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형사처벌 기준, 합리적으로 조정할 때다
韓, 형벌규정 넘쳐나 ‘처벌공화국’으로 불려
과도한 처벌로 기업가 정신과 경제도 위축
규정 정비 나선 정부, 형량 합리화해야
한국에서는 형벌 규정이 넘쳐나 ‘처벌공화국’이라는 자조적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국민의 대략 4분의 1이 전과자라는 과거 통계도 있는 형편이다. 우리 국회의원은 법률을 입안하면서 그 법률에 형사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면 법률이 미완성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처벌 규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법안 마련을 제대로 했다고 느끼는 것도 같다.
기업인 대상 처벌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강한 형사처벌은 기업가 정신을 제한시키고 경제를 위축시키며 일자리 창출을 막아버릴 우려가 크다. 처벌은 주로 기업인(회장) 또는 최고경영자(CEO) 등을 타깃으로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 회장이나 CEO 등을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다. 사망·안전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같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2019년 이래 금년 3월, 3번째 출국금지를 당했었다. 근로자 불법 파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다. 임기 3년을 훌쩍 넘겨 5년째 발이 묶여 있던 그는 올 6월 한국을 떠났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2020년 2월 대법원에서 공정거래법상 공시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00개가 넘는 자회사 수를 공시담당 직원이 정확히 공시하지 못한 것을 공정위는 그룹 총수의 탓으로 돌려 그를 고발했다.
‘공정거래법’상 공정위의 행정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 규정 위반, 의결권 행사 금지를 위반한 의결권 행사, 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 위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 등의 경우에도 같다. 유럽연합(EU)에서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형사처벌은 하지 않고, 미국과 일본은 그 범위가 매우 제한된다. 일본 공정위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총 4건을 고발했는데, 한국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575건을 고발했다.
한국 국회의 고질병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형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특별법부터 만들고 보는 식이다. 그러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잊어버린다. ‘민식이법’, ‘태완이법’, ‘김용균법’, ‘윤창호법’ 같은 것이 그렇다. 형법에 똑같은 처벌 조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형량만 대폭 올린 것이 대부분이다. 특례법·특별조치법과 같은 특별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안정돼 있지 않다는 증거다.
1982년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부부의 어음사기 사건의 여파로 1983년 말 ‘특정경제범죄법’이 제정됐다. 본래 금융기관 임직원의 금품수수 등 비위를 엄벌하고자 제정된 이 법률은 현재는 엉뚱하게도 기업인을 잡는 가장 대표적 법률로 진화했다. 형법상 횡령·배임죄(형법 제355조) 및 업무상 횡령·배임죄(형법 제356조)에 대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는 이 법률은 횡령·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의 정도에 따라 5억 원 이상(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50억 원 이상(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구분하는 아주 이상한 법률이다. 1980, 90년대에나 타당할 이 금액은 지금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 배임죄의 원조 국가 독일에서도 배임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개방적이어서 걸면 걸린다는 비판이 많다. 특별법에는 이처럼 ‘○년 이상’이라고 하한형을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범죄의 경우 특히 이와 같은 엄벌주의로 간다. 한번 만들어진 특별법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는 한술 더 떠 이 법률 시행령을 고쳐, 처벌받은 기업인이 자기 회사에 복귀할 때조차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는 행정부인 법무부가 재판에 의하지 않고 ‘임원 취임 금지’와 같은 자격형의 형벌을 부여하는 것과 같아 삼권분립 위반이고, 국민의 생계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위헌 소지가 크다. 기업인을 성범죄자 등에 대한 취업 금지와 같은 보안처분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기업인 형사처벌은 기업 평판을 저하시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업인의 부재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늦추고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사소한 과징금 처분이라도 일단 처벌을 받으면 헤지펀드와 국민연금까지 나서서 임원 선임 거부 등에 나서왔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형벌 규정을 개선하기 위해 출범시킨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경제적 손실 보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 및 한국에서만 범죄가 되는 기업인 형사처벌 규정은 이번 기회에 폐지돼야 한다. 남발되고 있는 특별법들이 일거에 정비되어야 하고, 기본법인 형법에 흡수돼야 마땅할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