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지음/한빛미디어
"Z씨는 스무 살의 건강한 청년이다. Z씨의 마을에는 열 명의 병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나 질병이 모두 다르다. 이들은 생명이 위독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다양하다. 어느 날 병자들은 자신들이 완치될 수 있는 의학적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Z씨의 장기를 빼내어서 이식하면 열 명 모두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Z씨는 죽겠지만 말이다. 마을 주민들이 Z씨를 찾아가서 말했다. '네 장기 떼러 왔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한빛미디어)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설명할 때 나오는 예화다. 이 책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의 '현실 세계'의 거대한 다섯 과정을 마치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야기 속에 인명, 지명, 책이름, 연도는 최대한 배제된다. 세어보니 열 번도 나오지 않는다. 줄거리만 파악하기 위함이니 사실 세부적인 팩트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연재를 글로 풀어낸 것이다. 태초에 책은 말을 기초로 씌어졌다. 우치누마 신타로가 '책의 역습'에서 밝혔듯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 이래로 말로 하는 회화(會話)와 텍스트와의 관계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더구나 스마트 기기로 책을 읽는 일이 늘어나면서 '말'이 책이 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아직까지는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배려해 '읽는' 책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곧 '말(음성)' 자체를 잘게 쪼개 책이라고 일컫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언론에서 단 한 줄도 소개된 바가 없는 '지대넓얕'은 보름 만에 4만 부나 팔렸다.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처음 사본다거나 5년 만에 책을 사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소프트 인문학 서적들이 대거 출간됐지만 내용까지 소프트한 책은 많지 않았다. 진정으로 '넓고 얕은 지식'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다니 이 책의 확장성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현실 너머'의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등 다섯 과정을 다룬 2권이 잔뜩 기대가 된다.
저자 채사장은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정도다. 그래서 가게를 열었다. 널려 있는 정보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지식만을 선별해서 쉽고 단순하게 손질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진열했다. 저자 채사장은 새롭게 오픈한 지식 가게의 사장이다. 성균관대에서 공부했으며 학창시절 내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하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문학과 철학, 종교부터 서양미술과 현대물리학을 거쳐 역사, 사회, 경제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편력은 오늘 지식가게를 오픈할 자양분이 되었다. 현재는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넓고 얕은 지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팟캐스트 [지대넓얕]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