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사]
윤 정권 종식, 미‧일‧한 군사동맹 한 축 무너져
올해도 식민주의와 대결하는 징용공 투쟁을 위해!
'시민모임' 결성 16주년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활약에 얼마나 큰 격려를 받고 있는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맞는 16주년 총회는 큰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2월 3일 늦은 밤 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먼저 1980년 광주를 떠올렸습니다.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군의 난입을 저지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긴장과 감동의 잠 못 이루는 하룻밤을 지새웠습니다. 원고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갔던 저는 그날 아침까지 시청역 근처에 있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도 함께 싸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계엄령의 실태가 밝혀지면서, 그러한 저의 감각은 민주화 투쟁에서 많은 희생과 피를 흘린 역사를 남의 일처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평화'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날밤 시민들이 계엄령을 저지시켰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일본도 한반도의 분단구조에서 비롯된 전쟁적 긴장 상태를 낳은 당사자라는 자각이었습니다.
‘호쿠리쿠 연락회’는 2월 26일 올해 94세가 된 후지코시 소송 원고 김명배 씨와 함께 주주총회에 참석해, 후지코시 경영진에게 “사죄 없는 후지코시에 미래는 없다”며 강력히 사죄·배상을 호소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화는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를 지지 기반으로 한 윤석열 정권의 극적인 종식은 후지코시와 미쓰비시 등이 전제해 온 미‧일‧한 군사동맹의 한 축이 무너지고, 미국의 세계 일극 체제가 끝을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후지코시도 일본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후지코시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강제연행·강제노동은 없었다”, “한일조약으로 모두 해결 되었다”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26일 후지코시 정문 앞에는 지금까지의 호쿠리쿠를 넘어 오카야마(岡山) 등 전국에서 우익이 결집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이시카와(石川)현으로 이동하여 가나자와(金沢) 시내에서 가두 선전 활동을 했습니다. 우익은 군마(郡馬)현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철거에 이어, 다음으로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매장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우익이 가나자와시(金沢市)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3월에 1심 판결이 있습니다. 우익의 주장은 곧 일본 정부의 주장이며, 무관심한 일본인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세계가 크게 바뀌는 가운데 올해 전후 80년, 한일조약 60년을 맞이합니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중국인 학살 진상규명, 그리고 조세이(長生) 탄광의 유골 수집 문제, 그리고 지금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하고 식민 지배한 이후 무엇을 해왔는지 차례로 질문을 받고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후지코시 강제연행 문제도 이 선상에 있습니다.
“세계 질서의 장래가 구 식민지국·개도국에 의해서 크게 바뀌려 하고 있다”(2023.7.28. 닛케이 신문). 영국과 미국에서는 옛 식민지 출신들의 지칠줄 모르는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는 G7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미영 등 구 식민지 종주국의 기업도 사죄나 배상을 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은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구 식민지 사람들의 노예제 식민주의 청산 투쟁은 국제사회를 변화시켰고, 구 종주국은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연동되어 있습니다. 전쟁과 격동이 다른 쪽의 전쟁과 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서로 공명하며, 세계 어느 곳도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 시민들의 투쟁은 우리 일본인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로 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식민주의와 전쟁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과 광주에서 투쟁하는 시민들과 다시 한번 함께하고 싶습니다.
식민주의와 대결하는 징용공 투쟁의 발전을 위해, 더 힘차게 투쟁하고 연대합시다.
2025년 2월 28일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노동 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 연락회
사무국 나카가와 미유키(中川美由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