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라인을 넘어
방학 끝자락으로 개학을 앞둔 때다. 방학 들기 전 무슨 일들을 해야 할지 몇 가지 메모를 해 두었다. 그 가운데 내 뜻대로 안 된 것이 있어 아쉽다. 집사람과 강릉 속초 방면 기차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부부는 나이 들면 얼굴도 남매처럼 닮아 간다는데 우리 집은 예외인가 보다. 내가 마음에 둔 바깥나들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사가 다 그렇지 않던가.
집사람은 철저한 방콕주의자이고 나는 영혼이 자유로운 방목주의자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서 ‘방’자가 돌림자임은 신기했다. 내 방학 일정엔 해안선 바다 열차를 타고 무박 2일 동해안의 넘실대는 파도를 보고 오고 싶었다. 그런데 집사람은 몸도 몸이거니와 마음을 더 북돋워야 할 처지라 재촉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 마냥 집 안에 머물고 있을 수 없어 빈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정우상가 앞으로 가서 212번 시내 순환버스를 환승해 종점 안민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안민고갯길로 걸어 올랐다. 내가 안민고개로 여유 있게 걸어보기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여름가을을 빼고 겨울은 달랐다. 들꽃을 감상할 때도 아니고 산나물을 뜯어오는 철도 아니라 마음 느긋하게 길을 나섰다. 들머리 돌담길을 지나자 굽이굽이 데크로드가 이어졌다.
요즘은 하늘길이 대세이고 KTX는 단축키다. 젊은 날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동행한 길이 아슴푸레하다. 내설악 숙소에서 이튿날 미시령 꼬부랑길을 넘어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걸어서 오가기도 했다. 그 한참 이전에는 속리산 정이품 고갯길을 차멀미하면서도 오르내렸다. 몇 해 전 여름날 어느 모임에서 걸었던 지리산 오도재 S라인도 인상적이었다. 변강쇠와 옹녀를 주제로 한 길이었다.
근래 장복산 북사면에도 숲속 나들이 길이 뚫려 두 차례 걸어보았다. 내가 오르는 안민고갯길이야 여러 차례 걸었는데 모두 겨울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계절엔 들꽃을 완상하거나 산나물 들나물을 뜯느라 들릴 겨를이 없었다. 포장도로를 오르내리는 자동차는 아주 드물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 마니아들이 많았다. 나는 찻길 가장자리 데크로드를 따라 걸어 약수터 쉼터를 지났다.
평일이었지만 늙수그레한 사내나 중년 아낙들도 더러 보였다. 나는 약수터를 지나다가 샘물을 한 모금 떠 마셨다. 안민고개 산마루에 올라 창원시가지를 되돌아보았다. 산 아래 창원 공단엔 선적을 앞둔 완성 자동차는 장난감 자동차 같았다. 저 멀리 명곡 로터리 근처 아스라한 시티 세븐은 일회용 라이터를 세워 놓은 듯 했다. 곳곳의 아파트 단지 겹겹은 예전 성냥 곽을 보는 듯하였다.
산마루 생태터널을 넘어 진해 시가지를 굽어보았다. 속천 바다 위로 정남향 해가 떠 있어 시가지 시야는 희뿌옇다. 옅은 미세먼지 농도도 한 수 거들었지 싶었다. 그래도 차도와 인접한 벚나무 가로수는 오랜 수령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인도로 뻗친 큰 나뭇가지엔 ‘머리조심’이라는 경고 문구가 덧씌워져 있었다. 고갯길 벚나무들은 두어 달 뒤 터뜨릴 화사한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갯길 들머리에서 진해 시가지를 따라 걸었다. 자투리 공원에선 어느 교회에서 사진전을 열어 따뜻한 율무차를 얻어 마셨다. 경화역 근처에 이르자 거리의 조경수로 심은 애기동백이 만발했다. 산다화라고도 불리는 애기동백은 한겨울에 꽃을 피웠다. 경화역에 가까운 경화 장터는 3일과 8일이면 오일장이 열렸다. 내가 안민고개 산마루를 넘어 진해로 찾아감은 경화 장날을 겨냥했었다.
창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오일장이 경화장이다. 경화역에서 직선형 도로를 따라 이동으로 내가면서 장터 풍물을 구경했다. 나는 신선해 보이는 브로콜리를 사 놓고 안면을 터놓고 지내는 ‘박장대소’에 들려 주인 내외와 인사를 나누었다. 명태전을 시켜 막걸리를 몇 잔 비웠다. 이후 다시 장터를 둘러보고 고등어를 두 마리 사고 제철을 맞은 해산물인 톳을 한 움큼 사 배낭에 넣었다. 15.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