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0여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국내 언론이 트럼프 집권 2기의 대(對) 한반도, 동북아 정책을 분석하는 사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럽의 관심은 내달(2월 24일)이면 개전 3년을 채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그의 시각과 전쟁 종식 가능성, 종전 방안 등으로 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취임사에서 우크라이나를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끝낼 것이며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 첫날 표정/사진출처:X@화이트하우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첫날 발언과 행보, 주변 이야기 등을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k 등 러시아 언론을 바탕으로 정리한다/편집자.
◇ 백악관 집무실 기자 간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앞서 약속한 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취임한 지 반나절 밖에 안 됐다. 아직 반나절 남았다.(농담에 웃음).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나에게 거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를 원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 타결을 원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측의 결정에 달렸다."
"종전 시점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에 달려 있는데, 이는 매우 빨리 이뤄질 수 있다. 그(푸틴 대통령)가 협상을 원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가 협상을 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더 망가질 것 같다. 인플레이션 등 러시아 문제들을 한번 보라. 나는 그와 좋은 관계(협상)를 갖고, 공통 언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협상을 원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전쟁 중단을 거부하면, 러시아 경제는 파괴될 것이다. 그도 전쟁의 진행 상황에 기뻐할 수 없을 것으로 믿는다. 영토를 점령하려면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전쟁이 일주일 안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쟁은 3년 동안 지속됐다. 푸틴 (대통령)은 기뻐할 수도 없고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예스, 나는 (젤렌스키와) 대화하겠다. 그와 거래를 하고 싶다."
스트라나.ua는 "(취임 첫날)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가 우선 순위라는 점을 분명히했다"며 "(지난해 9월 워싱턴, 12월 파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던) 그가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미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미국 혹은 트럼프 팀)는 숫자를 갖고 있다. 거의 100만 명의 러시아 군인이 사망했고, 우크라이나는 70만명의 군인이 희생됐다. 러시아는 크고, 잃을 병력도 많지만 국가는 그렇게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잘못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장면/러시아 매체 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군인 60만 명을, 우크라이나는 40만 명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모스크바와 키예프(키이우) 모두 이 통계를 부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4만3천 명이, 러시아는 약 20만 명이 전선에서 사망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만 보면, 한달 사이에 희생자가 러시아는 40만 명이, 우크라이나는 30만 명이 더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백악관에 있었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
◇ 유튜브 방송
"푸틴 대통령은 협상을 해야 한다. (협상을 거부할 경우 새로운 제재를 가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가 딜(거래)을 하지 않아 러시아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경제와 인플레이션을 보라. 앞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러시아의 2024년 인플레이션은 9.52%로 잠정 집계됐다.
◇대통령 행정명령 속 대(對)우크라 조치
트럼프 대통령은 첫날 해외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90일 동안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의 국제개벌처 홈페이지/캡처
미국의 대외 원조를 담당하는 상징적인 부서는 국제개발처(USAID)다. USAID 웹사이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는 현재 수십 개의 프로젝트가 미국의 지원 자금을 받아 진행 중이다.
주요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워싱턴에 본부를 둔 컨설팅회사 Chemonics International Inc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과 분권화, 사법제도 개선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2026년까지 추진하고,
△Internews Network가 2025년 9월까지 우크라이나인들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민주 언론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Internews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 의회(최고 라다)제도 개선및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미국 국제개발처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국제 비영리 단체인 Pact는 국제개발처의 자금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 공중보건 및 위생 분야를, 민간 유라시아 재단(Частный фонд "Евразия")는 디지털 변혁 프로그램을, 글로벌 기업인 DAI는 주요 인프라의 사이버 보안 프로젝트를, 교육및 개발을 위한 세계적 조직 IREX는 청소년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선거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민간 네트워크 OPORA 등 많은 단체들이 미국의 지원에 의존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미국은 또 국제개발처를 통해 전쟁 발발(2022년 2월 24일)이후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26억 달러, 개발 지원 50억 달러, 예산 지원 300억 달러 이상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원조 중단 행정명령이 미국의 대 우크라 군사지원과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AP 통신은 "의회가 이미 여러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승인했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 행정명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러-우크라 취임 축하및 표정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 안보회의를 주재하면서 미리 축하인사를 건넸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주로 수요일에 열리던 크렘린 안보회의가 트럼프 취임식에 맞춰 월요일로 옮겨졌다"며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이고 실용적인 상대'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쳐"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축하 인사와 함께 “우크라이나 위기(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대화와 합의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1시간 30분 이상 화상 대화를 나누면서, 트럼프-시진핑 간에 이뤄진 전화 통화의 내용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또 매일 저녁 게시하는 대국민 영상 메시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두번 축하했다. 핵심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힘을 통한 평화정책'(실제로 트럼프는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편집자)을 선포했는데, 이는 신뢰할 수 있고 정의로운 평화를 이룰 기회를 가져다준다"며 “적극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양국간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인민의 종' 데이비드 아라하미아대표는 "2월 초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주간'에 트럼프 행정부와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고, 알렉산드르 메레즈코 의회 외교정책위원장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대통령 간의 전화통화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보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의 우크라이나 평화협상 참여에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 병력을 5분의 1로 감축하고(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 주장) 나토(NATO) 가입 금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삭감은 2022년 5월 이스탄불 평화협상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공개된 당시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병력 삭감 규모를 계속 주고받았는데, 협상이 소위 '부차 학살 사건'(키예프 수도권 도시인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우크라이나측 주장/편잡자)으로 전격 중단되면서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모스크바주재 미국 대사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성조기를 정상적으로 게양했다. 미 카터 전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성조기 조기 게양'의 일시 중단 행정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행정명령은 백악관과 모든 공공 건물, 해외공관, 군사 기지 등에 20일 하루 성조기를 정상 게양하도록 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9일 카터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30일간 조기 게양을 명령한 바 있다.
◇트럼프 집권 2기 첫 국무장관의 우크라 관련 발언
상원 인준을 통과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미국의 외교 정책의 우선 순위에 둘 것이라고 선언했다.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인사청문회 모습/유튜브 영상 캡처
루비오 장관은 21일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와 회견에서 "대통령이 한 약속(공약)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끝나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전쟁이 멈추었다가 2년, 3년, 4년 후에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전쟁은 러-우크라 양측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에너지 인프라의 파괴와 인명 손실, 수백만명의 해외 난민 등 큰 피해를 냈다"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4시간 내 전쟁을 끝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문제이며, 실용주의로 돌아가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만큼 힘들다”고 설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전에 조기 종식 공약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으며, 아직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도 트럼프 행정부가 (전쟁 종식에) 최소한 몇 달은 투자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