향은 이스라엘의 적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방향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사 2:16]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사 2:17].."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 약간 변형된 11절의 반복이다. '눈이 높은 사람'이 '스스로 높은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그 의미는 11절과 동일하다. 이런 반복은 이전의 상세한 시각적 묘사로부터 다시 선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진술로 환원하기 위한 것이거나 혹은 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 2:18]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 선지자의 시선은 여호와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대상인 우상으로 옮긴다. 심판의 날에 우상들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완전한 무로 화할 것이다.
[사 2:19]"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 10절의 경고가 여기서 직접적인 예언으로 바뀐다. 심판의 날에 우상들은 그 숭배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상들이 무로 화하듯이, 그 숭배자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피해 암혈과 토굴에 몸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 2:20]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지고..."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 70인역은 이 구절에 착안하여 그들이 동물 숭배에 빠졌다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두더지와 박쥐는 우상 숭배자들이 몸을 피할 '암혈'과 '토굴'과 연관하여 취해진 것이다. 즉, 그들은 두더지와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던 어둡고 음습한 동굴에 금과 은의 형상들을 던지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행동은 '역겨움에서', 혹은 '심판자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취해질 것이다.
[사 2:21]"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본문은 우상에 대하여 언급할 때마다 뒤따라 나오는 후렴구이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임할 수치와 파멸이 어느 정도로 극심할 것인가를 강조하기 위하여 후렴구로 반복되는 것 같다.
[사 2:22]"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가치가 어디 있느뇨..."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후기의 삽입으로 간주되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아예 빠져 있다. 그러나 바르게 이해한다면 본절은 앞에서 논의된 내용의 결론이며, 동시에 3;1 이하에서 새로 이어질 내용의 도입부로 작용한다.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 인생의 유한함이 창 2:7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기술되었다.
인간의 생명은 호흡이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시편 기자는 그 허망함을 이렇게 노래했다:"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