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이가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아무런 말도없이 홀연히 떠나갔습니다.
세상 인연의 끈을 끊고
연처럼 하늘위로 날아갔습니다.
참으로 허망하게 떠난 친구 동열이,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떠났단 말입니까,
너무나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답답하고 분통이 터질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다못해 차라리 욕을 퍼부어댑니다.
이놈아 왜 그랬느냐고,
왜 죽었느냐고, 니맘대로 죽어두 되는 거냐구,
이렇게 심한 장난을 쳐두 되는 거냐구 말입니다.
나는 녀석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읍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만든 그를 향해 당분간
나쁜 놈이라고
친구들을 저버린
양심도 없는 놈이라구 막말을 퍼부우려 합니다.
그런데 차분히 정신을 보듬고 한편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작 답답한 쪽은 동열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한마디 인사도 전하지 못하고 기약도 없이 떠나간
본인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더니
동열이가 편지 한통을 부쳐왔던 겁니다.
바닷길을 건너 삼우제 가던날, 꿈길에서 동열이를 만난겁니다.
글을 통해서 답답하고 황망한 동열이의 마음을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병속의 편지(Letter in the Bottle)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그 편지처럼
바닷길 파도를 따라 풍파를 물리치고 몇해 뒤에 해변가에 도착한 병속의 편지처럼
오래전에 준비했던 내용인듯 보였습니다.
김준하 마음대로 열어본 동열이의 가슴은
그의 찢기는 가슴 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친구들아, 모두들 잘 지내지?
나 동열이다. 사전에 말도 없이 갑자기 떠나와서 미안하다.
지난 화요일 이천에서 일을 마치고 손님이 찾아와 저녁식사를 했지.
식사후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라구.
그래서 빗소리를 들으며 운전대에 앉아서 여느때와 같이 차를 몰았는데 여주길 중간쯤 왔을까,
갑자기 서편하늘 짙은 먹구름이 밀려오면서 앞길을 막았고 이내 나는 정신을 잃었으며
꿈에서인지 한쌍의 무지개를 밟아타고 나는 순식간에 구름위로 올라와 이곳에 와있다네.
나도 믿기지 않지만 갑자기 터진 일인지라 어찌 손쓸 수도 없는 사이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네.
지금 나는 구름침대에 누워서 하늘을 여행중일세. 너무 걱정들 말게나.
일단 올라와보니 구름 사이로 아랫세상이 다보여 큰 단절감은 없으이.
내가 어릴적 살던 연신내 시장길도 보이고 157번 버스타고 학교가던 무악재 고개도 눈에 들어온다네.
한성학교 뒤운동장도 그리고 한쪽편으로 밴드부 빠따 맞던 클럽하우스도 아련히 보이고 있어.
백계단의 추억도 새롭고 영천시장 석교교회의 십자가도 오늘따라 불처럼 밝으이.
서울 시내....
내가 근무하던 을지로 인쇄소 골뱅이 골목 지금도 살아있네.
밴드부장 김장용의 지휘봉 따라 행진곡 연주속에 친구들이 입장하는구나.
반창회 얼굴들 모두모두 나와 손을 흔드네.
나를 추억하는 모든 친구들 다시보니 반갑다.
북아현 굴레방다리의 나날들이여!
한성의 교정이여,
그리운 은사님들~
한성고등학교 3학년 2반 김봉정 선생님.
한때는 우리들의 꿈이었으며 낭만이었으며
철부지의 놀이터였던 뒤운동장,
미래를 약속했던 짖궂은 우정의 터전,
나는 잊지 못하리.
저 아래 지구촌 전체가 내려다 보이네.
멀리 호주의 강세범 투병하는 모습 장하이,
스페인에서 명근이의 기타 뜯는 소리 하늘까지 닿고
뉴욕 LA 동창들 함성 크게 들리며
영준이와 성부의 장쾌한 합창 추모곡 여기까지 울려 퍼지네.
해웅이와 남근이 상용이가 뒤운동장에 심어놓은 상록수 많이도 컸네.
밴드부 멤버들 조원섭 이재천 박광식 김장용 함효식 원천식 백학립,
한번 단합대회 만나야지.
꿈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대문 취학이의 노라노 다방,
첫담배와 첫술의 추억.
'얼굴' 친구들,
냉천동 진복이 그리고 불광동 갈현동 구파발 친구들,
정상종, 김진흥, 함태용, 최인규, 홍현용, 임송범 .....
연 날리던 동우회 회원들
모두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타리클럽 회원들 따라주는 술잔에 어리는 추억들
내 잘 간직하겠습니다.
끝으로 준하야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어라,
네 눈물이 비되어 양수리에 남한강으로 흐르는구나.
하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네.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나는 이제 인간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지 뭔가.
슬퍼해야할지 어쩔지조차 알 수없이 아직 경황이 없지만 머지않아 마음안에 평온이 찾아 올 것이야.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으로 또 다른 소풍을 오게 될 친구들 위해 내가 멋진 한성 동산을 만들어 놓을테니
한껏 놀고 즐기다가 나중에 올라오게 되면 만나세. 그럼 이만 안녕~.
여보 율희엄마, 나요.
아니 김동열의 부인 현주씨,
상심이 크겠지만 잘 견디리라 믿소. 너무 갑자기 터진 일이라 나도 속수무책으로 사고를 당하고 말았소.
그동안 나와 같이 살면서 고생 많았소. 그 애환 다 묻고 날 다시 쳐다보구료. 내가 당신 손을 잡고 있잖소.
현대자동차에 근무할 때 철없는 나이에 나를 만나 사랑을 싹틔웠던 당신의 애틋한 순정.
그래도 숱한 어려움을 거쳐 이제 좀 허리펴고 살만한데 이런 이별길로 내몰렸구료.
그동안 내 당신 속 많이 썩혔소. 미안하오 따뜻하게 못해줘서. 내 이제 당신을 끌어안아 주리오.
내 솔직한 말이지만 당신에게 못다한 말 전하려오~
"사랑하오, 여보."
금쪽같은 두 딸 율희 솔희, 잘 부탁하오.
막내 시집가면 당신도 보금자리 찾아 가소.
이사람 그만 잊고 행복찾아 가소, 내 너그러이 용서하리다.
이제 와서 다시 보니 당신 참 아름답소.
이런 이쁜 공주마마를 내 몰라 보았으니 참 나는 바보로소이다.
두딸 율희 솔희에게.
아빠가 아주 멀리 먼곳에 와있다,
우리 인형같은 딸들 어느새 많이커 이젠 쳐녀가 되었으니
아빠 없이도 앞날을 잘 헤쳐가리라 믿는다.
너희들에게 그 동안 살갑게 못해줘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너희 앞길은 내가 지켜보고 지켜줄 터이니 걱정말아라.
어렵고 힘들거든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거라,
하면 내가 물리쳐줄 것이야.
돈키호테의 창으로 말이야.
아빠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돈키오테였으니 말이다.
그러하니 울지말고 웃어라,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하늘을 보아라
아빠가 환히 웃는 얼굴 보이잖느냐!
훗날 애기 낳거든 사진 찍어
하늘 위로 훨훨 날려다오.
연끝에 실어 창공으로 구름위로 날려다오.
독수리연의 날개가 날리도록 아가들을 실어 보내렴.
이 두손으로 한껏 안아보마.
첫댓글 준하 글 읽다 읽다, 모니터 글씨가 자꾸 안보인다~ 좋은 친구였는데, 참으로 허망하기만 하네. 늘 건강히 잘 지니시게~ 후배 장충섭과 고성훈이 미국 한번 가자더구나. 자네, 병대, 종갑 얼굴도 보고~ 병대는 전에 한국 나왔을 때 두번 봤다네. 한국 나오게 되면 연락하세~
광모, 반갑다. 동열이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교회에 함께 다녔고 같은 등교길이라 유달리 추억거리가 많았단다. 며칠째 우울하다. 인생무상. 옛날 '오두막' 시절이 그립다. 보고싶은 홍균이 병대 종갑이 너와 나 모두다 멀리 떨어져 있구나. 언젠가 한번 만나기를 고대한다.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인생 별거 아니다. 생노병사의 굴레.
광모 준하 잘 지내지 . . .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마음이 너무 아프네 ......항상 건강하고 일일신하시게.....추신 : 장충섭 후배에게도 안부를....
준하, 해웅 ; 얼마전 윤병삼 아들 결혼식 때 장충섭 만났다네. 홍균이는 연락이 잘 안되고 있네. 담에 안부 전하겠네~지난 길을 뒤돌아 보면, 인생 참 별거 아닌데...욕망과 육체를 지니고 있으니 그리 굴레 속에서도 열심 살아가는 게 숙명. 내가 카페에 자주 안들르다 보니 안부가 늦으니 이해하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게
준하가 올린 동창친구, 아내, 자녀에게 보내는 동열의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구구절절 써내려간 글이 모두의 마음을 슬픔과 삶이 주는 허무함을 느끼게 하고, 그러하기에 사심없이 살며 주변과 돈독하게 처세하며 살아갈것을 깨치게 합니다..
우리 사는 그날까지 모두 건강하고 아름다운 동반이 되도록 소원합니다.
해웅, 카페지기 영동, 모두 건강하세. 하늘나라 동열이도 건강을 잘 지켜서 다시 이땅으로 내려오게나. 네가 좋아하던 노래 장현의 '미련'처럼 넌 "갈 수 없는 먼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먼 훗날에 돌아온다면 변함없이 다정하리라.~" 비내리는 날이면 네가 또다시 그립구나. 아침 등교 때마다 학교 함께 가자고 날 불러대던 네 음성, 이젠 바람에 실려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구나. 오늘도 언덕위에선 네가 날리던 흰빛 연이 햇살받아 펄럭이며 파란 하늘을 수놓을텐데 말이다. 창공엔 아무런 말이 없구나. 대답이 없구나.
에이.....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