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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스크랩 성주 영취산(331.7m) 산행
노송 추천 0 조회 120 16.03.13 10: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 행 개 요****

▩산  행  지 : 성주 영취산(331.7m) 산행

▩일       시 : 2016. 03. 12(일)

▩산행 코스 : 한 개마을 주차장(12:08) - 마을외곽 삼거리(12:17) - 움막 좌 갈림길(기도청, 12:26) - 감응사(12:37) - 영취산(12:52) - 우 갈림길(13:07) - 성산이씨 묘(13:19) - 한개마을 주차장(13:27)

▩산행 거리 : L= 3.94km (GPS상 거리)

▩산행 시간 : 산행 1시간 19분(산행 평균속도 : 3.01km/h)

▩참  가  비 : 나홀로 애마를 몰고서

▩출  발  지 : 11시 30분 ( 성서 우리집 )

▩산행 종류 : 원점 회귀형 산행

▩산행 날씨 : 산행하기 좋은 약간 쌀쌀한 날씨

▩산의 개요 :

***영취산 [靈鷲山]

신령스러운 독수리'란 뜻으로 신령 영(靈)자와 독수리 취(鷲), 산 이름을 영취산 [靈鷲山]이라 한다고한다.

331.7m로 높이는 낮지만 울창한 수림이 길 양쪽으로 뻗어있는 등 주변경관이 수려해 경치를 비교해도 어느 명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영취산 아래 성산이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70여 채의 전통 고가옥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한개마을과 함께 숲속에 반쯤 파묻힌 채 영취산 거의 정상지점에 천년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감응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가볍게 산행도 하면서 성주의 관광명소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각광받고 있다.

▩산행 지도 :

*** 클릭 시 확대됨

▩나의 산행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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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

수년전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1년 만에 병원을 방문하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야 한다고 부산을 떠는 바람에 진료를 받고 나오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약을 수령하여 부리나케 집에 돌아와 사과 두 개를 챙겨 애마를 몰고 성주 한개마을 주차장에 도달하니 12시를 살짝 넘어가고 있더라.

대충 산행준비를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고즈넉한 한옥들이 정겹게 어울려 잔잔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고풍스런 분위기에 느긋하게 9분정도 이어가니 마을외곽으로 벗어나는데 이내 감응사 가는 호젓한 산길이 열려 기분 좋게 느림의 미학을 배우며 발길에 몸을 맡긴다.

5분정도 올라가니 돼지 석상이 등로 옆에 앉아 있는데 조금은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어 쓴웃음 한번 짓고 4분정도 터벅거리며 올라가니 이번에는 좌측에 오솔길이 나있고 맞은편에는 비닐하우스 같은 움막이 눈에 들어와 들여다보니 기도청이라고 출입을 금지한단다.

움막을 지나니 잠시 가파르게 산길이 이어지는데 얼마가지 않아 다시 완만하게 길이 눕더라.

산죽길을 지나 몇 걸음 걸어가니 요사체가 나오고 이내 감응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대웅전이 머리위에서 슬그머니 다가오는데 흰둥이 두 마리가 산이 떠나갈듯이 울부짖어 개를 겁내는 나로서는 괜히 주눅이 든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커다란 바위 밑에 있는 샘을 덮어 놓았는데 아마 왕자의 눈병을 낫게 만들었다는 옥류천인 것 같더라.

종각 옆에 있는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감응사를 나서 오솔길을 4분정도 걸어가니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는 등로가 보여 올라가니 정겨운 산길이 열린다.

쉬엄쉬엄 올라가니 전망바위가 하나 나오는데 올라가 주변을 내려다보니 비닐하우스로 뒤덮힌 월항면이 눈에 들어와 무시하고 5분 정도 곧장 올라가니 영취산 정수리가 널따란 헬기장을 머리에 이고 누워있더라.

사방을 둘러보니 조망이 시원찮아 사과 하나 먹고 우측으로 틀어 내려오니 지척에 문포마을로 내려가는 좌측갈림길이 나와 무시하고 곧장 우측으로 내려오니 호젓한 산길이 열리더니 가파른 내림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9분정도 내려오니 우측에 뺀질뺀질한 등로가 보이는데 아마 감응사 가는 길인 것 같은데 무시하고 좌측 능선길을 따라 이어오니 1분 거리에 멋진 연리지가 있어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애틋한 연리지를 올려다본다.

잠시 쉼을 하다 다시 산길을 4분 정도 이어오니 능선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 문방단지로 갈까? 아님 우측 마을로 바로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아들놈이 대구로 올라온다기에 바로 내려가기로 맘을 먹고 우측 하산길 모드로 접어든다.

5분정도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 우로 가더라도 모두 한개마을로 내려가기에 좌측길로 접어 내려가니 2분 만에 성산이씨 가족묘가 나오고 이어 마을외곽으로 바로 이어진다.

마을 외곽길을 7분정도 터벅터벅 걸어오니 주차장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애마가 눈에 들어온다.

워밍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산행이 싱겁게 끝나버려 멋쩍게 한번 웃고 집으로 향한다.


▼    집에서 30분 정도 달려 오니 한개마을 표석이 도로 옆에 서있는데

몇 해전에 와 본곳이라 반가움이 앞선다


▼    표석 뒤 수령 400년이 된 노거수가 너무나 풍취가 있어 한번 담아보고


▼    구 길을 돌아가니 새로 세워진 멋진 한개마을 표석이 새로이 인사를 하더라


▼    한개마을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한개마을**

600년 역사가 깃든 한개마을

한개(민속)마을은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양반촌이며 전국 6번째로 지정된 전통 민속마을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와 경기좌도수군첨절제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정착하여 560여 년을 내려오면서 성산이씨가 집성하여 살고 있는 전통 깊은 마을이다.

‘한개’라는 지명은 크다는 뜻의 ‘한’과 나루라는 의미인 ‘개’가 합쳐진 말로, 예전 이 마을 앞에 있었던 나루가 한개나루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한 '대포(大浦)'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 2007년 12월 31일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255호)로 지정된 성주한개마을은 안동의 하회,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7개 민속마을의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전통사찰 감응사가 있는 영취산이 마을을 포근히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지방하천인 이천이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설로 보아 영남 최고 길지로 꼽히는 곳이다.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 참사 후 낙향해 세자를 사모하여 사립문을 북쪽으로 내고 평생을 은거한 돈재 이석문, 조선 말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 이원조와 유학자 이진상 등 명현을 많이 배출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이석문이 북으로 사립문을 내었다는 북비고택, 이진상이 학문의 칼을 벼리던 한주종택, 1911년에 지어져 20세기 초 목조건축의 수법을 살필 수 있는 월곡댁, 영조 36년(1760)에 세워져 마을에서 가장 오랜 내력을 지닌 교리댁 등이 경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돼 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    표석 옆에 선 한개마을 알림판을 느긋하게 한번 읽어본다


▼    한개마을을 담은 조감도를 한번 들여다 보고


▼    가야할 영취산을 올려다 보니 풍수에 대해 무뢰한이지만

그래도 영취산이 한개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

명당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한개마을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초가집이 나를 반기는데


▼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전형적인 시골향내가 고풍스럽게 다가온다


▼    잠시 걸어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서륜재가는 좌측길을 버리고 우측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    백발 할매가 유모차에 의지한 체 길을 나서며 '뉘신고?' 하며 말을 건네고 지나간다


▼    몇걸음 가지 않아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교리댁으로 가거나 곧장 앞으로 나아가도 외곽 삼거리에서 만나게 되어

이번에는 마을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본다


▼    정갈한 이정표시목이 있어 한번 담아주고


▼    마을 길따라 들어가니 멋진 흙담이 눈길을 끌어 당기게 만든다

어릴적 내 고향 우리 집도 흙담이었는데

70년대 새마을 사업한다고 시멘트 담장으로 바꾸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    고풍스러움이 흠뻑 묻어나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내 맘도 편안해지는데


▼    옆을 돌아보니 마을을 새로이 조성한다고

이곳저곳 가릴 곳 없이 마구잡이로 파헤쳐 놓아 눈길이 찌푸려지더라


▼    바라만 봐도 편안해지는 골목길을 들어가니


▼    격조 높은 양반댁이 눈에 들어오는데


▼    좌측 옆에선 알림판을 들여다보니 하회댁이라고!!!


▼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선비가 살았을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더라


▼    지척에 도동댁이라는 알림판이 있어


▼    들여다 보니 과거속에 현대가 들어 앉아 조화를 이루고 있더라


▼    복원공사가 한창인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    한주종택 알림판이 눈에 들어오고


▼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가옥은 이승희 독립운동가 생가라고 하더라


▼    마을을 벗어나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로 틀어서 걸어가니


▼   이정표에서 본 교리댁에서 오는 마을길과 마주하여 호젓한 길로 이어진다  


▼    등로 옆 오래된 듯한 소나무가 껍질이 벗겨진체 신음을 하고 있는데

일제시대도 아닌 현대에 왜 이런 처참한 짓을 했을까???


▼    마을을 벗어나 5분 정도 느긋하게 올라오니 돼지 석상이 있는 삼거리에 도달하는데

우측길을 무시하고 곧장 올라가며  


▼    돼지 석상을 내려다보니 조금은 이상한것 같은데????


▼    몇걸음 올라가지 않으니 커다란 바위에 400이라고 쓰여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    바위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4분정도 올라오니 좌측에 갈림길이 나있는데


▼    등로 건너편에는 비닐로 지어진 움막이 하나 있더라


▼    궁금하여 들여다 보니 기도청이라고????

기도하는 곳이라는 말인가???

일단 출입금지란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번 들어가 보니 별로라 그냥 올라간다


▼    움막을 지나자 가파른 오름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산죽길로 연결된다


▼    산죽길로 이어오니 요사체가 눈에 들어오는데


▼    요사체에서 좌측으로 휙 굽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    감응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놓여져 있더라


▼    돌계단 밑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니 거울이 있어 내 모습 한번 담아보고


▼    계단을 올라가니 대웅전 바로 앞에 커다란 노거수가 있어 한번 담아보고


▼    감응사에 대해 한번 알아본다

***감응사 [感應寺]

독수리에 대해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애장왕'이 늦게 아들을 얻었으나 왕자가 태어날 때부터 심한 눈병으로 앞을 볼 수가 없어 왕비는 왕자의 눈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라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리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니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을 것인 즉 그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하고 사라졌는데 이튿날 아침 과연 문 앞 나무위에 독수리가 나타나서 이곳 감응사 터 까지 와서 어디론지 사라져 독수리를 놓쳐 버린 군사는 독수리를 찾아 헤매다가 이곳 약수를 발견하고는 이 약수를 떠다가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아 애장왕은 부처님의 가호와 은덕이라 생각하며 이 약수 앞에 절을 지어 [감은사(感恩寺)]라 하고 후에 [感應寺]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 약수는 절 뒤의 절벽 사이에서 나오는 물로 샘터를 옥류천 [玉流井]이라 하며 지금도 그 물맛이 달고 차가와 약수로 이름나 있다.


▼    감응사 현판이 있는 건물을 올려다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는데


▼    대웅전을 제법 운치가 있더라


▼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커다란 바위 절벽아래 흘러 나오는 석수가 왕자 눈병을 낫게 하여

유명한 옥류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데

지금은 뚜껑을 덮어 놓았고 먹지 말라는 멘트까지 적혀있더라

옥류정이 맞이 않을까???


▼    올려다 보니 제법 규모가 큰 바위가 앉아 있는데 조금은 위험한 것아 보인다


▼    종각앞으로 나오니 약수가 있는데 한바가지 퍼서 먹어보니 맛이 참 좋더라


▼    감응사를 나와 능선으로 가기위해 길을 가니


▼    4분만에 주차장에 도달하는데

주차장 우측에 능선으로 올라가는 등로가 보인다


▼    능선으로 난 등로를 따라 올라가니 바위군 옆으로 이어지는데


▼    등로옆에 불에 타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하여 여기도 화마가 지나갔음을 인지한다


▼    느긋하게 6분정도 걸어오니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내려다 보니 비닐하우스만 내눈에 들어온다


▼    잠시나마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니


▼    5분만에 영취산 정수리가 얼굴을 빼족히 내미는데


▼    정수리에는 널따란 헬기장이 앉아 있고

좌측으로는 월암고개로 내려가는 능선길이 선명하게 나있더라


▼    이리저리 찾아봐도 정상석이 없어 그냥 개폼 한번 잡아보는데


▼    요놈이 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등공신이다

비록 가끔은 무거움을 느껴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베낭속에는 항상 들어가 있다


▼    사과 하나로 요기를 때우고 내려오니 지척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문포마을로 내려가는 좌측길을 버리고 우로 틀어서 내려가니


▼    기분 좋은 산길이 이어지더라


▼    2분 정도 걸어오니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지는데  


▼    등로 옆에는 멧돼지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여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    내려가니 7분만에 갈림길이 나온다

감응사 가는 우측길을 버리고 능선을 따라 곧장 나아가니


▼    1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멋진 연리지가 있어 한번 담아주고


▼    올려다 보니 한번도 아쉬워 두번이나 붙어 있더라


▼    연리지를 뒤로하고 4분정도 걸어오니 능선삼거리가 나오는데

문방단지가는 좌측 능선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오니


▼    등로옆에 대산 박영식님의 표식이 등로 곳곳에 걸려있어 한번 담아준다


▼    널널한 산길을 5분 정도 터벅터벅 내려오니


▼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로 가나 우로 가나 한개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라 좀더 걸을 욕심이 좌측으로 이어가니


▼    전형적인 시골 뒷산 산길이 이어지더라


▼    누군가가 산길을 깨끗히 정리해 놓아 기분이 좋아지는데


▼    산자락에 있는 성산이씨묘를 지나 잠시 이어오니 한개마을로 떨어지더라


▼    마을 외곽을 지나며 고풍스런 한옥을 담 너머 올려다보니 풍취가 살아나는데


▼    마을 앞으로 나오니 시멘트 담이 고풍스런 마을 분위기를 망치고 있더라


▼    터덜터덜 걸어오니 마을 주차장 한켠에 나의 애마가 조용히 앉아 있는데

워밍업도 하기전에 산행이 끝나버려 조금은 허전하더라

이런 산행도 있고 저런 산행도 있으니 다음주에 조금 더 걸으면 되겠지하고

 부산에서 올라오는 아들놈을 만나기 위해 부리나케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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