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5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로써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원사도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 땅에 보냄을 받고 오셔서 자기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시고 오직 보내신 이 곧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요 6:38).
사도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후에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좋게 하거나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기 위하여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사도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은 더더욱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그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갈 1:7-9).
나는 복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배운 경험과 지식을 전하는 것이 복음인 줄 알았습니다.
이런 나는 바울의 말대로라면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저주가 아니라 창세전 언약에 따라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 영생 역시 복음을 통하여 얻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 앞에서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한 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12:1-21
제목 :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8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 나의 묵상
1-7절은 스룹바벨에 의하여 주도된 제1차 포로귀환시의 제사장 명단이며, 8-9절은 동일한 시대의 레위인 명단이다.
10-11절은 포로 귀환 시대의 대제사장의 계보를, 그리고 12-21절은 대제사장 요야김 때의 제사장의 족장된 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기 전에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조사하여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느헤미야의 의도는 다름 아니라 성전 제사 제도를 확립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성벽 재건 공사와 함께 성전 제사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가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한 번 제사장 나라로써의 지위를 회복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의 교회를 가리킨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조사하여 정리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한 교회로써의 위상을 바르게 세우기 위함인 것이다.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로 서야 한다.
따라서 한 교회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과 계보를 통하여 그들의 정통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레위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몸을 성결케 함으로써 국가로써의 이스라엘 회복과 함께 선민 공동체인 교회로써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우선순위는 다름 아니라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 바로 세워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목회자들이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목회자가 바로 설 때 교회 공동체가 거룩한 공동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생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면서 닮게 되어 있다.
따라서 목자가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양들은 달라진다.
목사가 주는 영의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교회의 성도들은 그 양식이 전부인 줄 알고 먹기 때문에 양식이 정말 중요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양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결정 된다.
그러므로 목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목사들은 양인 성도들에게 정말 좋은 양식을 공급해 주어야만 한다.
그 양식은 목사가 좋아하는 양식도 아니고, 양이 좋아하는 양식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양식을 주어야만 한다.
그 양식만이 양을 양 되게, 성도를 성도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양식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영생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기간 자신의 뜻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다.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토록 애를 쓰셨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기까지 하신 것이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오직 아버지의 뜻과 명령대로 행하셨다면, 그 분께서 보내신 종인 우리들이야 두 말 해 무엇하겠는가?
종은 종의 마음대로 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하는 자다.
종이 주인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뜻을 주인의 뜻으로 착각하여 자기 마음대로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목사 된 자로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다.
그런데 나는 나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내 뜻과 내 마음대로 목회를 했던 패역한 자였다.
주인의 뜻도 모르는 종놈이 이리저리 설쳐대고 뛰어다니면서 행한 일은, 하면 할수록 더욱 주님의 뜻을 파괴하는 짓만 하게 될 뿐이다.
주님께서는 오직 창세전 아버지의 품에서 보고 들은 것을 행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를 알지 못하니 주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내가 아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마치 목회인 양 설쳐댔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양들은 주리고 목이 마를 수밖에 없다.
생수를 주어야 하는데 구정물을 주었고, 썩지 않는 양식인 영생을 주어야 하는데 나는 썩을 양식만 주는 무뢰한이었다.
나는 오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악하고 게으른 목사들의 표본이었음을 고백한다.
게다가 나는 목사로써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는 자이며 세상의 정욕에 끊임없이 넘어지는 자였다.
복음을 알고 복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순간순간 나는 세상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인하여 넘어지기를 수도 없이 하고 있다.
그런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주님께서 나를 죽여도 할 말이 없는 그런 자이다.
그동안 수많은 심판의 무덤을 통하여 급기야 복음을 듣고 살아났지만, 내 안에 환난과 곤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아직도 내 의가 살아서 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의를 먼저 구하기보다 순간순간 세상의 정욕에 이끌려 나의 의를 구하는 나를 본다.
이러한 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이는 하루도 바르게 살 수 없는 지극히 악한 죄인이다.
나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심판을 구한다.
그것이 나의 양식이 되어 주님 앞에 홀로 앉아 주의 말씀을 받아먹는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먹기 원한다.
예전 한국에서 사역할 때는 하루 종일 목양실에 앉아 있어도 전화가 한두 통밖에 오지 않는 것을 견뎌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감사하여 주님 앞에서 홀로 앉아 받아먹는 말씀은 꿀과 송이꿀처럼 달다.
그렇기에 나의 양식은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요, 곧 복음이다.
이 복음이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여 날마다 영생의 삶을 누리도록 인도한다.
비록 넘어지지만 파레시아 곧 담대함으로 주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간다.
그리고 주님이 아버지와 함께 보셨던 그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제 다시 나의 영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깨지고 흩어졌던 나의 영을 불쌍히 여기사 붙잡아 주옵소서.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공사를 마무리 하고 성전 제사 제도를 확립한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예배 중심의 공동체요 또한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로 회복되기 위한 조처였음을 아나이다.
오늘 이 종의 심령에 주의 성령으로 성벽을 쌓아주시고 예배가 회복되어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이 되게 하옵소서.
영적 지도자인 목사로써 성도들에게 썩을 양식이 아니라 썩지 않을 양식이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 복음을 온전히 나눠 주는 목사가 되게 하소서.
내 영이 먼저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넘치는 영의 양식이 성도들에게, 그리고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소서.
순간순간 넘어지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일으키사 다시금 주의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목사가 목사다운 목사 될 수 있도록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하소서.
또한 우리 성도들이 목사에게 의존하는 성도가 아니라 스스로 말씀 앞에서 홀로 앉아 그 생명의 말씀을 얻어먹을 수 있는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