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개 요****
▩산 행 지 : 성주 영취산(331.7m) 산행 ▩일 시 : 2016. 03. 12(일) ▩산행 코스 : 한 개마을 주차장(12:08) - 마을외곽 삼거리(12:17) - 움막 좌 갈림길(기도청, 12:26) - 감응사(12:37) - 영취산(12:52) - 우 갈림길(13:07) - 성산이씨 묘(13:19) - 한개마을 주차장(13:27) ▩산행 거리 : L= 3.94km (GPS상 거리) ▩산행 시간 : 산행 1시간 19분(산행 평균속도 : 3.01km/h) ▩참 가 비 : 나홀로 애마를 몰고서 ▩출 발 지 : 11시 30분 ( 성서 우리집 ) ▩산행 종류 : 원점 회귀형 산행 ▩산행 날씨 : 산행하기 좋은 약간 쌀쌀한 날씨 ▩산의 개요 : ***영취산 [靈鷲山] 신령스러운 독수리'란 뜻으로 신령 영(靈)자와 독수리 취(鷲), 산 이름을 영취산 [靈鷲山]이라 한다고한다. 331.7m로 높이는 낮지만 울창한 수림이 길 양쪽으로 뻗어있는 등 주변경관이 수려해 경치를 비교해도 어느 명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영취산 아래 성산이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70여 채의 전통 고가옥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한개마을과 함께 숲속에 반쯤 파묻힌 채 영취산 거의 정상지점에 천년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감응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가볍게 산행도 하면서 성주의 관광명소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각광받고 있다. ▩산행 지도 : *** 클릭 시 확대됨 ▩나의 산행 궤적: *** 클릭 시 확대됨 *** 클릭 시 확대됨 ▩산행 후기 : 수년전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1년 만에 병원을 방문하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야 한다고 부산을 떠는 바람에 진료를 받고 나오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약을 수령하여 부리나케 집에 돌아와 사과 두 개를 챙겨 애마를 몰고 성주 한개마을 주차장에 도달하니 12시를 살짝 넘어가고 있더라. 대충 산행준비를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고즈넉한 한옥들이 정겹게 어울려 잔잔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고풍스런 분위기에 느긋하게 9분정도 이어가니 마을외곽으로 벗어나는데 이내 감응사 가는 호젓한 산길이 열려 기분 좋게 느림의 미학을 배우며 발길에 몸을 맡긴다. 5분정도 올라가니 돼지 석상이 등로 옆에 앉아 있는데 조금은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어 쓴웃음 한번 짓고 4분정도 터벅거리며 올라가니 이번에는 좌측에 오솔길이 나있고 맞은편에는 비닐하우스 같은 움막이 눈에 들어와 들여다보니 기도청이라고 출입을 금지한단다. 움막을 지나니 잠시 가파르게 산길이 이어지는데 얼마가지 않아 다시 완만하게 길이 눕더라. 산죽길을 지나 몇 걸음 걸어가니 요사체가 나오고 이내 감응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대웅전이 머리위에서 슬그머니 다가오는데 흰둥이 두 마리가 산이 떠나갈듯이 울부짖어 개를 겁내는 나로서는 괜히 주눅이 든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커다란 바위 밑에 있는 샘을 덮어 놓았는데 아마 왕자의 눈병을 낫게 만들었다는 옥류천인 것 같더라. 종각 옆에 있는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감응사를 나서 오솔길을 4분정도 걸어가니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는 등로가 보여 올라가니 정겨운 산길이 열린다. 쉬엄쉬엄 올라가니 전망바위가 하나 나오는데 올라가 주변을 내려다보니 비닐하우스로 뒤덮힌 월항면이 눈에 들어와 무시하고 5분 정도 곧장 올라가니 영취산 정수리가 널따란 헬기장을 머리에 이고 누워있더라. 사방을 둘러보니 조망이 시원찮아 사과 하나 먹고 우측으로 틀어 내려오니 지척에 문포마을로 내려가는 좌측갈림길이 나와 무시하고 곧장 우측으로 내려오니 호젓한 산길이 열리더니 가파른 내림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9분정도 내려오니 우측에 뺀질뺀질한 등로가 보이는데 아마 감응사 가는 길인 것 같은데 무시하고 좌측 능선길을 따라 이어오니 1분 거리에 멋진 연리지가 있어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애틋한 연리지를 올려다본다. 잠시 쉼을 하다 다시 산길을 4분 정도 이어오니 능선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 문방단지로 갈까? 아님 우측 마을로 바로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아들놈이 대구로 올라온다기에 바로 내려가기로 맘을 먹고 우측 하산길 모드로 접어든다. 5분정도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 우로 가더라도 모두 한개마을로 내려가기에 좌측길로 접어 내려가니 2분 만에 성산이씨 가족묘가 나오고 이어 마을외곽으로 바로 이어진다. 마을 외곽길을 7분정도 터벅터벅 걸어오니 주차장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애마가 눈에 들어온다. 워밍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산행이 싱겁게 끝나버려 멋쩍게 한번 웃고 집으로 향한다.
몇 해전에 와 본곳이라 반가움이 앞선다
**한개마을** 600년 역사가 깃든 한개마을 한개(민속)마을은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양반촌이며 전국 6번째로 지정된 전통 민속마을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와 경기좌도수군첨절제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정착하여 560여 년을 내려오면서 성산이씨가 집성하여 살고 있는 전통 깊은 마을이다. ‘한개’라는 지명은 크다는 뜻의 ‘한’과 나루라는 의미인 ‘개’가 합쳐진 말로, 예전 이 마을 앞에 있었던 나루가 한개나루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한 '대포(大浦)'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 2007년 12월 31일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255호)로 지정된 성주한개마을은 안동의 하회,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7개 민속마을의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전통사찰 감응사가 있는 영취산이 마을을 포근히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지방하천인 이천이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설로 보아 영남 최고 길지로 꼽히는 곳이다.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 참사 후 낙향해 세자를 사모하여 사립문을 북쪽으로 내고 평생을 은거한 돈재 이석문, 조선 말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 이원조와 유학자 이진상 등 명현을 많이 배출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이석문이 북으로 사립문을 내었다는 북비고택, 이진상이 학문의 칼을 벼리던 한주종택, 1911년에 지어져 20세기 초 목조건축의 수법을 살필 수 있는 월곡댁, 영조 36년(1760)에 세워져 마을에서 가장 오랜 내력을 지닌 교리댁 등이 경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돼 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그래도 영취산이 한개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 명당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륜재가는 좌측길을 버리고 우측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좌측 교리댁으로 가거나 곧장 앞으로 나아가도 외곽 삼거리에서 만나게 되어 이번에는 마을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본다
어릴적 내 고향 우리 집도 흙담이었는데 70년대 새마을 사업한다고 시멘트 담장으로 바꾸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이곳저곳 가릴 곳 없이 마구잡이로 파헤쳐 놓아 눈길이 찌푸려지더라
일제시대도 아닌 현대에 왜 이런 처참한 짓을 했을까???
우측길을 무시하고 곧장 올라가며
이게 무슨 뜻일까???
기도하는 곳이라는 말인가??? 일단 출입금지란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번 들어가 보니 별로라 그냥 올라간다
***감응사 [感應寺] 독수리에 대해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애장왕'이 늦게 아들을 얻었으나 왕자가 태어날 때부터 심한 눈병으로 앞을 볼 수가 없어 왕비는 왕자의 눈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라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리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니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을 것인 즉 그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하고 사라졌는데 이튿날 아침 과연 문 앞 나무위에 독수리가 나타나서 이곳 감응사 터 까지 와서 어디론지 사라져 독수리를 놓쳐 버린 군사는 독수리를 찾아 헤매다가 이곳 약수를 발견하고는 이 약수를 떠다가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아 애장왕은 부처님의 가호와 은덕이라 생각하며 이 약수 앞에 절을 지어 [감은사(感恩寺)]라 하고 후에 [感應寺]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 약수는 절 뒤의 절벽 사이에서 나오는 물로 샘터를 옥류천 [玉流井]이라 하며 지금도 그 물맛이 달고 차가와 약수로 이름나 있다.
커다란 바위 절벽아래 흘러 나오는 석수가 왕자 눈병을 낫게 하여 유명한 옥류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데 지금은 뚜껑을 덮어 놓았고 먹지 말라는 멘트까지 적혀있더라 옥류정이 맞이 않을까???
주차장 우측에 능선으로 올라가는 등로가 보인다
내려다 보니 비닐하우스만 내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월암고개로 내려가는 능선길이 선명하게 나있더라
비록 가끔은 무거움을 느껴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베낭속에는 항상 들어가 있다
문포마을로 내려가는 좌측길을 버리고 우로 틀어서 내려가니
감응사 가는 우측길을 버리고 능선을 따라 곧장 나아가니
문방단지가는 좌측 능선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오니
좌로 가나 우로 가나 한개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라 좀더 걸을 욕심이 좌측으로 이어가니
워밍업도 하기전에 산행이 끝나버려 조금은 허전하더라 이런 산행도 있고 저런 산행도 있으니 다음주에 조금 더 걸으면 되겠지하고 부산에서 올라오는 아들놈을 만나기 위해 부리나케 집으로 간다 |
출처: 노송의 느린 여정 원문보기 글쓴이: 노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