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고려왕릉이라 하던건 태조 왕건릉과 공민왕내외의 왕릉 뿐이였는데... 근자에 남한 학자에게 북한에서 공개한 12기의 고려왕릉들이 소개됐단다.
과연 저게 동방의 등불이라던 고려황제들 왕릉이란 말인가...?
매냥 일제와 한국전쟁 때 불타고 도굴됐단 타령... 일제가 고려나 조선릉을 고의로 파헤쳐 뭘 도굴해 갔다 처도 무덤은 곳 조선인들의 신앙 이상였기에...고대로 봉분을 살려 조선인들의 성토는 막았을게 뻔한데... 뭔 일제가 고려왕릉 전체를 파괴하고...한국전쟁 때 폭탄이 정확하게 고려왕릉들만 집중적으로 찾아가서 떨어졌단 말인지...?
개수작질이다.
대륙에서 지 직계 조상들 유골과 위패만을 모셔오기도 바빳던 구한말기 철종이나 고종은... 전조(고려조)의 유골들 옮길 엄두도 못 낸거며..일부만 이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못 옮긴건 여기 저기 엄한 한반도 원주 토호들의 무덤에 비석만 새겨넣는 식으로 위작했을게 뻔하다.
기록들을 보건데... 조선은 고려 왕릉들에 대해 꾸준히 관리감독했고 기본 제사도 지냈다.
릉을 회손한 자들은 중하게 처벌하고 그 지역 관리도 파직되고 중형을 받았다. 그리 관리됀 고려의 개성 고려왕릉&왕비릉들이 37기...강화 고양 장단등에 흩어진 것까지 50여기란다. 그걸 조선 순조때까지도 잘 관리했다는데...철종때부터 뭔가 관리가 않돼고... 고종때는 전체 고려왕릉들의 개요파악 기록은 없고...그저 고려 무슨왕릉 개보수란 기록만이 좀 있고... 늘상 동명왕릉 얘기뿐이다.
언제부터 조선조가 동명왕릉만을 그리 애지중지 했는진 모를일이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한국전때 독일인에게 찍힌 이조선의 선대 추증왕들 묘가 있는데... 역사 기록으론...이성계 선대의 추증왕들 묘지는...머나먼 여진과의 경계지역 화녕지역에 있어... 관리가 위태위태한 자리였다 나온다.
그 함흥의 다른 지역명인 화녕(和寧)은... 또, 몽골의 발원지이자 최초의 왕도인 화림(하라호름) 관할이란다.
언제 여진족의 경계와 조선의 경계가 함경남도 함흥지방였고... 징기스칸이 하라호름에서 한반도 함흥근처를 관할했겠나...?
개성의 고려왕릉들이란게 진짜 고려왕릉들였다면... 이조의 철종 고종이 아무리 관리가 소홀했었었도...일제가 다 파헤처 부장품을 도굴했다 처도... 한국전때 폭탄이 고려왕릉만 찾아가서 떨어졌어도...왕씨와 전씨 후손들이 목숨걸고 찾아가 보수했을게 뻔하다. 일제시기까지도 조상무덤은 우리에게 신앙 그 이상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왕씨 전씨들이 다 불쌍늠들이라서 지 위대한 왕족 조상들의 묘도 관리 못하고 어디 있는지도 까먹고 있었단 말일까...?
구한말기 아주 위급한 어떤 상황에서...한반도로 미처 다 이장하지 못하거나... 그 가치를 상실한 상황였다 봐야 하겠다.
북한에서 새로 발견했단 새성의 고려왕릉 12기...? 육갑질들인 것이다...속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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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 판문군에 있는 고려 5대 임금 경종(재위 975~981)의 영릉. ‘여걸’ 천추태후는 원래 그의 다른 왕비였다. 뒷산의 숲이 모두 베어진데다, 석물들도 거의 사라져 황량한 분위기다. |
석축 파묻히고 난간석 나뒹굴고
농지개간·남벌로 민묘처럼 초라
북한 개성 부근 고려 왕릉들의 모습이 분단 60여 년 만에 확인됐다. 8일 사진으로 공개된 고려 왕릉들은 관리 소홀 등으로 무척 황량한 모습이지만, 10~14세기 우리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성의 남북 언저리인 옛 경기도 개풍군 일대에 있는 유적들로, 북한 주민들이 사는 협동농장 근처이거나 휴전선에 가까운 군사지역이어서 외부 연구자들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없었다.
개성시 룡흥리에 자리한 2대 혜종(재위 943~945)의 순릉. 석물이 대부분 사라지고 봉분도 깎여 고려 왕릉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편이다. |
장경희 한서대 교수가 처음 공개한 고려 왕릉 사진들 가운데 묘 주인이 밝혀진 것은 모두 12기다. 2대 혜종에서 시작해 정종(3대), 경종(5대), 성종(6대), 현종(8대), 문종(11대), 순종(12대), 예종(16대), 신종(20대), 원종(24대), 충목왕(29대), 충정왕(30대)이다. 태조 왕건의 비 신성왕후, 경종의 비 헌정왕후, 신원미상의 왕족 무덤떼인 칠릉떼 등도 소개됐다. 북한의 고려 왕릉 가운데 현재 모습이 알려진 곳은 첫 임금 태조의 현릉과 31대 임금인 공민왕의 현·정릉뿐이다.
고려 왕릉은 대체로 통일신라 능묘의 전통을 계승해 산기슭에 3~4층 단을 쌓고 맨 윗단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을 쌓고 아래로 석등, 문·무인석, 제향각 등을 배치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인 도굴 피해를 입었고, 한국전쟁 때도 막대한 석물들이 파괴·분실돼 대다수는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북한 쪽은 이후 주요 왕릉들을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했으나, 야산 곳곳을 남벌하고 농지를 개간하면서 능역이 크게 축소됐다. 혜종·성종릉의 경우 병풍석과 석축이 파묻혔고, 경종릉은 장명등·석상·망주석이 사라졌다. 신종릉은 잘못된 복원으로 깨진 난간석이 굴러다니고, 민묘처럼 왜소한 몰골로 변했다.
장 교수는 “서울 근교 조선 왕릉들이 석물, 수목, 건축물까지 보존된 것과 대조된다”며 “현지 산에는 나무가 없어 큰비가 오면 무덤 흙이 계속 쓸려내려갈 수밖에 없는 만큼 종합 방재대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은 장 교수의 답사 성과 등을 토대로 개성 왕릉 등에 대한 종합 조사와 자료집 발간을 추진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장경희 교수 제공
6대 임금 성종(재위 981~997)의 강릉. 판문군 진봉리에 있다.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거란에게서 강동 6주를 얻어낸 왕이다. 개간된 논밭에 둘러싸여 민묘처럼 초라한 모양새다. |
판문군 선적리에 있는 11대 문종(재위 1046~1083)의 경릉. 12도의 사학을 진흥시켰고 송나라와 국교를 열었던 왕이다. 능역이던 무덤 앞은 논밭으로 변했다. |
즉위 석달 만에 숨진 12대 임금 순종(재위 1083)의 성릉. 판문군 진봉리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 높이가 1.6m에 불과하며 병풍석도 사라진 상태다. |
첫댓글 아이고 정말 ~ 고려 수도는 개성이고, 조선 수도는 한양이래요.....함경도 포함한 고려.조선 동북지역은 중국대륙을 지배한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이 살았지요...상식에 벗어난 소리하면 토론대상에서도 제외시키는게 모르세요? 역사논쟁이란 상식적인 내용을 전제로 논란이 많은 부분들을 논하는 거지,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들에 대한 논의는 토론대상도 안 되오..그런 상식에 벗어난 역사소설도 쓰지 말아야 해요..학생들 역사교육에도 민폐를 끼치는 일이니....공갈사기는 정치꾼들만 치는게 아니라, 역사가지고 치는 자들이 많으니 문제지요....조선왕조 수도가 북경이라니 어찌 그런 뇌를 가지고 있는지가 더 궁금해 집니다.
그냥 보채지 마시고...진득허니 구경이나 하세여...
뭔 일정 수준이 되야 토론을 허지..
그저 강당사학에다가 님의 종교철학이나 섞어 앵무새마냥 암송하시는데 뭔대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동방태양코리아님~
웃겨서 소리내어 웃네요.
님도 어떨 때는 욕 해주고 싶지만 이런 댓글 쓴 거 보면 또 기특?하고...
세상사 참 웃긴다.
어떤이가 볼 때는 님도 저 궐한님처럼 갑갑하고 답답하고 속터지는 사람인 걸 모르지요?
사람은 모두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니 다른 것은 눈에 안들어 오지요. ㅋㅋㅋ 정말 웃음이 자꾸 나오는게 실성한 사람같다. ㅋㅋㅋㅋㅋㅋ
기고만장을 하십니다...
제 눈엔 님들이 불치병환자입니다.
반박하시려거든 글 내용의 어디가 문제인지를 정확히 집어가며 하세여...
그, 일제 강단사학 앵무새소리 말고...역사원전 내용 가지고여...
잘하면 윤복현님과 바람 나시것습니더...ㅡ. .ㅡ
비아냥거리는 망가진 영희 양심을 바로 세우는 게 더 중요한 문제아닌가? 답답하고 속터지는 건 종북친노논리가 아니라서 그러겠지....겉으로는 독재타도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세습독재왕조를 추종하는 뇌도 썩은 뇌가 아닌가?...나는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로 정치를 논해 왔고, 문헌고고학적 근거로 역사를 논해 왔어....조선왕조 수도가 서울이 아닌 북경이라고 주장하는게 상식이라고 생각하나? 청나라가 조선이였다는 말인가? 청나라가 조선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뇌는 쓸모가 없는 뇌일세~
@대한민국 코리아 항상 최종목표는 정치적 선동들...
고려때는 족벌제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지방의 한무리가 지방호족의 수하에서 돈을 받고 있는 사병제도 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사병제도를 거느리는 여러 비뱡세력을 많이 거느리는 자가 왕이고 여차하면 타지역에서 더많은 돈을주면 그쪽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경우 왕의 무덤이 없어지는경우도 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럴경우 아예묘를 파헤치고 왕족을 깡그리 없애는 경우도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살아있는 왕은 대륙쪽으로 이동하여사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고 그당시에는 국경이 고정되어 있지도 않으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럴경우 그 지명을 그쪽으로 가져 갈 수도 있지요. 이
경우 김자님의 의견이 매우 타당 하다는 결론을 얻을수 있습니다. 이성계가 북벌하려 갔을때 이 기회를 잡아 적을 치는 것이 아니라 되려 아군을 치는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서 용비 어천가를 만든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해석은 유기적 관련으로 볼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