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은 대부분 저학력의 젊은 백인 남성들로, 가장 빈곤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촉한다. 이들은 약 20년 전부터 긴축 정책의 여파로 자신들의 근무 조건이, 자신이 돕는 이들의 생활 여건과 동시에 악화되는 모습을 봐왔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이로 인한 정치적 영향을 잘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니, 그런데 솔직히, 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 아빠 차에, 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자기가 사는 단지에 불을 지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잖나! 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모두 다 없애버리면 원하는 걸 다 얻을 것이라 믿는 건가?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2007년 11월 폭동이 일어났던 어느 날 저녁, 소방차 안에서 나온 격하지만 일상적인 발언이다. 빌리에르발(발두아즈)에서 오토바이가 경찰차 때문에 전복돼 타고 있던 두 청년이 숨지자 폭동이 시작됐다. 동네는 불바다가 됐다. 돌을 던지고 음모를 꾸미고 방화를 하는 등의 행위가 며칠 밤 동안 번져나갔다. 우리가 이런 큰 규모의 비슷한 사건을 접하는 것은 그때가 두 번째였다. 2005년에 발생한 소요사태는 오랜 기간 지속됐다. 2007년에 일어난 폭동은 격렬했던 대신 훨씬 짧았다. 매번 두려움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파리의 대규모 외곽 지역에 있는 우리 소방서에도 어떤 체념 같은 것이 퍼졌다. 우리 소방서는 도심 소요사태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그런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던 터였다.
우리가 15년 동안 교대 당직으로 일했던 이 소방서는 소방관 대다수가 젊은 백인 남성이다. 상대적으로 저학력자인 그들 중 다수가 단기 직업기술과정을 밟았고, 중산층에 가깝거나 중산층이 되길 염원하는 프랑스의 서민층에 속한다.
“원인 불명의 불편함”
필자처럼 고등 교육을 받은 파리의 지식인은 ‘그들의 기준’에는 정말 부합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서 이들은 필자의 이력을 접하고는 응당 “모든 좌파 부르주아들처럼” 언제든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관용주의 ‘신좌파’를 떠올린다. 사회학은 용서의 문화가 아니라는 것은 언제나 설명하기 쉽지 않다. 현장의 소방관들은 이런 설명을 전혀 믿지 않는데, 마뉘엘 발스 전 총리도 이 원칙에 대해서 같은 분석을 했다.
직업의 성격 때문에 인간 희극(과 비극)의 대해설자가 된 소방관들은 필자에게 주기적으로, 대체로 정중하지만 때로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자신들이 매일 경험하고 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보라고 요구한다. 일부 서민 동네에서 일어나는 폭동은 물론이고, 돌을 던지는 행위, 폭행사건이나 극도의 긴장 상황, 그리고 소방관들이 상대하기 힘든 ‘젊은이들’과 ‘소외 계층’, 각양각색의 ‘구호 대상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말이다. 소방관들은 또 정치인들, 기업가들, 스포츠나 연예계 스타들 같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족속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들 잘난 사람들의 이기심과 성공에 대한 욕구 그리고 희생정신과 책임의식 및 연대감의 부재는 소방관들에게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다.
소방구조대원이라는 직업은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엄청난 규모의 화재와 자연재해, 순직한 이들을 향한 국가적 애도 등 언론에서 비치는, 때로는 화려하기까지 한 이미지만 엿보일 뿐이다. 물론 그런 면도 존재하고, “불에서 사망한 이들” 역시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형태의 ‘영웅심’이 나타난다. 소방관들끼리는 이 ‘영웅심’이란 단어에 웃음을 터뜨리고 모두가 이를 즉시 거부하겠지만 말이다. 이 ‘영웅심’은 비참한 일상과 모든 종류의 어려움에서 나타나는데, 해결책을 찾는 것은 소방관들의 몫이다. 응급조치는 물론이고 시민을 진정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동원한다. 특히 시민들과 함께 상의하고 그들을 위로해주며,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가라앉혀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왜냐하면 소방관들은 매일 현장의 실제 상황을 통해, 생사가 걸린 위급함은 아닐지라도 동요, 불안, 번민, 삶의 어려움 등 우리 사회가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문제와 고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출동 지시 때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원인 불명의 불편함’이라 칭하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비록 명칭은 존재하나, 가끔 무엇이 어떤 결과를 초래해 긴급 신고번호 18(화재, 사고, 응급진료)이나 112(긴급전화)를 누르게 했는지 정의하기 어렵다. 집에 방치된 채 삶을 끝내겠다고 위협하는 장기 투병 환자들, 간부직에서 해고돼 사사건건 이웃들을 모욕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혹시나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하는 ‘무례한 실업자’, 제정신이 아니거나 암울한 집안에서 인생의 끝을 기다리는 노인, 침대에서 떨어졌다며 한밤중에 원격 신고 벨을 누르는 노인들의 비참함. 소방관들은 이런 모든 상황에 출동해 시민들을 이해하고 안심시킬 의무가 있고, 자신들이 느끼는 바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침착함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 매번 그게 가능하다.
직접적인 구조가 필요하지 않는 “사적인 성격의 작업”도 있다. 벌집 제거, 문 따기, 비응급 환자 이송 등의 출동에 비용을 청구하도록 만든 1996년 법의 적용을 상부에서 강력하게 요구할 때에도 이러한 인도주의가 실천된다. 구조 서비스를 위한 예산, 응급상황 개념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고취, 시민들의 필수적인 책임감 함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직무 교육 동안 논쟁에 불이 지펴진다. 교육 이수자들은 재미있어 하거나 의심하는 얼굴을 하고,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이런 과정에 그다지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내색을 한다. 은밀한 농담과 웃음도 재빨리 퍼진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Darty(전자제품 매장-역주)에 온 줄 알 거다. 그렇게 하시면 전부 얼마일까요?”
현장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구체화된다. 낡은 공공임대주택 3층에서 누수가 발생했다는 신고에 경험 많은 동료와 출동한 곳은, 육안으로도 거실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 몹시 당황한 한 할머니의 집이었다. 우리는 펌프로 물을 퍼냈다. 의심할 여지없이 너무 오래된 세탁기가 일을 냈다. “이런 경우에 ‘사적인 성격의 작업’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필자는 중얼거렸다. 필자 자신도 뭔가를 배우는 동시에 정해진 절차를 지킨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필자는 날아든 제롬의 싸늘한 시선에 얼어버렸다.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까?” 작업이 끝날 무렵 이 연금 수령자가 몹시 걱정하며 물었다. 제롬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소방관들은 공짜예요, 아시잖아요? 그리고 어르신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이미 이 난리만으로도 힘드신 걸요! 그냥, 저기, 일이 다 끝나면 물이나 한 잔 주십시오!” 트럭에서 장비를 정리하며 제롬이 설명했다. “저분이 어떤 상황에서 사는지 봤어? 돈 한 푼 없다고! 저 사람들은 안심해야 해.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아. 나는 저런 사람들에게 돈을 내게 할 방법이 없어. 난 그런 것 못 해. 어떤 소방관이 되고 싶은지는 자네가 정하는 거야. 난 구식이라 그런지 몰라도, 여기에 도움을 주러 왔지 청구서를 들이밀러 온 게 아니라고”
공공 서비스의 상품화 문제는 지난 15년간 지속해서 언급됐다. 청구서 작성, 작업에 쓰인 장비 사용료, 소방관에게 작업에 대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수단의 전산화, 운영 감독관들의 방문, “평균 작업 시간을 넘지 않도록” 출동 종류별로 작업 시간을 규정하려는 시도. 이 수많은 사항은 ‘신 공공 서비스 운영’과 그것을 위한 ‘합리화’의 징후였다. 그러나 문제는, 소방관들은 출동할 때 어떤 일을 맞닥뜨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구조 활동을 계량화하고, 자신이 공감한 시간을 측정하거나, 자신이 개입한 정도를 수치화하고, 어떤 장비를 사용했다고 해서 질타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필자는 오히려 동료들이 이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다. “화상 환자를 이송하면서 화상용 습포 ‘Burn Free'를 안 붙여줄 수 있다. 우리가 같이 있으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막대를 물고 있으라면 된다! 그러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소방관직의 이타성, 부르디외의 ‘국가의 왼손’
이러한 공감과 인도주의, 이타성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든 ‘국가의 왼손’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소방관들이 매일 완수해내는 모든 구조 및 구호 작업을 의미한다. 그 덕분에 소방관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방관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다). 어쨌든 그건 그들의 일이고, 스스로 구조대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으며, 그들이 행하는 이타주의에 대해 보수를 주지 않느냐고 조금은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국가 공무원 신분인 직업 소방관(2015년 4만1,000명, 전체 소방관의 17%)과 파리 및 마르세유의 군인(2015년 1만2,300명, 전체 인력의 5%)에게는 일정 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 소방관의 80%가 자원봉사 소방관(2015년 19만3,700명)이고 이들은 시간당 수당을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시민을 가장 가까이서 상대하는 가장 낮은 계급의 현장 소방관의 경우, 시간당 평균 5~8유로의 수당을 받는다). 모든 자원봉사 소방관들은 보통 6~10번 출동하는 12시간의 당직 근무 동안 자신이 90~100유로를 벌 것이라는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이러한 이유로 수익에 대한 욕심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많은 헌신에 비해 그에 대한 보상은 초라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소방관은 주기적으로 당직 시간을 “늘리면서(가끔은 24시간 이상, 야간, 주말 당직도 포함됨)” 또 필수 직무 교육을 이수하면서 실전 레벨을 유지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체력 테스트, 체육 훈련, 기동 훈련도 받아야 한다. 신체적 소모는 이 직업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가르침을 주려는 사람들’에 반대한다
그러나 모두가 수당의 함정을 알고 있다. 비과세에, 월말에 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되며, 공제액도 없어서 수입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됐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의 한 노조원이 많은 걱정을 담아 썼던 글에서처럼, 몇 년 전부터 “수당의 급여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젊고, 직업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소방관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근무 수당의 일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원봉사 소방관들은 전문 소방관 선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되길 원한다. 안정적이며 인상 가능한 보수, 사회적 권리, 직무교육을 받을 권리, 상여금, 퇴직 연금 등 진정한 직업으로서의 보장을 받으면서 자신이 꿈꾸던 직업을 계속해 나아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채용 선발시험을 통한 제한된 수의 보직, 희망 지역 근무의 어려움 등이 이들의 희망을 가려버리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이들은 가능하면 자신의 능력과 연관이 있는(수영 강사, 화재 안전요원, 구급차 운전사, 들것 운반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들은 여러 곳에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 상품 운반 임시직, 경비, 화물 운전 등 대개 임시직이다. 자원봉사 소방관들의 직업적 미래는 여전히 평온하지 않다. “실상은 자원봉사 소방관들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시민 보호 및 안전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인력 면에서나 예산 면에서나 어떤 것으로도 그들을 대체할 수 없다.” 뤽 페리 전 교육부 장관이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제출한 <자원봉사직의 야망(Ambition Volontariat)>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이다.(1) 달리 말해, 노조에 가입한 한 동료의 표현에 따르면 “지방 화재구조 본부(SDIS)는 사실 자원봉사자들의 불안정성으로 먹고사는 딜러다!”
근무조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된다. 불안정한 상태의 그들이 얼마 동안이나 더 자신보다 불안정한 상태의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떠한 정치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가? 소방관의 삶을 이야기 하다 보면, 사람들은 가장 불안정한 상태의 시민들과 늘 근접해 있는, 서민층의 경계에 속한 소방관에 대한 시선이 우경화되고 있음을 밝히고 싶어 한다. 일부 소방관들은 “사회의 청소부”처럼 산다. 직업 때문에 끊임없이 가장 빈곤한 이들과 접촉하고, 일부 버려진 주거 단지나 동네들을 맡아서 일하기도 한다.
위협과 모욕은 존재한다.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부인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서민층의 여러 계파 젊은이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긴장 상태인데, 누군가의 불안정한 삶이 그들에게 다른 이들의 ‘몰상식함’을 용서케 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해 2005년과 2007년의 폭동 같은 큰 사건들로 이해 부족과 불신이 더욱 커졌다. 소방관들은 최전방에 서서 이러한 도심 폭동 사태와 마주해야 했지만, 그 의미를 공감할 수 없었고(2)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도덕적, 정치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이 현상에 대한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이 되었다.
소방관들은 여러 가지 걱정거리들 가운데 특히 자녀들에 대한 걱정으로 괴로워한다. 한 소방관의 말에 따르면 “내 아들 녀석이 반에서 유일한 백인이 될” 일부 공립학교와 옆 동네의 나쁜 친구들을 피하게 해주고 싶어 한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문화적 자산이 거의 없다면 이들의 장래는 특히나 어둡다. 직업 소방관 중 일부는 ‘사회의 기적’처럼 살기도 한다. “난 졸업장은 없지만 보너스를 합치면 선생보다 많이 번다! 참 희한한 노릇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 ‘기적이’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요즘 시대에는 어디에 가든, 하다못해 빗자루를 드는 데도 학위가 필요하니까!”
높은 교육 수준을 갖지 않고도 고통스러운 육체노동과 엄격함, 노력으로 직업적인 성공을 이루어냈다는 감정은 많은 소방관으로 하여금 ‘소외 계층 사람들’이나 ‘부자들’ 등 “제도의 덕을 보는 이들”을 단죄하게 만든다. 카위자크 사건 이후,(3) 프랑수아 피용 부인에 대한 허위 근무 주장은 역시나 안 좋은 영향들을 만들어냈다. 꽤 어렸을 때 소방관의 세계로 뛰어든 30세의 자원봉사 소방관 로렌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학교는 오래 다니지 않았지만 18세 때부터 일하러 다녔고, 24시간 당직에 주말 당직 모두 다 했다. 그런데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한테 사회보장제도, 임대아파트, 일반 건강 보험, 주택보조 수당, 세금 감면을 해 주는 걸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여러 혜택을 받는데 뭐 하러 몸을 움직이겠나?”, “불법 이민에 대해서는 뭘 하는 건가? 국경에서부터 추방하면 쓰레기들은 다 길거리에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게 다 우리 세금으로, 추가적인 사회보장비용과 이주비용을 대고 있다는 걸 알기는 하는 건가? 프랑스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그 지원금 때문에,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사회 수당 때문에 모든 게 바닥났다”고 ‘확실히 우파지만 극우는 전혀 아니고, 천주교지만 성당에는 나가지 않는’ 사람을 자처하는 다른 동료가 한술 더 뜨며 말했다. 이런 종류의 발언은 흔하다. 이런 논쟁은 “원조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로랑 보키에즈 공화당 부대표의 생각에 강한 지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소방관들의 이념과 윤리에 가장 큰 해를 끼쳤던 표현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랑스 국민 전선(FN)의 마린 르 펜 대표가 ‘기존 질서와 그 특권자들’ 그리고 ‘구호 대상자들’에 대해 한 발언들은 이러한 직업적, 가정적, 사회적 배경에서 핵심을 찌르는데 놀랍지도 않다. ‘우경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어도 15년 전부터 관측된 이러한 현상을 한 단어로 요약해주지만, 토론, 급격한 변화, 의심, 문제 제기 등을 묵과하며 이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한 이들에게 종종 소방관의 윤리와 공공 서비스의 가치를 상기시켜준다. 그런데도 전반적인 삶의 조건이 악화되고, 인종차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반주지주의적인 정치적 발언들이 쏟아지면 그로 인한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예전에는 서민층이 좌파에 더 가까웠으나 이제는 우파의 가치에 동조하고 있다는 식의 정치적인 암시 역시 경계해야 한다. 소위 ‘좌파’가 제안하는 정치는 동료 소방관들이 표현하는 열망들과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눈에 지식인들과 좌파 지지자들은 문화적인 가치를 위해 투쟁하고, 국경 개방을 지지하며, 타인의 수용과 가장 취약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학위와 지식 그리고 소방관 그들을 배제하는 듯한 참여 수단(글, 전단, 대규모 연설)들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강력하고 굳건한 윤리”
좌파 정권이 내세웠던 제롬 카위자크는 일부 소방관들의 표현에 따르면 “프랑스 최대의 사기꾼”으로 진저리가 나는 인물이고, 문맹 노동자들에 대해 교만한 태도로 이야기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부 장관(현 대통령)은 이들에게 여전히, 스스로는 지키지 않는 “가르침을 주려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앞서 사회주의자(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가 엘리제 궁에 들어간 지 2년이 됐을 때에도 소방관들은 너그럽지 않았다. “그래, 올랑드의 2년이 지났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도 올랑드한테 투표하지 않았나?! 다른 교수들처럼 말이야, 안 그런가? 자 교수님, 그 사람들이 자네가 원하는 정치를 한 것 같나? 그 사람들이 한 것을 보면, 좌파에도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자네도 이제 깨달았을 거야!”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만만하게 결론 내렸다. “금융계, CEO들, 경제인연합,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겠다, 저렇게 만들겠다 해놓고는 결국엔 뭘 했는가? 아무것도 없지 않나! 자네는 자네 쪽 사람들이 애송이처럼 속았다는 느낌이 안 드나? 사람들한테 가르치기 전에 당신들이 먼저 깨닫는 게 좋을 텐데 말이야.” ‘빅토르 위고’, ‘1793년’ 또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언급하는 진보주의 대표들의 연설은 이들 소방관에게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논리나 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대한 소방관 세계의 저항은 오랫동안 아주 강력하고 굳건한 윤리를 지탱해왔고, 필자의 첫 멘토들 역시 이를 자주 상기시켜 주었다. 필자의 멘토들은, 완벽한 의미에서 그리고 표현의 숭고한 의미에서, 자신들이 공공 서비스의 일부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파열, 사르코지 시대부터 자유로워진 인종차별적인 발언, 중산층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불안정성, 그리고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서민층의 미래가 소방관들에게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로 다가오고 있다.
글·로맹 퓌달 Romain Pudal
2002년부터 자원봉사 소방관으로 활동.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담당 사회학자. 저서로 <플래시백. 소방관, 지친 영웅들? (Retour de flammes. Les pompiers, des héros fatigués ?)>(La découverte, 2016)이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뤽 페리 주재 <Ambition volontariat> 위원회 보고서,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2010.
(2) Cf. Gérard Mauger, <L’Émeute de novembre 2005. Une révolte protopolitique(2005년 11월의 폭동. 친정치적 반란)>, Éditions du Croquant, coll. <Savoir/Agir>, Bellecombe-en-Bauges, 2006.
(3) 2012년 탈세 혐의를 받은 제롬 카위자크 전 예산부 장관은 2016년 12월 1심 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