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자기 육체의 많은 부분과 접촉하고 있지 않은 채 그저 육체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내가 말하는 ‘접촉’이란 깊은 감수성이다. 그런데 그대는 자신의 육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대가 아플 때에만 자신의 육체를 느낀다. 두통이 있을 때 그대는 머리를 느낀다. 두통이 없으면 머리와의 접촉은 사라진다. 그대는 다리에 통증이 있을 때에만 다리를 자각한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에만 그곳을 자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괜찮으면 전적으로 무감각해진다. 사실 모든 것이 다 괜찮을 때가 바로 육체와 접촉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접촉은 질병이 되고 건강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머리에 두통이 생기면 그대는 육체와 접촉을 하게 된다. 그 접촉은 머리가 아니라 두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원래 두통이 없고 머리가 온전히 건강할 때에만 접촉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괜찮을 때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접촉은 응급조치에 불과하다. 두통이 생기면 처방을 내리고 약을 먹을 수는 있지만, 접촉을 통해서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한다.
모든 것이 괜찮을 때 자신의 육체와 접촉하도록 노력하라. 풀밭에 누워서 눈을 감고 내면의 흐름을 느껴보라. 건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껴보라. 강에 들어가 누워보라. 강물이 그대의 육체를 어루만지고 모든 세포가 시원함을 느낀다. 그 시원함이 세포에서 세포로 전달되어 육체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것을 느껴보라. 육체는 참으로 위대한 현상이며, 자연계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