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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동에는 판을 바꾸는 변혁이 뒤따른다. 그같은 기대가 높아진다. 20일(월요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정에 맞춰 퇴임하는 바이든 미 행정부 인사들은 17일(금요일) 사실상 모든 업무를 마감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블링컨 국무장관 등 핵심 각료들은 이날 퇴임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4년의 공과를 되돌아봤다.
정권을 인수하는 트럼프 팀(정권 인수위)은 국정 현안에 대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취임 당일 100여개의 행정명령(대통령령)을 발령한다고 하니, 그 준비도 만만찮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차기 행정부가 '가장 강력하고 위험하며, 대등한 적'(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의 15일 인사 청문회 발언)으로 규정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17일 (미국 동부 시간) 전화 통화를 했다. 취임을 사흘 앞둔 시점이지만, 업무 시간으로 따지면 바이든 행정부의 마지막 날이다. 차기 권력이 중국과의 외교및 통상 현안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이 가능하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후 첫 해외 방문지로 중국이 유력하다고 18일 보도했다.
중국 다음의 상대는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24시간 내 종식을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후 대(對)러시아 행보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국이 미래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면, 러시아는 전임 정권(바이든 행정부)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3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대다. 어떤 형태로든 판을 바꿔야만 하는 현안 중의 현안이다.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이 주된 화제였다고 한다.
트럼프 당선자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제는 지루한 소모전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자(바이든 대통령)가 극구 피했던 푸틴 대통과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할 태세다.
2017년 푸틴-트럼프 대통령 정상회담/사진출처:크렘린.ru
◇ 트럼프-푸틴 회동 언제 어디서?
두 정상의 접촉은 솔직히 '언제 하느냐'는 시간의 문제만 남아 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16일 러시아 국영 '러시아-1' TV 방송의 파벨 자루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언제든지 전화 통화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만, 우리는 미국 측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며 "새로 집권한 국가 지도자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게 관례"라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접촉은 아직 없지만, 논의가 시작되면 먼저 비공개 채널을 통해 백악관과 크렘린 사이에 소통이 있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양국 지도자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해외 정상과의 첫 전화통화 상대가 푸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푸틴 두 지도자 간의 접촉 가능성은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 이후 줄곧 열려 있었다. 트럼프 당선자는 작년 11월 6일 당선 기념 연설에서 "나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뒤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16일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저택(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괴적인) 전쟁을 멈춰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사흘 뒤(19일)에 열린 '2024년 결산 국민과의 대화'에서 “트럼프 당선자와 언제든지 회담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면서 "그러나 언제 만날지는 모르겠다. 4년 넘게 한번도 접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회동설은 독일 정가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내달(2월 23일) 실시되는 독일 조기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1 야당인 기독민주당(CDU)의 로데리히 키제베터 의원은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오는 3월에 만날 예정이며, 그보다 앞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총선 이전에 크렘린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회동이고, 크렘린 방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숄츠 총리는 다음날 베를린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터무니없고 용납할 수 없는 (선거용) 발언"이라고 부인했고, 정부 대변인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펄펄 뛰었다.
이후 트럼프-푸틴 회동설은 더욱 구체화한 느낌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9일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푸틴)가 만나기를 바라고 있고, 우리는 그것(회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언하자, 크렘린 측도 "회담 개최에 대한 전제조건이 없다. 대화하려는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2022냔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나누는 왈츠 트럼프 집권 2기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차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마이크 왈츠는 12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푸틴 회동을 준비하고 있으며, 적어도 수일 내지 수주 안에 (두 정상 간에) 전화 통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러시아와의 대화 없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거래(협상)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자는 13일 뉴스맥스(Newsmax)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자신의 전략은 하나뿐이고, 그것은 푸틴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며 "(전쟁의 진행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 사람(푸틴)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아주 빨리 만날 것이다. 더 빨리 만날 수는 있겠지만, 사무실에 가야(취임)해야 한다"고 취임후를 기약했다.
그러나 두 정상의 회동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장소는 일체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유력한 곳은 역시 스위스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6월 푸틴 대통령과 처음 만난 곳도 스위스 제네바다.
스위스도 미-러 정상회담의 개최 의사를 표명하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영국의 더 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ICC는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강제 추방 등과 관련된 (전쟁 범죄) 혐의로 2023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니콜라스 비도 스위스 외무부 대변인은 더 타임스에 "스위스 정부는 (우크라이나) 평화협상 수행과 관련해 ICC 체포영장 집행에 예외를 둘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미러 정상회담의 걸림돌은
트럼프-푸틴 양자 회담이 가시권으로 들어오자, 이에 반대하는 측의 움직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패싱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와 처음부터 대(對)우크라 지원에 발벗고 나섰던 바이든 행정부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 전에 미국이 러시아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현지 언론들은 이를 '선(先)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후(後) 러시아와의 평화협상' 전략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게오르기 티히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취임 직후 만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미국과의 최정상급 접촉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정당하게 끝내기를 원하고, 트럼프 당선자도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우리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상회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취임 직후 미-우크라 회담 가능성은 일단 사라진 상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의 취임식 공식 초대 대상에서 빠졌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취임식에 초대해줄 것을 비공식적으로 세 차례나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트럼프 당선자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가 인스타그램에 썼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당선자는 이날(미국 시간으로는 9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에게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파리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위). 아래 사진은 2024년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의 트럼프와의 만남/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9일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위한 접촉그룹 회의(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에 참석한 뒤 이탈리아로 날아간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탈리아 TV 채널 RAI 뉴스 24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받고 2025년에 러시아와의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미국과 서방 국가로부터 확실하게 안보를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모스크바에 대한 미국(트럼프 행정부)의 압력도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트럼프 당선자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떠한 안보 보장도 약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반대 입장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여러번 밝혔다.
나토 가입이 물건너 가면, 우크라이나에게 가능한 안보 보장 장치는 두가지가 남는다.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선임 정치학자(연구원)인 사무엘 차랩(Samuel Charap)은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기고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후 한국에게, 욤 키푸르 전쟁(1973년 10월 6일~25일, 아랍-이스라엘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으로도 불린다/편집자)후 이스라엘에게 제공했던 안보 시스템으로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이다. EU 헌장에 따라 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EU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해야 한다. 이같은 안보 보장없이 미-러 간에 정상회담이 열리거나, 평화협상이 시작되는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숨통을 죄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가능한 한 빨리 트럼프 행정부와 만나 설득하고 요구하고, 상황을 파악한 뒤 '플랜 B'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19일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우위를 되찾기 전에 러시아와 협상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키예프(키이우) 관리들은 텔레그래프 측에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푸틴 대통령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협상에서) 더욱 대담해질 것"이라며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에 대한 군사 작전을 확대하기 한 무기 지원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자체 제작한 드론과 미국제 에이태큼스(Atacms), 영국이 제공한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 등을 사용해 최근 러시아 본토 깊숙한 4개 지역의 군수산업 시설과 석유 단지, 공장 등을 타격했는데, 이를 계속하도록 지원하는 게 크렘린이 '선택이 아닌 필요에 따라' 협상에 참여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는 주장(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논리는 이미 트럼프 팀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다. 트럼프 팀의 실세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 태슬라 CEO는 9일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스 바이델 공동대표와 가진 엑스(X, 구 트위트) 대담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훨씬 작고 전쟁을 계속할 여력이 없다"며 "전쟁을 끝내는 것이 가능하며, 그 후에 세상은 놀라운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팀의 이같은 시각은 유럽 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스타머 영국 총리는 최근 파리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2025년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EU의 외교 최고 책임자인 카야 칼라스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돕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EU)가 이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러시아 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보도했다. EU 관리들은 FT에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대러 제재의 유지를 바라고 있다"며 "전임 대통령(바이든 대통령)이 발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트럼프 당선자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대러 제재를 해제할 경우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팀과의 사전 조율없이 집권 막판까지 대러 제재에 나선 것은 트럼프 당선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지난 10일 발표된 미국의 대러 에너지 분야 제재 조치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가스프롬네프트와 수르구트네프테가스 등 러시아 최대의 석유, 가스, 시추, 보험 회사와 그 경영진(200개 이상의 회사 및 개인)과 180척 이상의 선박을 새롭게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 조정관 존 커비는 이날 대러 제재에 관한 특별 브리핑에서 “이번 제재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꺼낼 수 있는 협상 카드용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는 전쟁 종식을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이 제재를 해제하려면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 평화협상 분위기를 막으려는 '몽니'로 비친다. 특히 러시아 해상 수출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가스프롬네프트가 제재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러시아는 물론, 트럼프 팀에게도 충격이 적지 않아 보인다.
◇미-러, 평화 해법을 찾아낼까?
트럼프 당선자는 우크라이나 종전 중재 의지를 보이면서도 구체적인 종전 구상을 직접 공개한 적은 없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6개월 훨씬 전에 종전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우크라이나 특사로 지명된 키스 켈로그는 100일 내 종전 목표를 제시하는 등 협상 기한 정도만 내놓았을 뿐이다.
협상이 6개월로 길든, 100일로 짧든, 종전 합의까지 이르는 길은 험난하고 고될 게 틀림없다. 전쟁 후 국경선을 새로 긋는 법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여부 등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을 안보 보장책, 평화협상 타결 후 합의를 이행할 방안 등을 찾는 게 일단 지난(至難)해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평화협정 4개 요구안(우크라이나 4개주 양도,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및 나토 가입 금지, 러시아 제재 해제)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태다. 협상 테이블에서 누가 어느 정도 양보할지가 타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중에서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지목한 러시아 측의 핵심 요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동유럽국가에서의 군사활동 축소(나토군 철수)다. FT는 11일 "푸틴 대통령은 협상에서 모스크바가 2021년 12월 워싱턴과 나토 측에 보낸 '상호 안보 보장에 관한 협정'(초안)을 다시 꺼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 협정 초안은 유럽의 안보 지도를 새로 그리는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스트라나.ua는 "트럼프 당선자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며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전망했다. 동유럽에서의 미군 철수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 일각에서의 우려와는 달리, 러시아는 미국이 나토에 가입하고 있는 한, 나토 회원국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나토 역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우려해 군사적 도발을 할 수 없다고 본다. 소위 '(핵무기) 공포의 균형'이 유럽에서 계속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특히 러시아는 병력과 무기 모든 면에서 우크라이나를 압도했지만, 3년 가까운 긴 소모전에 빠져든 상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탕으로 러시아군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발트 3국과 같은)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필패(必敗)는 자명하다. 일각에서는 폴란드군 하나도 단시간에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군이 전면적으로 개입한다면 그 결과는 두말 할 것도 없다.
푸틴 대통령도 "나토의 군사적 잠재력은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전제한 뒤 "러시아가 나토와 전쟁을 하려면 핵무기를 사용해야만 하고, 이는 상호 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인정하곤 했다. 그렇다면 미군이 러시아 국경 지역(동유럽)에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트럼프 당선자도 이 판단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유럽 안보에 대한 미국의 지출을 줄이겠다는 그의 공약도 대체로 이에 부합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4개주(도네츠크, 루간스크, 자포로제, 헤르손)를 러시아 땅으로 인정하는 것은 트럼프 당선자가 선뜻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현재의 최전선에서 휴전을 바탕으로 한 평화협상 개시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전투가 격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도 최전선에서 전쟁을 중단하는 등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신뢰하는 유명 언론인으로 알려진 마르가리타 시묘난 러시아투데이(RT) 편집장은 13일 러시아 인기 블로거인 뱌체슬라프 마누차로프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적인 것, 트럼프 (대통령)와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협상의 시작점이고, 우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점령한 영토(우크라이나 땅의 약 20%)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아무도 그들의 보증을 믿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트럼프-푸틴 회담을 되돌아보니..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12일 트럼프-푸틴 대통령의 과거 첫 협상(2017년 7월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가진 별도 단독 회담)을 살펴보면 앞날을 낙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2시간 넘게 진행된 협상 끝에 4건의 합의 사항(시리아 안보협정, 우크라이나 관련 핫라인 재개, 정보 보안 구축, 신규 대사 조속 임명)이 발표됐는데, 그중 신규 대사 임명만 실천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 집권 1기(2017~2021년)에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무수히 많은 제재 조치를 취하고, 중요한 군축협성에서 탈퇴했으며 러시아및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시대의 시작을 선언했다고 이 신문은 짚었다.
집권 2기는 다를까? 기대는 있다.
드미트리 수슬로프 러시아 고등경제학교의 유럽 및 국제연구센터 부소장은 코메르산트에 "트럼프 당선자가 집권 2기에는 러시아와의 합의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기와 달리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이 없고, 외교 안보 책임자들을 소위 '충성파'로 택했으며, 공화당이 상하양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수슬로프 부소장은 설명했다.
그렇다고 대미 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대개 러시아를 '적'으로 보는 전통적인 공화당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상하 양원 의원들의 성향도 레이건 전 미대통령 스타일의 '매파'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노선을 계속 바로잡으려고 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코메르산트는 또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우크라이나의 평화안 도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은 의심하고 있다고 썼다. 한마디로 트럼프-푸틴 협상에 너무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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