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에프로 암울했던 시기 87-88년도쯤에 난 더욱더 암울했다. (자식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집도 없고 ....)
그래도 묵고 살아야 했기에 학교에 출근은 했다. 믿었던 동료 t 에게 빚 보증을 3건이나 서 주고도 어쨌던 난 살아 있었다.
그해 여름 교원연수원에 1급 정교사 연수를 받았다.
8시 부터 5시까지 붙잡혀 있을때 *** 박찬호***를 알았다.
난생 처음 소형 라디오(미제는 똥도 좋고, 전자제품은 일제 라기에)를샀다.
눈은 앞을 보고, 귀는 박찬호 소식 듣고,
어느 토요일날 지리산에 가고 싶었다.
오후 1시쯤에 수업 끝나고, 집에 가서 챙기고 지리산을 가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박찬호가 선발로 나와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물러났는데, 1승의 결과가 너무 궁금 했다.
근처 식당에 가서 소주 한잔 하면서 tv를 봤다.
두병, 세병 비우니까 결국 1승을 추가 했다.
지리산 밑 중산리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오고 있었다.
렌튼(후라쉬)를 들고 천왕봉 아래 법계사(로터리 산장)를 행해 출발했다.
태풍이 올려고 하늘엔 별도 안보이고, 사람도 없고, 혼자서 가다가 중간쯤 바위(망바위)에 올랐다.
조금 쉬고 바위를 내려 오다가 렌턴을 놓쳐 버렸다. 라이터를 켜고 찾긴 찿았는데, 고장이 났다.
지금 안가면 내일 부산에 못간다--- 공부도 못하는데, 결석까지 하면 평생 2급이다.
배낭에 신문이 한부 있었다. 조금씩 떼어서 불을 붙였다. 10m씩 전진하고 또 붙이고, 더디어 신문이 떨어 졌는데, 너들 지대(바위 투성이)를 만났다. 산장에 도착하니, 무릅이 박살 나 있었다.
담날 오후쯤 대원사로 내려 오는중에 다리가 말을 안 들었다.
그 지리산이 그리워 2002년 여름에 한달간 대원사 뒤 유평계곡게 있었다.
"효원 마라톤 클럽" 공식 창단도 하기 전 수많은 선후배님들이 격려차 지리산에 방문도 했다.
-- "지리산 전지 훈련" 노력해 보겠습니다.---
첫댓글 하셈,그게 벌써 4년전에 이야기가,대원계곡.참 세월 빠르네...
솔로등반 이래서 위험합니다. 한 번 실수가 도리킬 수 없는 결과를 놓기도 합니다만 천만다행이였네요. 지리산 하면 생각나는 건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홀딱 벗고 겁나는 계곡 물살에서 멱 감으며 서로 렌턴 비추며 장난치든 추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