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5일 묵상 본문 : 느헤미야 12장 1절 - 21절 -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예배자가 되고 생명의 은혜를 전하는 일에 힘쓰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 주께로 나아갑니다.
육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일에 익숙한 자가 아닌 영적 평안을 얻는 일에 익숙하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은 많은 문자와 알림 내용으로 시작하며 분주한 일정을 가지게 됩니다.
지혜를 따라 행하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와 교제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다윗 시대의 제사장 가문은 24반열로 나누어서 성직을 수행했지만 본서를 기록한 느헤미야 때는 22명의 제사장 반열을 보여주고 있음으로 인원의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다.
8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1절부터 11절의 내용에서 느헤미야는 앞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후에 다시 1차 포로 귀환 때부터 성전을 섬겼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성전 제사 제도가 확립되고 인원도 배치되었음을 보여주는 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예배하는 공동체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제사와 그 일을 감당할 자들이 세워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일이 지속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요야김은 10절의 대제사장 예수아의 아들로써 1차포로 귀환 이후 시대까지(B.C.490년) 제사장으로 섬겼던 자였다.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오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느헤미야가 제사장 족장의 명단까지도 잘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1차 포로기 이후부터 느헤미야 시대까지 제사장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마치고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도시를 재건하는 일까지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할 백성들을 정하고 또한 성전에서 예배하는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다시 정비하는 일들을 진행한다.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기록하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나누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제사장은 다윗 당시 24반차를 나누어서 일을 감당했지만 당시는 22반차까지만 준비되어 비록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솔로몬 성전 때와 같이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느헤미야가 오늘날의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특별히 관심 밖의 대상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은 예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이었으며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제사장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세웠지만 그 안에서 제사를 감당할 제사장이 없다면 그 성전은 무용지물이며 성벽의 재건도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지는 영적 성전의 모습이 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교제해야 하는 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써 모든 제사의 완성을 이룬 분이시며 스스로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였으며 바른 관계를 세우신 분이시다.
이 모든 일이 복음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고 복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능력이 되어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성도는 복음을 통해 생명의 삶을 사는 자가 될 수 있으며 성도의 정체성,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선포하셨으며 그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자가 바로 자신,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셨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요4:21~26)
성도의 정체성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성도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지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 백성으로써 살아가지 못하고 단순한 종교인,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을 사는 자가 된다.
그래서 성도는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회복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하는 자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모습임을 보여준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록을 통해 백성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회복하도록 힘썼던 느헤미야의 모습은 성령이 거하시는 온전한 성전의 회복도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궁극적으로 모든 민족들 가운데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시겠다고 선포하셨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3~6)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한 백성들은 베드로 사도가 제시한 것처럼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성도가 가지는 특별함, 성도로써 가지는 정체성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예배자가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날마다, 그리고 순간마다 그러한 삶의 모습을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에 연약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금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는 자가 된다.
어제는 인간적인 생각과 말을 하고 그러한 일을 권면했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여전히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나의 모습을 주님 앞에 고백하며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한다.
또한 인생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선한 일로 바꾸시는 주의 능력과 긍휼을 구하게 된다.
비록 늘 연약하고 부족한 자로 살아가지만 다시 회복하시는 은혜를 기대하며 거룩한 백성의 모습을 회복하고 바르게 세우는 은혜가 나의 삶, 지체들의 삶 가운데 임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며 그것을 감당하도록 은혜로 이끄시는 손길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바른 관계의 회복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말로 회복이 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진정한 연합을 이루는 힘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복음으로 생명을 누리고 전하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늘 어리석음과 연약함 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지는 일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때마다 일깨워 주시고 다시 바른 회복을 이루며 선한 일에 힘쓰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지체들과 교제하는 모든 일에도 지혜를 주시고 복음 안에서 지혜로운 나눔을 갖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